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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형질간의 교배를 동종교배, 이질적인 형질간의 교배를 이종(잡종)교배라고 부른다. 잡종 1세대는 부모의 강점만을 타고나기 때문에 부모세대에 비해 우수하지만 반대로 동종 특히 근친교배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열성 유전자의 발현이 강해지면서 기형아나 열정개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제주도 조랑말 : 고려시대 일본정벌을 위해 몽골 초원을 누비던 최우량종을 도입하였으나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동종교배를 계속하다 보니 현재의 조랑말로 퇴화됨

- 유대민족 : 나라를 잃고 수천 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다보니 수많은 이민족들과 섞이게 되었고, 그 결과 순수한 혈통이 아닌 독일계 유대인, 미국계 유대인 식으로 혼혈하게 됨으로써 잡종강세(heterosis)의 유전적 형질을 띄게 됨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에 나오는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에 대한 내용이다. 생명체는 동종교배(Inbreeding system)가 반복될수록 열등해지고 이종교배(Outbreeding system)에서만 강인한 우성이 나온다는 것으로, 외부의 다른 요소나 형질을 흡수하지 못하고 폐쇄된 상태로 존재하는 유기체는 결국 쇠퇴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으로 자주 회자되곤 한다.

순혈주의와 배타적 문화, 닫힌 사회와 쇄국 이념은 고립된 열성인자들의 군집만을 형성할 뿐 결국 쇠락하고 만다는 것(통일신라와 조선의 쇠망)을, 반대로 다양한 형질과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종 교배된 '잡종' 국가들은 강하게 성장한다는 것(다민족국가 미국)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이 법칙은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나 기업, 단체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자.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대기업과 소기업, 배달민족과 이민자, 학연, 지연을 포함한 수많은 인맥(人脈)의 사슬 등 세상은 온통 아(我)와 타(他)를 구분짓는 장벽과 병풍들로 가득하다. 공통점을 찾기보다 차이점을 규명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관계의 질서. 오직 끼리끼리의 집합으로 동종 간 트러스트를 구축해가는 패거리 문화는 이종 간의 소통과 결합을 방해하며, 다시 다양한 형태의 지배, 피지배 구조로 확대 재생산된다.

깨달음을 얻은 한 개인이 이 비루한 편 가르기 게임에 동승하지 않고 중도의 입장을 취할 수 있으되, 그 길은 비좁고 또 불안하다. 사회는 아웃사이더(Outsider)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힘없는 소수자는 외톨이가 되거나 다수의 횡포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기 쉽다. 결국 정의(Justice)란 파워게임에서 이긴 자의 논리 아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결국 어느 편에 속해야 하고, 또 그 편에 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선 줄이 '오답'이 아니기를, 내가 잡은 줄이 끊어지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수많은 동서고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분리와 단절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늘 위험한 도박이다. '흑과 백' 두 가지의 빛깔만을 용인하는 무채색의 세상은 캔버스 위에 다른 일체의 물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강박하고, 박제화를 거부하는 이탈자들을 죄인으로 단죄하려 한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비행한다'는 교훈은 단지 아름다운 수사일 뿐, 이쪽 혹은 저쪽 중 어느 한 편에 줄을 서지 않으면 이방인의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원래 세상이란 그렇게 생겨먹은 것 아니냐고,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맞다. 재일교포 4세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자 귀화를 거부하고 조국의 품에 안겼으나, 차별과 냉대 속에 결국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대표로 국제경기에 나서야 했던 '아끼야마 추성훈'을 보면 된다. 그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외로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었다.

지금 우리는 삼투(滲透)와 교호(交互)가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불통(不通)의 끝단에 어떤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짐작키 어렵지 않으나, 여전히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낡은 질서(Ancient regime)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하면 된다'는 기본원칙이 여전히 현실에서 먹힐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일차원적 세계관을 넘어 다중의 이해관계자가 함께 승리하는 이종교배의 신화를 원한다. 콩쥐의 마음씀에 감동한 팥쥐 엄마가 친모(親母) 이상의 빅 마더(Big mother)로 거듭나 이복자매를 훌륭한 딸들로 키워낸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금지된 사랑으로 잉태된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두 가문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올리는 혁신 기업들이 생겨나고, 정부와 기업체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시민사회 영역에 합류하여 인생 이모작을 활발하게 펼쳐가며, 영역간의 인력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제3섹터가 공동의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를, 동종교배로 인한 퇴화라는 구 신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웹2.0 시대를 넘어 장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 이질적인 네트워크와 접촉하면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 발전해 가고 있다.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오랜 기간 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섞이고 교배되는 융합과 통섭을 통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복합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경제'로 표현되는 제3섹터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융합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런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좋은 장(場)이다. 국가와 시장으로 부터 독립적이지만 두 영역과 중첩되어 있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하이브리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흥 섹터(Sector)는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필요로 한다.

구습(舊習)에 물들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신세대(New-age), 영리와 비영리 간 통합과 시너지를 추구하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블록과 경계를 넘어 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중개인(Middle-man), 새로운 땅을 일구어가는 사회혁신기업가(Entrepreneur),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호모 사피언스'가 그들이다. 

Social economy (by Young Foundation)
▲ 사회적 경제 Social economy (by Young Foundation)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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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전령사'는 언제쯤 나타나게 될 것인가? 이미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기성의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고, 박제화된 삶을 거부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신(新)인류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는 '과거의 유령들이 무섭도록 지독하게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어' 변화의 조짐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얼마나 자신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대했는가?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이를 대하면서 상대방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았는가? 주의나 주장이 아무리 옳아도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면, 결국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른 것이나 진배없는 법.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려 하고 있는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대립과 반목, 고립과 해체의 언덕을 넘어 '융합의 나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도정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 과연 새로운 땅에 도착할 수 있게 될 것인지조차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물은 끓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끓고 있다는 사실을.

파랑새는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게재 후 희망제작소 홈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동종교배, #이종교배, #융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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