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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바닥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5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바닥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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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일요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행진하던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연행됐다는 문자를 받고 곤충 사진을 찍으러 올라갔던 백련산에서 달려 내려와 광화문으로 나갔다. 거리는 살벌했다. 시동을 건 경찰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고 무전기를 든 사복 경찰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리고 경찰의 폭력적 연행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대학생들을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둘러싸 위협적인 분위기였다.

그때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KT 앞으로 나가 지켜 보았다. 꽃다운 아이가 삭발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한껏 멋부린 채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높고 맑은 웃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젊음을 한껏 즐겨야 할 나이에 제 목을 치는 심정으로 머리를 잘랐을 모습을 떠올리니 어느새 눈가에 습기가 차올랐다.

한 학기 5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늘어나는 빚 때문에 입대한 아들

나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싸우는 대학생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것은 곧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던 큰아들이 지난 3월 군대에 갔다. 춘천 102 보충대에 아이를 내려놓고 돌아오는 내내 자동차 안에서 울었다. 등록금이 부담스러워 학업을 중단하고 입대한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울기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조르지 않았던 아이, 용돈을 주려면 돈 있다고 한사코 거부하던 아이,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세탁기를 도맡아 돌리고 음식물 쓰레기처리, 재활용 쓰레기 분거 수거 등 집안 일을 도우며 딸 노릇까지 하던 아이였기에 미안한 마음은 더 컸다.

그 흔한 과외 한 번 안 하고 사설학원 한 번 안 다녔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할 만큼 늘 열심히 공부했던 아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한테 절하고 살라'고 할 만큼 성실하고 착한 내 아이에게 나는 늘 미안하기만 한 엄마였다. 일 때문에 바빠서 미안하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이제는 살인적인 등록금 때문에 아이 앞에서 고개를 들기 힘들만큼 미안하다.

입학할 때부터 대출 받고 친척들에게 빌려서 2학년 1학기까지는 등록했지만 5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대기가 너무 힘들었고 갈수록 빚만 늘어나 아들은 휴학하고 군대가기 전까지 내내 키즈레스토랑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알바를 했다. 입대하기 전날 알바해서 모은 돈 200만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내놓고 등록금 때문에 빚진 돈을 갚으라고 한 아이였다. 엄마로서 미안함을 넘어 민망하기까지 했다.

내년에는 둘째 아들이 대학에 간다. 이 녀석도 제 형을 닮아서 착하고 성실하다. 제 형과 마찬가지로 과외나 학원 수업 없이도 전교 1, 2등을 유지한다. 그래서 학교에 수업료도 내지 않고 오히려 한 학기에 50만 원 정도 장학금을 받아온다. 아이 둘은 속 썩이는 일 없는데 오히려 부모가 대학 등록금 때문에 아이들 속을 썩이는 집이 바로 우리 집이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돈 때문에 자식 공부 못 시켜 '가슴 아픈 엄마'가 되긴 싫었는데...

 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셜센터 앞 계단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셜센터 앞 계단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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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넘게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나가는 동안 문득문득 등록금 때문에 암울했던 내 청소년기가 기억의 상자 안에서 튀어 나와 내 가슴을 할퀴었다. 빚보증에 가산을 잃고 어린 자식 줄줄이 이농민이 되어 상경하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와 무허가 판자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막노동꾼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해서 등록금을 대줄 여건이 안 되었기에 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근로청소년을 모아 중학 과정을 가르치는 야학을 거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초등학교 동기들과 나란히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등록금 미납으로 등교정지 처분을 알리는 대자보가 학교 현관 앞에 두어 번 나붙은 뒤로 학교에 오지 말라고 가로 막는 사람은 없었지만 학교에 가기가 죽을 맛이었다. 결국 학력고사를 한 달 앞두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나와 직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동대문 새벽 시장 숙녀화 매장 점원, 동대문 지하상가 신발소매상 점원, 학교 교무실 사환, 영세설비업체 사환, 영세 가방공장 시다를 전전하다 어렸을 때의 특기를 살려 웅변학원 강사가 되었다. 사설학원은 고용이 불안정해서 여러 학원을 전전했는데 학원을 옮길 때마다 고졸이라고 학력을 속였다. 다행히 졸업증명서를 요구하는 학원은 없었다.

하지만 IMF를 맞아 다니던 학원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일은 계속해야 했다. 나이가 많아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라 독립적으로 학원을 운영해야 했다. 학원설립을 하려면 고졸 학력이 필수라 서점에서 고등학교 참고서를 사다가 수학 공식을 외우고 영어 단어를 다시 외우며 한 달간 미친 듯이 공부해서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는데 그 때 내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고졸 학력을 취득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내 아이들은 잘 가르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못 사는 집 딸년은 공부하겠다고 바둥거리는 것도 불효'라 하던 우리 엄마처럼 자식 공부 못 시켜 마음 아픈 엄마는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과 달리 현실은 '못 사는 집 자식은 공부 잘하는 것도 불효다'고 하는 엄마가 될 판이다.

40대 후반 이후의 장년들 중에는 나처럼 가정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막바로 사회에 나가 저임금에 혹사당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 많다. 단 한 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노동 현장을 지켰지만 장년이 된 지금까지도 삶 자체가 버거워 청년기에 접어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 비축한다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와 다름없고 대학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고 등이 굽는다. 배우지 못한 한을 대물림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육까지 의무 교육이 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문제로 남겨 두고 먼저 반값등록금을 빠른 시일 내에 실현해야 한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값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햇빛 보기도 어려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지친 아이들이 오늘도 거리에서 비명처럼 외친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나는 이 아이들의 외침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얘들아, 엄마가 응원왔다!! 너희들을 지지한다!!"

덧붙이는 글 | 한서정씨는 '등록금과 교육비를 걱정하는 학부모 모임' 회원입니다.



#반값 등록금#광화문#등록금#한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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