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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결혼식을 마친 이주민부부들이 금오산에 있는 해운사를 방문했다
 합동결혼식을 마친 이주민부부들이 금오산에 있는 해운사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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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토) 오후 2시, 경북 구미역사컨벤션웨딩홀에서 결혼식을 마친 6개국 8쌍의 부부는 곧바로 금오산 중턱의 해운사를 방문했다. 해운사에는 구미불교전통사찰협의회 회장인 법성스님이 주지로 계시며 법성스님은 이번 결혼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차에서 내려 메타세쿼이어가 우거진 입구로 들어서니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나무사이로 삐쭉하게 나온 암벽들이 범상함 산이 아님을 말해준다. 곳곳에 명승지와 유서 깊은 고적, 사찰 등을 품고 있다.

금오산은 불교를 신라에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이 당시 '대본산'으로 불렸던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금오산(金烏山)'으로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오산성으로 들어가는 대혜문
 금오산성으로 들어가는 대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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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출발점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 옆에는 21기의 돌탑이 있다. 1999년 당시의 구미 시장이 12월 30일을 기해 새로운 천년을 맞아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를 꿈꾸며 21기의 돌탑을 세운 것이다.

케이블카 출발점에서 10분쯤 올라가면 금오산성이 있다. 금오산(976m) 정상부의 계곡에  축조된 이 성은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 때 주변 지역의 백성들이 이 성에 들어와 지켰다.  고려 시대에 축조된 이 산성은 조선 말엽까지 그 기능이 존속됐다.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절벽 밑에 위치한 해운사에 도착했다. 정갈한 모습에 산과 어우러진 위치가 수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대둔사 주지로 이주민노동자 결혼식을 후원한 진오스님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대웅전 앞에서 합장한 이방인들은 자신의 나라와는 다른 한국식 절의 모습에 신기해했다. 구미 외국인 종합지원센터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에서 이주민노동자들을 돕는 쏘펙은 캄보디아 출신 승려다. 그는 한국에 온 지 18개월 됐다.

해운사 주지인 법성스님이 이주민 부부들에게 가정 생활에 대해 간단한 설법을 하고 있다
 해운사 주지인 법성스님이 이주민 부부들에게 가정 생활에 대해 간단한 설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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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나온 수박을 서로 먹여주며 행복해하는 이방인들
 해운사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나온 수박을 서로 먹여주며 행복해하는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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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절은 캄보디아 절과 약간 달라요.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나 자비를 베푸는 불교 경전은 같죠. 한국의 산은 정말 아름다워요. 캄보디아는 전국토의 30%가 산이지만 한국처럼 아기자기하고 골이 깊지는 않아요."

일행은 해운사에서 마련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 했다. 신혼여행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먹는 사찰 음식에 기분이 좋았을까? 식사 후 간식으로 나온 수박을 서로의 입에 먹여주는 흐뭇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압둘러웊은 채식주의자다. "고기를 싫어하는 내 입에 꼭 맞아요. 정말 맛있어요"라며 싱글 벙글이다.

이어 결혼식을 도와준 법성스님께  예를 표하기 위해 법당에 들러 한 쌍씩 큰절을 올렸다. 절하는 법을 몰라 허둥지둥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중요하거늘. 법성스님이 결혼식을 올린 이들에게 설법한 내용이다.

"가정이라는 건 항상 내가 먼저 베풀어야 행복해집니다.  받으려하지 말고 내가 먼저 주고자 하는 생각으로 살아야 행복해집니다."

높이 27m에 달하는 대혜폭포. 이곳에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됐다. 날이 가물어 폭포수를 못 본게 아쉽다
 높이 27m에 달하는 대혜폭포. 이곳에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됐다. 날이 가물어 폭포수를 못 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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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 곁으로 가면 대혜폭포가 있다.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수직 27m 높이의 이 폭포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라는 별명도 있다. 이 폭포수는 이 고장 관개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니 큰 은혜의 골이라 하여 대혜폭포(大惠瀑布)라 불렀다. 날이 가물어 폭포수를 볼 수 없음은 큰 아쉬움이다.

대혜폭포는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77년 9월 5일 이 고장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대혜폭포에 도착해 깨어진 병조각과 휴지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 자! 우리 청소 작업부터 하지"라고 말하면서 바위틈에 박힌 유리병 조각을 주웠다. 이듬해인 1978년 10월 5일에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해운사 바로 위 깎아지른 암벽에 동굴이 보인다. 이곳은 천연동굴이며 암벽에 뚫린 큰 구멍이기에 대혈(大穴)이라고도 했으나 신라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득도했다 해서 도선굴이라 한다. 굴 내부는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 된다.

풍수의 대가 도선선사가 수행했던 도선굴. 저 아래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풍수의 대가 도선선사가 수행했던 도선굴. 저 아래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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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로 가는 길. 옛날 철책도 없었을 때 어떻게 다가갔는지 상상이 안된다.
 도선굴로 가는 길. 옛날 철책도 없었을 때 어떻게 다가갔는지 상상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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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로 올라가는 길은 현재  쇠못을 박아 안전하게 만들어 놨지만 도선선사가 수행했을 때만 해도 길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올라갔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8쌍의 이방인들은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한국의 절과 산에 매료되어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산꼭대기의 마애불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미완의 아쉬움은 완성을 위한 준비이다.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가는 이방인 신혼부부들에게서 행복을 본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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