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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년으로 치면 5학년이 되었을 때, 언니 역시 오빠처럼 야간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오빠가 아는 사람의 연줄로 언니는 정부청사 내무부에서 잡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4년 동안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글을 익혔지만 산수는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오빠에게 구구단과 덧셈, 뺄셈 정도를 배우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한 날은 엄마가 급히 서둘러 나를 데리고 서울 노량진의 한 다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내 교적이 없어지자 여기 저기 알아 본 결과 고등공민학교라는 곳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공민학교는 나처름 교적이 없거나 아예 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은 아이들이 다니는 비공식학교였습니다.

처음 들어가보는 다방에 엄마랑 앉아 잠시 기다리자 한 아저씨가 들어왔는데 홍승기 선생님이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엄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나한테 구구단을 외울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네 오빠한테 배웠어요."
"그럼 선생님이 물을테니 대답해 볼래 구구(9곱하기 9)는?"
"81!"

 

이렇게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홍승기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일년이 지나도 구구단을 못 외우는 얘들이 많은데 학현이 정도면 공민학교에 3일 정도만 다니다가 바로 편입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 편입시기거든요."
"그럼 몇 학년으로 넣어야 할까요?"

 

엄마가 묻자 나는 자신이 없어 3학년 정도로 편입을 하고 싶었는데 홍승기 선생님은 내 나이를 묻고는 그냥 나이대로 5학년에 편입을 시키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얘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하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해서 나는 노량진 초등학교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에 한 칸 짜리 교실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실력이 각각이라 글씨를 채 익히지 못한 아이도 있었고 선생님 말처럼 구구단을 모르는 아이도 많았습니다. 단 3일이었지만 공민학교에 다니는 것은 주인집 대문을 지나 구석진 셋방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공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노량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것은 꿈도 못꾸고 교실 앞 작은 공터에서 놀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3일은 빨리 지나갔고 나는 노량진 초등하교 5학년에 편입이 되어 새로 전학을 온 학생처럼 아이들에게 이름을 말하고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시험을 본 것인데 나는 어떤 과목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거의 빵점에 가까운 점수 덕에 가분단에 다시 자리가 배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수분단 우분단...하는 식으로 수우미양가 분단으로 나뉘어져 공부를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고 수분단에는 그냥 보기에도 부잣집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집에서만 지냈고 학교라고는 1학년에 잠깐 다녀 본 경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과서 외에 참고서가 있다는 것도 나는 몰랐습니다. 숙제를 내줘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국어숙제는 뜻구별하고..."

 

'뜻구별'이라는 말까지 생소해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숙제는 해야되고 나는 내 짝 미순이한테 숙제하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미순이네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미순이는 숙제를 할 생각은 않고 놀고만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빨리 숙제를 베껴쓰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노량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집은 거의 걸어다니는 정도의 거리에 있었지만 나는 노량진 공민학교에서 편입을 했기 때문에 그 먼 오류동에서 노량진까지 기차를 타고 다녀야해서 내 마음은 바빴지만 미순이는 느긋하기만 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미순이가 전과를 꺼내놓고 숙제를 했고 나는 미순이가 숙제한 것을 그대로 베껴쓴 후에야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늘 그런 식이어서 미순이는 학교에서도 그야말로 나한테는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하고는 했습니다.

 

"얘는 내가 하라는 건 뭐든지 다한다. 그렇지?"
"응."

 

숙제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가서 물 좀 떠와 봐."
"알았어."

 

나는 몸종처럼 미순이한테 물을 떠다 받쳤습니다. 그럼 아이들이 '꼬붕이 꼬붕이'하며 놀려대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5학년 1학기를 가분단에서 미순이에게 갖은 설움을 당해가며 보내게 되었습니다. 같은 가분단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기까지 합니다. 단 한권의 전과만 있었어도 그렇게 미순이를 따라다니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때는 전과를 사달라고 할 줄도 몰랐고 그저 내게 다가온 상황을 나 혼자 열심히 해결해 볼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에서도 의례히 숙제 때문에 늦게 오는 줄 알고 있었고 오빠와 언니가 낮에 일을 하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 다녔고 엄마는 역시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5학년 1학기는 이렇게 가분단에서 미순이 '꼬붕이' 노릇을 하며 마치게 되었고 방학이 되자 나는 오랜기간의 몸종 생활에서 풀려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학현이 공민학교에 입학하다., #최초의 거짓말,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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