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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인디언 수니. 광주 <걸리버 소극장>에서 9일 '작은 공연'을 했다.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인디언 수니. 광주 <걸리버 소극장>에서 9일 '작은 공연'을 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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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머니가 아는 노래라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하는 <찔레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동무들의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사설조의 자장가조차 자주 부르는 법이 없었다.

가사라 해봤자 "우리 아기 예쁜 아기 자장자장 잘도 잔다"가 전부였지만 어머니 품에 안겨 자장가를 듣고 있는 동무의 살포시 잠긴 눈은 바다보다 고요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설조 자장가 대신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토닥거리는 소릴 자장가삼아 잠들곤 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착착 감겨오던 서른 중반의 어떤 날. 성인식 치르며 옛 물건 하나 태우는 심정으로 어머니께 물었다.

"근데 어머니, 왜 우리에겐 자장가를 안 불러주셨어요?"
"아가, 너 자장가가 얼마나 힘든 노랜지 아냐? 세상에서 가장 부르기 힘든 노래가 자장가여. 쫌만 잘못 부르면 잘라고 했던 아기도 금방 울어불고, 잘 자고 있다가도 깜짝 놀라서 깨나불고..."

그때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궁하지만 나름 재치 있는 '음치의 변명' 정도로 이해하고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자장가가 참 부르기 힘든 노래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트(박자) 맞추는 것도 힘든 판에 숨결(가락)을 맞춘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9일 오후 7시 광주 '걸리버 소극장'에서 가수 인디언 수니의 공연이 열렸다. 얼마 전 3집 <노스탤지어>를 낸 그는 전국을 다니며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를 영어로 부른 앨범이다.

포크를 하고, 자연을 통해 현실에 개입하려는 모습이 존 바에즈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는 인디언 수니. 이미 <여행자의 로망><나무의 꿈><내 가슴에 달이 있다> 등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르고 있다. 한국 포크 음악이 '세시봉'류를 회고하는 것으로 정체하고 있는 지금, 인디언 수니는 자신만의 탄탄한 포크 토양을 그렇게 쌓아가며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영화 <시네마 천국> 사랑의 테마를 허밍(humming)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비오는 날, 영화 같은 공연을 하고 싶다"는 그가 <여행자의 로망><나무의 꿈> 'wayfaring stranger' <붉은 감> 등을 차례로 부른 뒤 말했다.

"여러분을 자게 해드리겠습니다!"

양철지붕을 토닥거리며 떨어지던 어린 날 외딴 섬의 빗방울처럼 그의 노래는 마음의 지붕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소곤거렸지만 간지럽지 않았고, 요란스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힘을 빼고 갔지만 약하지 않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비의 변주처럼 계속돼 어느 관객의 말처럼 "잠과 함께 술이 그리워"졌다.

인디언 수니의 노래손님으로 온 '바닥 프로젝트'. 광주 대인시장의 풍경을 재치있는 가사로 담아낸 그들의 리듬은 유쾌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디언 수니의 노래손님으로 온 '바닥 프로젝트'. 광주 대인시장의 풍경을 재치있는 가사로 담아낸 그들의 리듬은 유쾌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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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손님으로 온 '바닥 프로젝트'의 유쾌한 축하공연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술판'과 '잠자리'가 함께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인디언 수니는 "일상을 해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읊조렸고 내 머릿속엔 자장가와 일상, 평화 그리고 빗방울 양철지붕 같은 것들이 우산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노래하는 사람들 중엔 관객들에게 완전한 몰입을 요구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적어도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철저하게 자기 색깔 대로 지배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인디언 수니는 일부러 공연의 여백을 두는 경우에 속한다. 관객들의 기침소리, 긴 한숨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도 일상의 한 풍경이고, 자신의 노래 또한 그 일상의 한 풍경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리와 소음을 하나로 승화시켜 버리는 여유의 힘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부르기 힘들다"는 "잠 오게 노랠 할" 줄 알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그의 노래는 곧 잠이고, 평화로운 일상이고, 평화 그 자체가 되나보다. 밥 딜런이 즐겨 불렀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어쩌면 인디언 수니가 걸어갈 노랫길에 대한 그 스스로의 위무(慰撫)일 것이다.

공연은 끝났고 장맛비는 여전히 거리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한 십 미터 쯤 걸었을까?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태그:#인디언 수니, #바닥 프로젝트, #걸리버 소극장,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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