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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인기의 기폭제가 된 임재범
 <나가수> 인기의 기폭제가 된 임재범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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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가수다>(아래 나가수)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 공식 음악차트인 '가온차트'는 "3월 1일부터 5월 28일까지 국내 주요 음악 사이트에서 판매된 <나가수> 관련음원 다운로드를 조사한 결과 2398만 9471건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김범수의 <제발>은 209만 6621건으로 최고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위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110만 779건)가 차지했다. 윤도현의 <나 항상 그대를>이 108만 9929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107만 4155건, 백지영의 <약속>이 104만 4065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1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일간지와 포털사이트에는 지난 일요일 <나가수> 시청률이 예상 외로 저조했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쟁이 한창이다. 그만큼 <나가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는 반증이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 7명이 나와서 노래대결을 벌이는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가수>가 뜨는 까닭은

가수는 '훈련을 받고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전문적인 직업인이란 얘기다. 따라서 가수의 생명은 노래 잘하는 데 있다. 어설프거나 설익은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서는 사람을 가수라 부를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래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얼굴과 몸매와 춤이 전면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본업인 노래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들로 승부하는 가수 아닌 가수가 대거 등장하게 되었던 터다. 여기서부터 대중가요의 위기, 음반판매의 부진,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 같은 전반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이런 시점에 <나가수>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다.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출현하여 자신의 이름과 경력과 명예를 걸고 노래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사실 <나가수> 구성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소라, 박정현, 윤도현, 김범수 등등.

여기에 중도하차한 정엽과 김연우 등도 무시할 수 없는 가창력의 소유자 아니었던가. 더욱이 임재범이 합류하면서 <나가수>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그러다가 임재범의 하차와 옥주현, 김동욱의 합류로 시청률이 다소 하락하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나가수>의 관전 포인트

<나가수>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는 '경연'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객석에 앉아있는 500명의 평가단이 어떤 판단과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가수 개개인의 성적과 순위가 매겨지고, 그것에 기초하여 생존자와 탈락자가 생겨난다. 달리 말하면 <나가수>는 아주 처절한 '서바이벌 게임'인 셈이다.

내가 살려면 그대가 죽어야 하고, 당신이 살면 내가 죽어야 하는 비정한 생존게임이 <나가수>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극한적인 생존경쟁에 내몰린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유명 연예인의 신상털기나 하고, 옛날에 어쨌다는 둥 흘러간 잡소리와 누가 누구와 결혼을 하네 마네, 하는 식의 시시콜콜한 뒷얘기로 덧칠된 허접한 연예계 이야기에 식상해왔다.

그러다보니 요즘엔 뉴스시간에도 연예인들의 근황에 대한 자질구레한 보도가 정식 뉴스의 하나로 방송되는 실정이다. 어처구니없는 세태다. 어쩌자고 황금시간대에 그들의 사생활을 이리저리 캐대는 황색언론의 틈바구니에서 살게 되었는가, 우울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가수>는 경연 현장의 청중과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욕구를 정면으로 충족시키고자 한 본격적인 가요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떤 이의제기나 불만도 없어야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실상이 문제다.

<나가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

MBC <나는 가수다>
 MBC <나는 가수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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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무리한 경연방식이 문제다. 지금 <나가수>는 3주에 2회 경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경연에 참가하는 가수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얘기다. <나가수> 말고도 나름의 생활이 있건만 가수들은 끝없는 경연에 내몰리고 있다. 몸 상태가 안 좋아도 방송은 진행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여유롭다고 말하는 가수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가수의 노래가 좋으려면 그들의 심신이 건강하고 자신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누구 말에 따르면, "내가 노래방에서 해봐서 아는데" 건강상태가 좋아야 노래도 잘 되는 법이다.

둘째, <나가수>의 불편함은 무한경쟁을 일요일 오후시간에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및 언론권력의 화두는 '경쟁'이다. 경쟁에서 시작하여 경쟁으로 끝나는 무한경쟁의 원칙이 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승자만이 기억되고 축하받는 추악한 사회 대한민국. 꼴찌에게 격려와 위로의 박수가 아니라, 손가락질과 왕따의 저주를 퍼붓는 저급하고 속악한 나라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것에 서열과 순위를 매기고 그것에 따라 인간 개개인을 평가하는 가혹한 격투기의 나라 대한민국.

거기 무임승차한 프로그램이 <나가수>다. 우리가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이유가 경쟁을 통한 7위 떨어뜨리기는 아닐 것이다. 정말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다채로운 노래 한마당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지, 새삼 생각해봤으면 한다.

셋째, 시청률 문제다. 경연이 없으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시청률이 떨어지면 광고주가 떨어져 나가고, 그러다보면 고만고만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디와 방송사는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는 다시 우리 사회의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다. '될성부른 놈 몰아주자'는 선택과 집중이 낳은 비이성적인 재벌신화에 우리는 여전히 환상을 가진다.

삼성의 사외이사에게 연말에 떨어진다는 수십억 원의 스톡옵션이 머잖아 내게도 올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것이 나의 세금에서 비롯된 것을 모른 채 말이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서 지나치게 적은 법인세와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현 정부의 과도한 환율방어에 힘입은 수출신장과 수익증진이 재벌기업 삼성에게 가져다주는 거액의 스톡옵션이 결국 내주머니 돈에서 나온 세금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그리고 환호작약한다. 마치 삼성의 승리가 내 것인 것처럼 "삼성 만세!"를 목 놓아 외쳐댄다. 아아!

넷째, 정말로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가수들도 나올까,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의 취향과 희망사항은 천차만별이다. 그것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고 가수들을 선별하는지, 그런 잣대가 보다 분명하고 입체적이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자우림'의 김윤아나 매력적인 목소리의 나윤선, 우리나라의 휘트니 휴스턴 신효범, 진정한 뮤지션 조용필과 우리의 영원한 누님 심수봉을 보고 싶다. 과연 누가 우리시대의 진정한 가수인가. 그런 기준을 확고하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나가수>가 진정한 장수 프로그램이자 우리의 막힌 울화를 통쾌하게 뚫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면서

<나가수>는 볼 만하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볼 만하다. 그래서 아직 나는 <나가수>를 본다. 나처럼 가요 프로그램과 담 쌓은 지 수십 년 경력을 가진 사람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으는 <나가수>의 거듭되는 진화를 바란다.

무한경쟁과 과도한 긴장, 탈락에 대한 공포와 청중반응에 대한 예민한 반응 따위가 가수의 진짜 실력을 반감해 버릴 수 있다. 더욱이 유명세를 탄 음원의 곡이나 유명가수의 히트곡이 얻어 걸릴 경우 이것은 거의 행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가수'의 본질은 자신의 노래와 대중의 반향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고도의 충격요법과 속도감 있는 진행, 아슬아슬한 서바이벌 방식 등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의 본질에 맞는 편안하고 즐거운 노래 한마당이 되었으면 한다. 창밖에 여름의 녹음이 한창이다. 곧 자연의 가수, 매미와 베짱이가 여름을 목 놓아 노래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대구여성회> 6월호에 수정ㆍ축소되어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나가수, #경쟁, #서바이벌, #순위,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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