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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농촌에서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꽤 대접을 받는 편이다. 지역을 지켜오고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할 젊은이와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와는 현격한 차이의 대우다. 그들은 지역에서 어딜 가든지 무시와 냉대의 대상이다.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른 차별의 정도도 차이가 크다. 국내에 시집을 와서 '생산'을 맡아 국력에 이바지하는 여성은 별로 의식을 하지 않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돈을 벌려고 들어와 대한민국의 여성과 연예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엔 가혹한 멸시의 행위가 가해진다.

 

반말과 멸시는 선진국의 자존심이 아니다

 

2009년의 사례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일한 보노짓 후세인 교수(28)는 경기도 부천에서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 친구와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회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쪽에서 누군가가 "시끄러워! 더러운 XX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이 개XX야, 냄새나. 너, 어디서 왔어?"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그이지만 양복을 입은 그 사내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놀란 표정의 후세인 교수를 보고 그 사내가 영어로 "Where are You from?(너 어디서 왔어?)"이라고 묻더니 연방 "You Arab! Arab!(너 아랍이다! 아랍이야!)"을 반복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사내에게 항의하자 이번에는 욕설이 친구에게로 향했다. "조선X, 아랍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으냐?" 참다못한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의 양복 깃을 잡고 버스 기사에게 경찰서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던 10여 분 동안 버스 안에 있던 사람 중 누구도 그 상황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앞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40대 여성 승객 한 명만이 사내를 말리고 증인이 되어주겠다며 경찰서에 따라나섰다.

 

경찰은 한 술 더했다. 신분증을 본 경찰 한 명이 다짜고자 반말을 하며 "네가 교수야?"라며 다시 신분증을 가지고 어디론가 갔다가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경찰은 1982년생인 그가 교수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는 듯했다. 지구대에서 경찰은 사내와 후세인 교수의 친구에게는 존댓말을 썼지만, 후세인 교수에게는 반말했다.

 

지구대에서 진술하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내는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괴롭혔지만, 경찰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서 경기도 부천 중부경찰서로 돌아온 세 사람은 다시 조사를 받았다. 날이 지나 새벽 2가 넘어서야 후세인 교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내가 먼저 조사를 받고 경찰서를 떠난 후였다.

 

이 사건은 '얼굴이 검은'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교수라는, 의식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가 아니었더라면 뉴스조차 되지 못하는 흔한 일이다. 매일 지하철, 버스, 길가, 공장 안 등에서 언어폭력뿐 아니라 신체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 현실이다. 외국인 남성에게 한국은 가혹한 공간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짜 다문화 가족'이 수를 늘려 가는 농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순수혈통으로 맺어진 가족은 다문화 가족을 냉대하고 멸시하며, 다문화 가족에서 생기는 일탈은 훨씬 더 큰 스캔들로 확대되어 주민들의 입을 오르내린다.

 

물론 일부의 사례를 전체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수를 늘려가는 외국인들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의식은 매우 폐쇄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보수 세력에서 중시되는 혈통주의와 '한민족'이라는 관념은 그들을 우리 사회의 주류로 인정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 주류로 설 수 있는 기회 주어야

 

책의 저자이며, 정부에서 다문화 전문가로 다년간 활동한 이성미 여성가족부 행정관리담당관은 서문에서 "이제는 다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라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 감수성을 개발하여 우리 사회 한 부분의 주류로 설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러한 다양성이 국가번영을 이끌 수 있도록 정책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책에는 법적인 다문화 가족인 결혼이민자 외에도 외국인근로자, 유학생, 북한이탈주민까지 다문화 가족으로 포함하였다. 이들의 현실 모습을 비롯하여 국제결혼의 역사, 실태, 편익과 비용, 사회통합, 정책변화, 선진국의 다문화정책 사례 등을 소개하고 오늘 이미 깨져버린 단일민족의 신화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다.

 

미래사회를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의 오바마를 키우려면 다문화 자녀의 출생에서부터 취학 전 교육지원,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체 교육과정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들을 내버려두었을 때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유아기 때부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훨씬 고효율 저비용이라는 사회적 상식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엄마 통장으로 매월 '언어 지도비'를 입금해 두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일반사회에 편입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권역별 대안학교 설립과 방송 및 사이버 교육을 지원하고 다문화에 대한 배려를 수용한 교과서 수정작업이 절실하다는 내용이다.

 

이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정부, 지자체, 학계와 기업이 손잡는 다문화 클러스터로 그들이 자원으로 성장할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농촌에서 출산인력은 다문화 가정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농촌지역 면 단위의 지역엔 초등학교 대부분이 반수 이상의 다문화 자녀를 학생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해 출산율을 높이고, 전통적 가치에서 자유로운 이들을 통해 지역감정을 없애는 데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 테마파크와 음식점, 외국어 강사 육성 등이 현실적인 실천방안이며 이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교육을 통해 일반의 인식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은 통계와 상담사례 등을 통해 설득력이 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만 해서는 결코 사회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은 '다문화'에 미친(?) 저자의 방대한 자료와 상식을 통해 부드러운 화법으로 접근하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다문화코드 - 코리언 드림 해법 찾기>(이성미 씀, 생각의나무 펴냄, 2010년, 23000원)


다문화 코드 - 코리언 드림 해법 찾기

이성미 지음, 생각의나무(2010)


태그:#다문화코드, #다문화정책, #코리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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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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