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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부산 중구 부산역광장에서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를 마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며 영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9일 오후 부산 중구 부산역광장에서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를 마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며 영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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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열다섯 딸과 함께 부산역을 갔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딸과 집을 나서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는데 딸은 흔쾌히 동행을 택한다. 속옷까지 흠뻑 적시며 부산역 광장에 앉아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열다섯 소녀는 분명 내 딸이 아니다. 제주 올레 길을 걷다가 비에 옷과 신발이 젖자 자신이 지닌 '지랄 총량'을 아낌없이 분사하던 딸이다. 결국 새 신발과 새 옷을 사서 목욕탕에 들여보낸 뒤에야 '지랄'을 멈추고 다시 올레에 동참하던 딸이었다.

유독 깔끔을 떨던 딸이 이날은 꼼짝 않고 빗속에 자신의 몸을 적시고 있다. 저녁을 거른 채 말이다. 그 힘은 소금꽃을 찾아 천릿길을 달려온 '희망의 버스'가 부린 마법이었다.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희망의 버스 콘서트'가 끝나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까지 행진이 시작되었다. 딸은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폴리스라인과 차벽으로 막힌 영도조선소 1킬로미터 앞까지 나선다. 뒤로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두려웠다. 딸에게 대한민국의 법을 보여주는 게 너무 무서웠다. 불법 운운하며 해산하라는 경찰의 선무방송을 듣는 딸에게 무엇을 '법'이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법 위에 밥이 있단다."

# 홍익대학교에서

"내 장기를 떼어가라!"
"내 살가죽을 벗겨가라!"

7월 7일 정오 홍익대학교 정문 앞, 굵고 억센 빗줄기 사이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난 먹고 죽을 돈도 없으니 내 장기를 떼어가라"고 외친다. 비옷을 입은 자그마한 여성은 "내 살가죽을 벗겨가라"고 한다.

지난 1월 홍익대학교에서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농성을 했다. 한달에 70만 원 남짓 받던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의 위험에 놓이자 그 나마의 '밥줄'이라도 지키려고 농성을 시작했다. 49일 동안 힘겹게 싸워 '밥줄'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밥줄을 지킨 결과는 냉정했다. 농성 대가로 학교법인 홍익학원은 청소노동자에게 약 2억8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소노동자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라고 말한다.

"소장에 첨부된 구체적 사용 내역을 보면 … 커피, 간식비는 물론 교직원들이 편의점에서 구입한 술값까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청구했다."

소송을 낸 홍익대학교 입장은 간결하다. "청구 내역이 과한 것인지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부분"이다. '밥'을 위한 청소노동자의 농성은 '불법'점거였고, 학교는 법대로 소송을 냈을 뿐이니 '법원'의 판결에 따르자는 말이다.

# 조계사에서

밥은 법을 이길 수 없을까? 지난 4일에는 조계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곡기를 끊은 노동자를 만났다. 한국 자동차산업을 마비시킬 뻔했던 유성기업 노동자다. 그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 좀 자자"고 단 2시간 부분파업을 했다. 회사는 법대로 '직장폐쇄'를 했다. 직장폐쇄는 노동자의 단체행동에 대한 사용자의 대응 성격을 지닌다.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끝나면 당연히 노동자들이 공장에 돌아와 일할 수 있도록 직장폐쇄도 풀어야 한다.

6월 1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파업을 멈추고 공장에 돌아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출근을 하자 용역경비들이 가로막는다. 노동자에게 집에 돌아가 기다리라고 한다. 회사가 연락하는 사람만 출근하라고 한다. 파업을 멈추고 일하겠다고 하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지 않는다. 파업에 대한 방어권으로 주어진 직장폐쇄가 노동자를 향한 '공격권'으로 돌변했다. 직장폐쇄는 파업을 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방어적인 법이지만 파업이 끝나면 직장폐쇄를 풀어야 한다는 '법'조항은 없기 때문에 회사는 법대로 '직장폐쇄'를 유지하며 노동자의 밥줄을 끊는 칼로 이용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에서

법은 밥줄을 끊고 있다. 경영이 어려운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4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힌 다음날 170억 원의 주식배당을 했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반발했고,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정리해고가 법에 딱 들어맞는다고 노동자의 밥줄에 칼질을 했다.

노동자에게 밥은 멀고 법은 가깝다.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자신이 용접공으로 일하는 조선소에서 정리해고 방침이 서자 한겨울 크레인에 올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고, 봄날은 가고 여름이 되었다. 지난 9일에는 더 이상 김진숙 지도위원을 크레인에 매달아 둘 수 없다고 전국에서 부산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희망의 버스'를 타고.

반년 넘게 크레인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성 노동자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크레인을 걸어 내려가는 연습을 한다는 여성 노동자를 만나려는 시민들은 '불법'이 되었다. 길 위에 차벽이 설치됐고 최루액이 담긴 푸른 색깔의 물대포를 쏘아댔다. 50명 가까운 사람이 '불법' 행위로 연행되었다. 시민들의 맨 앞줄에 서 있던 국회의원들도 물대포 세례를 받았다.

밥을 지켜지 못하는 법을, 법이라고 경찰과 검찰과 기업과 정부와 대통령은 말할 수 있을까? 법 위에 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못난 아빠의 잘못된 사고를 깨우쳐 줄 공권력과 법을 만나고 싶다.


태그:#희망의 버스,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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