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된 웹사이트.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된 웹사이트.
ⓒ www.noconfidence.org.uk

관련사진보기


지난 6월 6일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잉글랜드 연합정부(보수당+자유민주당)의 대학과학부 장관 데이비드 윌렛츠와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임투표가 이뤄졌다. 옥스퍼드대학은 찬성 283 대 반대 5의 압도적인 결과로 불신임을 가결하였다. 대학 부총장을 비롯한 직원들로 만원을 이룬 강당에서 대학의 시장화, 예산 삭감, 그리고 대학 등록금을 1년에 3290파운드에서 9000파운드까지 인상토록 한 연합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옥스퍼드대학의 불신임투표는 대학 평의회가 현 정부의 장관에 대해 처음으로 불신임을 공개 표명한 것으로 영국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는 등록금 인상과 대학 지원금 삭감 등 연합정부에서 시행 중인 '대학 개혁'에 반대한다는 강력하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투표결 과가 알려지면서 옥스퍼드대학 내외 학생 시위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옥스퍼드대학 이사회 역시 이번 불신임 투표 결과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스퍼드대학 위원회는 불신임투표 결과에 대한 입장을 담은 공식 레터를 대학과학부 장관에게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연합정부의 기업·혁신·기술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학생과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의 개혁이 "현재 제도보다 더 공정하며 국가를 위한 것으로, 어떤 학생도 최대의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한 학생을 위한 많은 재정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평에도 옥스퍼드대학의 불신임은 잉글랜드의 대학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이미 정부 정책 불신임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브래드포드대학은 불신임 투표 실시를 확정하였으며 워릭대학과 골드스미스 대학 역시 불신임 투표에 대한 서명 작업이 많은 관심 속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워릭대학에서는 700명의 직원과 학생들이 대학과학부 장관과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임 투표 청원에 서명했다.

'고등교육 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 연합정부 방침에 대한 반발 확산

영국 대학들의 전반적인 재정은 1)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구성되는) 수입 2) 정부 지원 3) 연구 보조금, 기부, 투자 기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8/2009년의 경우 대학원생과 해외 학생들이 낸 수업료를 포함한 수입이 대학 전체 재정의 대략 29%(약 2540만 파운드)를 차지하였고, 정부 지원금이 35%, 연구 보조금과 기부 및 투자 기금이 36%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발표된 연합정부의 예산 계획에 향후 4년간 고등교육 예산을 40% 삭감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예산 삭감의 시초로 2011/2012년 교육예산 가운데 티칭예산(강의, 과목별 튜터, 학생 상담과 연구 및 행정에 투입되는 예산) 6% 삭감이 결정되었다. 2013년에도 16%의 예산이 삭감될 것으로 보여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삭감 정책은 대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합정부는 잉글랜드의 대학 등록금 상한선인 연간 3290파운드를 내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9000파운드까지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영국 내 많은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거리 시위가 이어졌다. 연합정부가 6000파운드 이상으로 인상하는 대학들에 장학금 지급, 서머스쿨, 복지프로그램 제공 등 저소득 학생들의 대학 지원을 장려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등의 방안을 내놨지만,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계속 터져 나왔고 이것이 결국 옥스퍼드대학의 불신임 투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대학 등록금을 인상해 갈등을 빚고 있는 잉글랜드와 달리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으로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정부는 2000년 1월 스코틀랜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스코틀랜드 학생에 대한 수업료를 폐지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오늘날까지 스코틀랜드 학생들에게 대학 학비를 부담시키지 않고 있다. 또한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학생이 스코틀랜드 대학에서 학업을 하는 경우 연 1820파운드를 부담토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와 달리 지난해 말 웨일즈 의회는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대학 등록금을 1년에 6000~9000파운드까지 인상할 수 있다고 발표했고, 웨일즈 정부는 대학 지원 예산을 12% 삭감했다. 그러나 최근 대학생들에게 1년에 9000파운드까지 학비를 부과하려던 정부 계획이 의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웨일즈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인상된 학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됐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재의 수업료 상한선을 유지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제도에 대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 웹사이트. 스코틀랜드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은 등록금을 낼 필요가 없다.
 스코틀랜드 정부 웹사이트. 스코틀랜드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은 등록금을 낼 필요가 없다.
ⓒ www.scotland.gov.uk

관련사진보기


소득에 따라 학자금 대출 이자율도 차등 적용

영국 전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부모의 재정보증이나 특별한 조건 없이 정부가 운영하는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여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 재학 동안 학업에 열중할 수 있다. 수업료뿐만 아니라 식품·여행·기숙사비 명목의 생활비까지 정부의 학자금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등록금 인상에 따라, 기숙사비의 경우 가구의 1년 소득이 2만5000파운드 이하인 학생들에게는 현행 연간 2906파운드에서 3250파운드로 대출 금액이 인상된다. 이와 별도로 저소득 가정 학생은 연간 1270파운드까지 기숙사비가 면제된다.

영국의 고등교육법은 소득에 따라 결정되는 학자금 대출에는 이자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 조항이 적용된 처음에는 학자금 대출 이자가 부과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학자금 대출 이자율은 전년도 3월의 인플레이션 수치에 근거해 결정되거나 가장 낮은 은행 할인율에 1%포인트를 더한 것으로 결정된다. 2011년 6월 학자금 이자율은 가장 낮은 은행 할인율(0.5%)보다 1%포인트 높은 1.5%로 책정되었다.

학자금 대출에서 두드러진 한 가지 사실은 대출 이자율 역시 소득별로 차등 적용된다는 점이다. 가구의 연소득이 2만1000파운드 미만이면 인플레이션 비율만 적용되며, '2만1000파운드 이상~4만1000파운드 미만'은 인플레이션 비율과 1~3%(소득별 차등)의 이자율이 적용되고, 4만1000파운드 이상이면 인플레이션 비율과 3%의 이자율을 추가로 부가하는 소득별 차등 이자율이 적용된다.

최근 3년간 잉글랜드 대학의 학자금 대출 이자율.
 최근 3년간 잉글랜드 대학의 학자금 대출 이자율.
ⓒ 김용수

관련사진보기


연소득 2만1000파운드 넘어야 상환... 최대 상환 기간은 30년

학자금 대출 상환은 졸업 후 취업해 일정 소득 이상을 갖게 되었을 때 하도록 하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기준 소득은 등록금 인상에 따라 현재 연소득 1만5000파운드에서 2만1000파운드로 상향조정되었다. 즉, 연소득이 2만1000파운드에 못 미치면 학자금 대출을 갚지 않아도 되며, 직장 상실이나 소득 감소 등으로 인해 연소득이 2만1000파운드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학자금 상환은 곧바로 중지된다. 일종의 생활보장이다.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면 완전히 소멸되도록 설계되었으며, 상환금액이 점점 줄어드는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상환은 연소득 중 2만1000파운드가 넘는 금액의 9%를 갚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1년에 2만5000파운드를 버는 경우 4000파운드(2만5000-2만1000)의 9%인 360파운드가 1년 동안 학자금 상환 규정이 적용되는 금액이다. 360파운드를 12개월로 분할하면 최종 부담해야 하는 매월 학자금 상환 금액은 30파운드다.

상환 기간은 학자금 대출 금액과 취업해 받는 임금에 따라 달라진다. 최대 상환 기간은 졸업 후 30년으로, 30년이 지나도록 학자금 상환이 끝나지 않으면 더 이상 학자금 상환 대상자가 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 상환 금액 역시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연합정부는 졸업 후 소득이 낮은 25%의 학생들은 대출한 금액보다 적게 상환하게 될 것이지만, 고소득자들은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상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 재정연구원은 30년 동안 상환하도록 제도를 설계해 졸업자의 약 50%가 30년 동안 9%의 졸업 텍스(tax) 형태를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졸업 후 상위 10%의 고소득자들은 평균 15년 동안 상환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연평균 소득이 4만8850파운드인 중간층은 26년 동안 상환하게 된다.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 영국의 학자금 대출 상환 금액.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 영국의 학자금 대출 상환 금액.
ⓒ 김용수

관련사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은 부자들을 위한 레드카펫"

잉글랜드 연합정부는 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이 공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의회 공공계정위원회는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 연구기능 예산 삭감이 "불공정하고 불필요하며 (그 효과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 교수 로버트 길데아도 연합정부의 대학 재정 구조 변화 시도가 "무모하고, 사리에 맞지 않으며, 부적합하다"며 "결국 대학 시스템을 부자들을 위한 레드카펫"으로 만들려는 교두보라고 비판하였다.

같은 대학의 역사학 교수 하워드 핫트슨 역시 "학비를 인상시키고 교육에 시장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재정을 절약하고 교육의 질을 개선하며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하였다. 세인트 안토니 칼리지 감독관인 마가렛 맥밀리안은 "연합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삭감은 대학을 외국 학생들로 더 많이 채우게 할 것"이라고 비판하며 "우리는 전 세계에서 모인 부자 학생들을 위한 교양학교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연합정부의 등록금 인상과 정부의 재정 지원 삭감에 대한 비판은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유민주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자유민주당 부총재 사이먼 휴즈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연합정부의 교육 접근 방법이 대학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인 부총장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대학마다 장학금을 제공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저소득층 학생들의 대학 입학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연합정부가 등록금을 1년에 9000파운드까지 인상하도록 결정하기 전에, 자유민주당은 '잉글랜드 대학의 수업료 단계적 폐지'를 공약하였으며 자유민주당 의원 20명 이상이 등록금 폐지안에 서명하였다.


태그:#등록금, #대학, #옥스퍼드, #영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