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문학을 참으로 싫어하는 아이들도 문학기행은 너무 좋아하니 말이다. 여행이 좋아서일까? 여행이 가장 문학적인 것임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지난 6월 4일, 전남 순천남산중학교 도서관은 문학의 참된 맛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남도문학의 세계로 떠나자'라는 주제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전남 장흥 일대를 돌며 문학과 자연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순천에서 장흥 해산토굴로 가는 길에 문학기행 퀴즈를 풀고 있다.
▲ 장흥으로 가는 길 순천에서 장흥 해산토굴로 가는 길에 문학기행 퀴즈를 풀고 있다.
ⓒ 황왕용

관련사진보기


순천에서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리면 안양면 율산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작가 한승원의 집필실인 해산토굴이 있다. 한 작가가 머물고 있는 해산토굴과 달 긷는 집은 갯내음을 머금은 해풍이 따스하면서 시원하게 감싸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 '깨달음과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한승원 작가의 강연이 열렸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약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승원 작가는 과거 교직 시절의 일화와 마음을 닦는 방법을 곁들어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작가의 저작 <피플 붓다>를 통해 어떤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인가를 보여주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안인호 교장선생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또한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의 손자 상호와 김정순영과 같이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선생님 앞쪽에 앉은 남학생들을 의식한 듯 작가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임을 강조하며 교직시절의 일화를 꺼내든다.

남학생이 큰 거울을 다니고 다녀서 불러 세워 물었어요.
"왜 거울을 가지고 다니느냐?"
"아름답게 핀 꽃에 거울을 비춰주려고 가지고 다닙니다."
나는 거기서 더 발전하여 항상 몸에 거울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내 눈을 통하여 꽃을 비추고 사람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또한, 책이라는 것이 마음의 거울임을 강조하여 책 읽기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범하기 쉬운 생각의 오류를 올바르게 잡아준다. "아이들을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에 눕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청중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작가는 강연뿐만이 아니라 직접 재배한 녹차를 덖어서 차를 내어주기도 했다. 쓰디쓴 녹차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이날만큼은 녹차의 부드러움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한승원 작가에게 푹 빠져들어 연예인 못지않게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였다.

'달 긷는 집은 곧 깨달음을 얻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신이다.'라고 하신 강연회 모습과 소녀 팬과의 사진 촬영.
▲ 달 긷는 집 '달 긷는 집은 곧 깨달음을 얻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신이다.'라고 하신 강연회 모습과 소녀 팬과의 사진 촬영.
ⓒ 황왕용

관련사진보기


한승원 작가와 헤어진 후 한승원 문학 산책로로 향했다. 해산토굴에서 내려다보이는 해변에는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한승원 작가의 시비를 바닷길을 따라 세워두었다. 바다내음과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어울려 일상의 스트레스와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학생들에게 시는 어떤 의미일까? 오늘 하루만큼은 복잡한 시험문제 속의 시가 아닌 그냥 멋대로 즐기는 시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승원 문학 산책로에서 시를 읽고 있는 아이들
▲ 시를 읽다. 한승원 문학 산책로에서 시를 읽고 있는 아이들
ⓒ 황왕용

관련사진보기

한승원 작가와 헤어진 후 우리에게 친숙한 이청준 소설가의 생가로 향했다. 이청준 소설가의 생가를 방문하기 전 그의 작품 <눈길>을 읽었다. <눈길>에서 노인은 가난에 치여 집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노인은 듣고 내려온 고등학생 청준에게는 사실을 숨긴 채 이미 팔려버린 집에서 하룻밤을 재운다. 그 팔려버린 집을 노인은 이렇게 묘사한다.

"다섯 칸 겹집에 앞뒤 터가 운동장이었제."

학생들은 문학의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함과 설렘이 있었다. 직접 보고 난 후 이게 무슨 운동장이냐고, 뭐가 부유한 집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냥 책만 읽었을 때와 다르게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인솔교사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한다.

"옛날 시골에서 이 정도면 부자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노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큰아들의 주벽으로 노인이 살던 집을 잃고 쫓겨나게 되었으니 그 집이 어떻게 보일까?"

역시 정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말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눈길>의 노인이라도 되는 양 마당 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집을 쳐다본다.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처지의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옷궤를 가져다 놓고 마치 팔리지 않은 집인 것처럼 아들과 하룻밤을 지낸 노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시나브로 아들의 마음, 노인의 마음과 통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를 알고 깨달음을 얻음.
▲ 작가의 집 앞에서 책을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를 알고 깨달음을 얻음.
ⓒ 황왕용

관련사진보기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에 비해 직접 작품의 배경지를 보았을 때의 아이들은 사고의 폭이나 깊이부터가 달랐다. 이것이 문학기행이 가지는 묘미일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들에게 남도 문학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알게 하고 학부모들에게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녀들과 함께 문학지를 견학하면서 자녀를 이해하고 문학이 우리 삶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다.


태그:#문학기행, #남도문학, #이청준, #한승원, #남산중학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