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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 기차 밖의 풍경 그림같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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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나갔으면 당선은 떼 놓은 당상!

탄자니아 다르에살렘에서 타자라 기차를 타고, 잠비아의 키피리 음포시로 향하는 길은 꽤 광활하다. 1860킬로미터의 그 길 중간엔 국립공원도 있어 야생동물을 볼 기회를 잡을 수도 있으며, 두 밤이나 기차 안에서 자야 하고, 기차가 연료 때문에 중간에 멈춘다고 해도 언제 출발할 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여느 아프리카에서 그렇듯, 확실한 것은 없는 것이다.
목적지 잠비아의 키피리 음포시(Kapiri Mposhi)에 도착하는 날도 그러했다.

열심히 달리던 기차가 오전 어느 순간, 멈추더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음료를 마시거나 맥주 등을 사 마실 수 있는 바 칸(Bar couch)에 있던 나와 류지는 각자 책을 읽고, 일기를 쓰던 중 출발이 늦어지는 것을 감지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연료 때문이란다. 언제 출발할지 물어보니 한 시간쯤 뒤면 출발할 거라고 한다.

기차 안에서 팔기 위한 음료수를 보충하고, 승객들은 마을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도 산다.
▲ 타자라 기차가 정차할 때. 기차 안에서 팔기 위한 음료수를 보충하고, 승객들은 마을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도 산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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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선 기차 안의 무중구(스와힐리어로 '외국인'이란 뜻)가 신기해, 하나 둘 아이들이 모여들었던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어느덧 창 밖에 꽤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동생을 안은 단발머리 언니, 동네 골목대장인 듯한 아이, 조용하고 수줍은 많은 아이…. 우릴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자, 문득 저 표정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얼른 내 배낭으로 뛰어갔다.

류지가 있던 곳으로 돌아온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은, 길다란 풍선과 손펌프.

"류지! 너, 강아지 만들 수 있어?"
"응! 나 만들 수 있어. "
"그래? 잘됐다! 우리 애들한테 풍선 만들어주자! "

풍선을 갖고 노는 아이들
▲ 풍선과 아이들 풍선을 갖고 노는 아이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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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풍선 만들어주기'. 우린 둘이었지만, 아이들은 너무 많아 풍선 강아지를 조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진압에 나선 나, 말도 안 통하면서 손짓 발짓 동원해 아이들 앞에서 대장 노릇이다.

"Hey! You are tall. Give to baby first. " (얘, 넌 크쟎아. 아기 먼저 줘.)
"Hey! Give back to baby! " (야, 애기한테 돌려줘!)

어린 아기들한테 먼저 준 풍선을 뺏는 아이, 혹은 아기한테 주는 풍선을 낚아 채 가는 아이 모두 용케도 말은 알아듣고, 착하게 또 돌려준다. 아, 너무 귀여운 아이들. 비디오게임이 뭔지 모르고, 뽀로로도 모르지만 이 아이들은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모여든 아이들에게 모두 풍선을 주진 못해 미안한 마음을 안고, 아이들이 알아듣건 말건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미안하다고. 이젠 풍선이 다 떨어졌으니 돌아가라고. 그리고 한 시간 후쯤 출발할 거라는 말을 두 번 정도 듣고야 우리는 알았다. 언제쯤 출발할지 미리 알 수는 없다는 것을.

망고로 때운 저녁식사. 시골마을에서 산 이 망고는 한국 돈 500원어치.
▲ 망고 망고로 때운 저녁식사. 시골마을에서 산 이 망고는 한국 돈 500원어치.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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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로 돌아와 어느 샌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같은 칸에 있던 러브아주머니가 날 부른다.

"사라 니 친구들이 너 부른다."
"네? 어디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이름. 그것도 한 둘이 아닌 군중들이 부르는…. 맙소사! 창 밖을 보니, 족히 이 삼십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내가 있는 기차 칸의 밖에 와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Sarah, sarah, come! " (사라, 사라! 나와봐!)

선거라도 나갔으면 성공적이었을 이 인파들. 아이들은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뻘 되는 나에게 놀자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기꺼이 창문에 턱을 괴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sheeee~ someone is sleeping! I'm sorry no balloon. " (쉿~ 누가 자고 있어. 풍선 없어. 미안해.)

손짓으로 함께 전달해서 그런지 용케도 우린 말이 통한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 스와힐리어를 모르는 나이지만 우린 그렇게 통해서 주거니 받거니 또 시간을 함께 보낸다.

담당 사무원이 기차에 승차해,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 타자라 기차 안에서 받는 잠비아 비자. 담당 사무원이 기차에 승차해,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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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쿨한 것보단 배려가 낫다

이박 삼일 동안 기차 안에서만 있어야 하므로 맘만 먹는다면 꽤 여러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같은 성별의 네 사람이 함께 묵는 일등칸의 구조상, 옆 칸에 묵고 있던 오만 출신의 아저씨와 종종 통로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다 얘기도 하고 친해지게 되었다.

오만 출신의 아미르는 탄자니아에서 살고 있으며 사업상의 이유로 잠비아를 종종 방문한다며 나의 이야기를 꽤 궁금해 했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종교에 대한 토론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 등 대화를 하다 아미르가 제안했다.

"모르긴 해도 이대로 가면, 새벽 열 두시가 넘어야 도착을 할거야. 어떻게 할 예정이니?"
"글쎄요. 기차가 도착하는 걸 알 테니, 버스가 있지 않을까요? 이 많은 사람이 내릴텐데…."
"사라, 괜찮으면 차 태워줄게. 너도 루사카 간다고 했지? 내 동생이 차 가지고 날 마중 나올텐데 같이 가자."
"아, 정말요? 저야 감사하죠. 근데 친구도 한 명이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며 신기해했던 미국 선교사.
▲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며 신기해했던 미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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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대화도 나누고, 여러 도움도 준 아미르는 꽤 젠틀한 사업가였다. 우리가 대화할 당시, 옆에 외국인 커플이 있었는데 왠지 우리 대화에 끼고 싶어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의 기우일까? 해질녘 다시 통로에서 만난 아미르는 나에게 얘기했다.

"사라, 저 쪽 커플이 아까 말 걸길래 얘기하다 보니 루사카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 차에 태워주기로 했어. 괜찮지?"
"아, 그래요? 음. 근데 류지라고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저 말고, 아시아인 보셨죠? 그럼 아저씨 빼고 총 네 명인데 각자의 배낭만 해도…. 다 타긴 힘들겠네요. 그냥 전 버스 타고 갈게요. 류지만 두고 혼자 타고 갈 순 없어요. 더구나 류지는 영어도 서툴러서요. 혼자 두고 가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요."

타자라 기차는 광활한 국립공원을 가르기도 한다.
▲ 잠비아 가는 길 타자라 기차는 광활한 국립공원을 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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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류지는 돈 없는 나에게, 밥까지 사주지 않았던가. 어찌 류지를 모른 척 하고, 나만 편한 길을 가겠는가. 그러나 아미르는 처음 제의한 것이 나인데, 커플만 데리고 가긴 좀 맘이 불편했는지 일단, 두고 보자며 말을 아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가 넘은 시각. 아미르 아저씨의 동생은 형과의 기쁜 포옹 뒤에 나타난 우리를 반갑고도 난감하게 맞았다. 어떻게든 타 보자며, 배낭을 구겨 넣고, 네 명이서 차 뒤에 앉은 우리. 가운데 끼인 여자 두 명. 나와 커플의 여자.

기차 안의 식당 칸에서 주문한 치킨과 라이스.
▲ 기차 안의 레스토랑 기차 안의 식당 칸에서 주문한 치킨과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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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 바른 한국인인 걸까. 결국 내 엉덩이는 타인을 배려하느라 시트에 붙지 못했다. 정말 두 시간 동안 그러고 있자니, 온 몸이 쑤셔댔다. 그러나 마음까지 예의 바르진 못한지, 중간에 자세를 좀 바꾸자며 제의하지 않는 여자가 원망스럽다. 양 쪽 남자들이 앉은 자리에선 그렇게 앉기가 어려우니 결국 가운데서 한 명은 좀 삐져나와야 하는 상황인데, 그걸 혼자 감당하려니 커플이 얄미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루사카에 있는 우리가 말한 숙소를 찾기 위해, 차로 이리 저리 돈 것이 30분 이상이어서 그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그 새벽에 운전하는 동생에게나 아미르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나중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건네는 데도, 심플하게 땡큐라고 한 마디로 마무리 짓는 그 커플이 참 정 없어 보인다.

물론 태워주겠노라 먼저 제의한 쪽은 아미르 아저씨라 하더라도, 그렇게 심플하게 끝나는 땡큐가 그리 곱지만은 않게 보이는 걸 보니, 난 속까지 예의 바르긴 난 틀렸나보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녀
▲ 기차 밖의 풍경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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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잠비아로 가는 길, #타자라 기차, #아프리카 철도, #아프리카 배낭여행,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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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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