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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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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원더걸스'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만 해도 가요계는 아직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대형 기획사들이 아이돌 가수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가요계는 그들에게 잠식당했다. 방송국에서 명절 특집으로 아이돌을 모아 육상경기를 펼치니 그 참가인원이 100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아이돌의 숫자는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내 대중들은 일종의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소위 노래 잘한다는 가수들이 방송에 출연해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편집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지에 올리기 시작했고, 많은 누리꾼들은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진짜' 가수와 아이돌 가수를 구분 지었다.

아이돌 음악이 각종 음원차트와 음악방송을 휘저을수록 '진짜' 가수를 향한 누리꾼들의 경외심은 커져만 갔다. 그들은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보컬 나얼의 콘서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며 노래 후반부 작렬하는 그의 기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SBS <이적의 음악공간>에 출연한 김연우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고음을 폭발시키는 그의 성량에 황홀해했다.

'나가수'는 '진짜' 가수들을 위한 방송이었다

임재범의 합류로 '나는 가수다'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정상 뮤지션들의 콜로세움이 됐다.
 임재범의 합류로 '나는 가수다'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정상 뮤지션들의 콜로세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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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누리꾼들은 세상이 이들의 음악에 경외하지 않는 것에 한탄하면서, 언젠가 '진짜' 가수들의 시대가 오길 기대했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누리꾼들이 열광했던 건 이것이 '진짜' 가수들이 아이돌을 제치고 전면에 나서는 첫 번째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짜' 가수들은 소위 방송의 '황금시간대'에서 언제나 소외된 존재였다. 금, 토, 일요일 3일 연속으로 방송되는 지상파 음악방송에선 아이돌에 밀린 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고, 대개 자정이 넘어서 방송하는 심야음악프로에서나 간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주말예능에서 고정적으로 그들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가수'는 분명 예능프로이다. 그래서 가수들 외에도 매니저 역할을 하는 개그맨들이 존재해 제작진은 이 방송의 정체성은 '예능'이라고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려 든다. 그러나 '나가수'를 시청하고 열광하는 이들에게 '나가수'는 단순한 예능이 아니다. 그들에게 '나가수'는 인터넷에서 '진짜' 가수 놀이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던 작은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가수'는 결점이 없는 방송이 되어야 했다. 최정상의, '진짜' 가수만이 출연해야 했고, 그들은 청중평가단이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기립박수를 칠 수 있을 정도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한 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최고의 음악방송. 누리꾼들이 '나가수'에 요구했던 건 바로 '완벽함'이었다.

한 달의 휴식기간을 이후 새로 출범한 '나가수' 2기는 이런 누리꾼들의 욕망을 충실히 실현시켰다. 현장에 음악감독을 배치해 음향에 더욱 신경을 썼고, 청중평가단과 개그맨들은 이전보다 더 큰 리액션을 보여주며 가수들의 노래에 감동스러워 했다. 그리고 정점을 찍은 건 임재범의 출연이었다.

누리꾼들이 '진짜' 가수로 평가했던 김연우, BMK 등이 "실제로 라이브 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소란을 떠는 존재. 데뷔 17년차 윤도현을 한순간에 '로큰롤 베이비'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인물. 임재범의 출연으로 '나가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정상 뮤지션들의 콜로세움이 되어버렸다.

임재범 하차, 옥주현 합류로 기세 꺾인 '나가수'

장혜진은 이소라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러지 못했다.
 장혜진은 이소라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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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이 '나가수'에서 불렀던 노래가 다음날 음원차트 'TOP 10'을 휩쓸고, 방송을 보지 못하면 월요일 대화에 끼지 못하는, 열풍 이상의 광풍이 불던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건 임재범의 하차와 옥주현의 투입이 결정된 이후부터였다. 적잖은 누리꾼들은 옥주현의 '나가수' 합류를 인정하지 못했고, 옥주현과 그녀의 '나가수' 투입을 결정한 신정수 PD는 그들의 집중포화에 시달려야 했다.

옥주현은 누리꾼들이 암묵적으로 그어놓은 '진짜' 가수의 울타리 안에 포함되지 않은 가수였다. 무엇보다 '진짜' 가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누리꾼들은 완벽해야 하고 무결점이어야만 하는 '나가수'에 옥주현이 투입됨으로 해서 흠이 간다고 생각했다. '진짜' 가수들로만 채워져야 하는 신성한 경연이, 여타의 음악방송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옥주현은 합류한 이후 펼쳐진 첫 번째 경연에서 1위를 했다. 누리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나가수'는 이제 더 이상 신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소라가 탈락했다. '나가수'에서 이소라의 존재는 단순한 MC 그 이상이었다. 그녀가 '나가수' 첫 회 '바람이 분다'를 부르고 난 뒤 '나가수'의 품격이 정해졌다고 누리꾼들이 입을 모을 정도로, 그녀는 '나가수'의 격을 떠안고 있는 중심인물이었다.

조관우와 장혜진이 투입됐지만 그들은 임재범과 이소라를 대신하지 못했다. 지난주 장혜진이 부른 '미스터'가 청중평가단의 외면을 받은 것은 장혜진 본인만큼이나 '나가수'에도 뼈아픈 일이었다. 예상대로라면 장혜진의 '미스터'는 이소라의 'NO.1'에 필적하는 환호와 평가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환호는커녕 "색깔이 없었다" "장혜진스럽지 못했다"는 혹평이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나가수'라는 천사는 임재범과 이소라라는 양쪽 날개를 잃고 옥주현이라는 인간의 옷을 입은 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날개가 없고 인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천사에게 대중은 더 이상 경외감을 표하거나 신성시하지 않는다. '나가수'는 이제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예능이 됐다.

'나가수', 롱런의 가능성을 엿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가수'는 평범한 예능이 된 뒤에야 롱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제 언론과 누리꾼들은 더 이상 '나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노래에 대한 반응도 예전처럼 폭발적이지 않다. 그렇게 천천히, '나가수'는 시청자에게 익숙한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기가 지나치게 많은 방송은 필연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마련. 지금까지 '나가수'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오랫동안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그런 것들이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청자의 피로감을 누적시켜 방송에 독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가수'는 과거에 비해 한결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이 됐다.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난 '나가수'는 대신 편안함을 얻었다. 그리고 특별함을 잃고, 평범한 예능이 됐다. 그 명암은 분명 뚜렷하다. 어쩌면 예능으로서의 '나가수'는 이제야 진짜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함과 평범함 속에서 프로그램이 가진 힘을 찾고, 그것으로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나가수' 제작진이 찾는다면, 그 때야말로 <우리들의 일밤> 제 2의 부흥기가 될 것이다.


태그:#나는가수다, #임재범, #이소라, #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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