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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국학교행정가협회로부터 '올해의 교육감' 상을 받았을 때의 베벌리 홀 교육감.
 2009년 미국학교행정가협회로부터 '올해의 교육감' 상을 받았을 때의 베벌리 홀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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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학군에 따라 교육환경에 큰 차이가 있다.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의 경우 '서브 어번'이라 불리는 도시 근교 지역은 중산층이 몰려 있어 안정된 교육여건을 자랑한다. 그러나 '어번' 지역, 곧 도시 중심부는 마이너리티 인구가 많고 범죄율이 높다. 학생들의 성적은 대체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계층 차이를 정확히 반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교육자들도 근무지로서 서브 어번 지역을 선호한다.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환경이 열악하다는 건 그만큼 개선의 여지도 높다는 것. 때때로 패기와 열정이 있는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위해 최악의 여건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번 지역의 성적 향상과 부정행위

최근 조지아 주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진실공방을 이어온 시험 부정 사건이 사실로 밝혀졌다. 사실을 확인해 준 사람은 논란의 한복판에서 시험 부정 사실을 극구 부인해온 애틀랜타 공립학교 교육구(이하 애틀랜타 교육구)의 베벌리 홀 교육감. 애틀랜타 교육구는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어번 지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스태프들 중의 일부가 그들에게 맡겨진 신뢰를 저버렸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지원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적은 탓에 부정직함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과감하고도 발 빠른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언론에 공개된 5분 31초짜리 비디오테이프는 홀 교육감이 12년간 몸담아 온 애틀랜타 교육구를 떠나면서 교육구 내의 전 직원에게 보내는 고별사이기도 했다. 홀 교육감의 6월 퇴임은 이미 지난해 말 재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서 확정된 것이었지만, 고별사의 대부분을 시험 부정 스캔들에 할애한 것은 다소 충격적인 마무리였다.

시험 부정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베벌리 홀은 교육행정가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최고의 경력을 쌓아왔다.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로 1999년 애틀랜타 교육구로 오기 전 뉴욕시의 교육구에서 경력을 쌓고 뉴저지 주의 가장 큰 교육구에서 교육감을 지냈다.

홀 교육감 부임 당시 유치원 교사의 90%가 "내 제자들이 자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던 애틀랜타 교육구는 지난 10여 년 사이 수치상으로 엄청난 향상을 이뤄냈다. 애틀랜타 교육구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9년간 지속적으로 시험 점수가 향상됐다. 그 예로, 2009년 조지아 주 학력평가고사(CRCT, Criterion-Referenced Competency Test)의 수학과목에서 5학년 학생의 77%가 기준점을 넘었고, 영어/랭귀지 아트 과목에서는 8학년 학생의 90%가 기준점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 수치들을 10년 전과 비교한 그래프를 보면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애틀랜타 교육구의 1999~2000학년도와 2008~2009학년도 CRCT 결과 비교(4, 6, 8학년 대상).
 애틀랜타 교육구의 1999~2000학년도와 2008~2009학년도 CRCT 결과 비교(4, 6, 8학년 대상).
ⓒ 애틀랜타 교육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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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교육감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대도시의 어번 스쿨 시스템을 12년간이나 이끌어왔다는 점이다. 평균적으로 어번 지역 교육행정가들이 한자리에 머무는 기간은 이의 절반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그처럼 힘든 자리를 오래 지켜온 만큼 전국적으로 가장 각광받는 교육계 연설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결과 2009년에는 미국학교행정가협회로부터 '올해의 교육감 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임기 말년에 터진 시험 부정 사건으로 이 모든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문의 발단은 2009년 8월 애틀랜타 지역 대표신문인 AJC의 조사 전문 기자 헤더 보겔이 CRCT와 관련된 부정행위 가능성에 대해 교육구마다 이의 제기를 했을 때 유난히 애틀랜타 교육구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하면서 비롯되었다.

이후 AJC는 시험 부정 가능성에 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갔고, 그해 10월 통계적으로 비정상적인 점수 향상이 2008년과 2009년 애틀랜타 교육구의 시험 결과에서 노출되었다고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져 갔다. 의문의 근거는 시험 답안지에서 애초에 표시한 답을 지우고 다른 답으로 바꾼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과 그렇게 바꾼 답이 정답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문제가 된 학교들의 경우 이러한 예가 평균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확률보다 월등히 높았고, 바뀐 답은 거의 모두 정답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가 커지자 소니 퍼듀 당시 주지사는 주정부 특별 조사팀을 만들어 대대적인 심사에 들어갔고, 조지아 주 전체에서 약 200개 학교의 2009년 CRCT 결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중 58개의 학교가 애틀랜타 교육구 소속이다. 이 사건 이후 문제가 됐던 학교의 교사들은 자신의 학교에서 시험 감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부정 의혹에 연루된 78명의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은 시험 감독 자격이 박탈되었다. 이번 홀 교육감의 부정의혹 인정으로 인해 이들 중 일부는 사법부의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인 2세 '교육계 스타'의 수난

한편 지난 3월말 <USA투데이>는 워싱턴디시의 대표적 어번 스쿨 시스템인 디시공립학교 교육구의 시험 부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교육구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한국인 2세 미셸 리 교육감이 수장으로 있었던 곳이다. 리 교육감은 2007년 중반에 새로 당선된 애드리안 펜티 워싱턴디시 시장에 의해 서른일곱이란 젊은 나이에 교육감으로 전격 발탁이 돼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고, 불도저식 교육 개혁으로 재임 기간 내내 이슈가 됐었다. 그러다 2010년 펜티 시장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그해 10월 교육감 자리에서 물러났다.

<USA투데이> 기사는 리 교육감 부임 직전인 2006년의 시험 점수와 그 후 2010년까지의 가파른 증가세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교육구의 절반이 넘는 96개 학교에서 시험 부정이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리 교육감이 포상했던 10개의 학교 중 8곳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한 예로, 2006년에는 수학시험에서 오직 10%의 학생만이 합격점을 받았던 한 학교에서 2년 뒤에는 58%의 학생이 기준점을 통과했다고 한다. 영어 점수도 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이런 괄목할 만한 향상으로 2009년에 미국정부는 이 학교에 '전미 블루리본 스쿨'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이는 전국적으로 264개의 공립학교에만 주어지는 상이었다.

리 교육감도 이 학교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이 학교는 '미셸 리 식 교육 개혁'이 최하위 수준의 학교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례로 널리 홍보되었다. 2008년과 2010년에 이 학교의 교사들은 8000달러씩 보너스를 받았고, 교장은 1만 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그런데 시험 부정 조사 결과 이 학교의 약 80%의 학급에서 틀린 답을 정답으로 고친 비율이 평균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확률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난 것이다.

아무도 뒤떨어지게 놔두지 않겠다던 법안

그러면 왜 미국 학교들은 이토록 시험 점수에 목을 매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교사들과 교육행정가들의 '밥줄'이 여기에 달렸기 때문인 듯하다. '아들 부시' 정권 당시 행정부가 야심차게 제안했고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입법화돼 2002년부터 시행된 교육개혁안은 '노 차일드 레프트 비하인드(No child left behind, 아무도 뒤떨어지게 놔두지 않겠다)'. 법안의 기본 전제는, 높은 표준을 세우고 계량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면 개개인의 학업성과가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게다가 이 법안은 2014년이라는 시한을 두고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성별, 장애(장애아동이 시험을 보는 데 보조 수단이 필요하면 제공해 준다. 아주 극소수의 장애를 제외하고는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이 법안에 따라 각 주에서는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기본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학년별 평가시험을 마련해야 했다. 조지아 주의 CRCT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시험이다. 허나 이 법안은 전국적으로 일관된 성취 기준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주마다 다 다른 시험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시험 점수는 각 학교가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재정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적당한 연간 향상(Adequate Yearly Progress)' 기록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2년 연속 점수가 떨어졌다면 공개적으로 '향상이 필요함(In Need of Improvement)'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해당 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들고, 학교는 향후 2년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지 계획을 세워서 보고해야 한다. 재학생들에게는 같은 학군 안에 있는 더 나은 학교로 전학 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후에도 진전이 없을 경우 해마다 점점 강도가 센 제재 조치가 취해지고 6년째에 이르면 학교 폐쇄, 차터 스쿨(자율형 공립학교)로 전환, 학교를 운영할 사설 회사 고용, 또는 주정부에 학교 운영 위탁 등의 후속작업이 뒤따른다. 만약 이런 단계까지 간다면 해당 학교의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의 경력은 그것으로 끝장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괄목할 만한 향상을 보이는 학교에 대해서는 표창과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그러나 법안에서 정한 2014년이라는 시한이 가까워지면서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개혁안을 준비 중이다.

상자 밖에서 온 개혁가들

2008년 12월 당시 워싱턴디시 교육구 교육감이었던 미셸 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타임>.
 2008년 12월 당시 워싱턴디시 교육구 교육감이었던 미셸 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타임>.
ⓒ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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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가인 다이안 래비치는 <뉴스위크>에 기고한 칼럼에서 "교육개혁운동에서 리 교육감만큼 눈에 띄는 스타는 없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시험 점수 중심의 개혁은 공교육을 경쟁과 데이터에 의한 의사결정, 소비자의 선택권 등 자유시장경제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고 혹평했다. "시험 부정은 이런 체제가 빚어낸 예측 가능한 결과"라는 것이다.

리 전 교육감은 재임 시절, 오로지 실력에 의해서만 평가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교사들과 교육행정가들을 퇴출시켰다. 사임 후에도 '스튜던트 퍼스트(학생 우선)'라는 교육 개혁 옹호 단체를 만들어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유명세와 추진력은 불가피하게 곳곳에 적을 만들어 놓았다. 특히 교원노조 측의 비난이 거센데, 이에 대해 올해 2월 미셸 리에 대한 책을 발간한 리차드 위트마이어는 <NY데일리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교사의 질'에 초점을 맞췄던 미셸 리의 개혁을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명백하게도 반대파들로서 미셸 리의 성과를 무디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사기를 쳤으며, 개혁에 실패했고, 부정직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다이안 래비치와 시각은 다르지만 위트마이어 역시 이번 시험 부정 사건을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이 와중에도 플로리다 주, 아이다호 주, 뉴욕 주 등의 주지사들과 공화당이 다수인 주들에서는 속속 미셸 리가 실행에 옮겼던 모든 것을 입법화하려고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위트마이어는 이번에 미셸 리 부정 사건을 보도한 <USA투데이>의 전임 논설위원이기도 하다.

베벌리 홀과 미셸 리. 두 사람은 모두 다루기 힘든 어번 스쿨 시스템에 메스를 들이댄 뛰어난 교육행정가들이었다. 그들은 빈곤과 범죄가 휘감고 있는 밑바닥 교육 현실에 뛰어들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눈에 띄는 성과로 교육계의 스타가 되었다. 이 둘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개혁 노력을 높이 평가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이제 똑같이 시험 부정이라는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두 사람 모두 마이너리티 출신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너무도 크고 복잡해서 얼개를 잡기가 쉽지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이권이 걸린 문제들이 많아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난감한 경우도 많다. 특히 어번 지역의 교육은 학생들이 속한 사회경제적 계층 특성과 맞물려 더더욱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이민자라는 배경을 가진 두 여성이 진행한 개혁은 '상자 밖에서 문제를 보는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상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은 쉽사리 이들을 포용할 것 같지 않다.


태그:#교육개혁, #시험, #베벌리 홀, #미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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