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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일본·서독 등 굴지의 전기 메이커들은 모터와 엔진을 병용하는 새로운 타입의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새로운 이 자동차는 '전기 자동차'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40% 이상 석유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이브리드차' 뉴스다. 서독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주 오래 전 기사다. 1980년 5월 22일자 <매일경제> 보도, 이것만 봐도 과거 우리나라 하이브리드차 개발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실감이 난다.

하이브리드차가 '남의 집'이야기던 것은 비교적 최근까지의 일이다. 2007년 '한국은 하이브리드차 후진국'이란 보도만 봐도 그러하다. 당시 이 신문은 "미국과 일본이 전 세계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 자동차업계는 남의 집 잔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이브리드차 전성시대, '우리 집' 조상님은?

쏘나타 하이브리드 주행 모습
 쏘나타 하이브리드 주행 모습
ⓒ 현대기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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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우리 집'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최근 현대차가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기아차가 K5 하이브리드를 나란히 내놓으면서, '하이브리드차 전성시대'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를 찾는 소비자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잔치' 분위기다.

그래서인가. 문득 '우리 집 족보'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하이브리드차의 시조, 맨 꼭대기에 있는 조상은 누구이고, 어떻게 생겼을까 말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고 싶다. 그 '영광'의 주인공은 현대차일까, 기아차일까. 아니면 '르망'이란 차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대우자동차일까.

시간을 1993년 3월 11일로 되돌리니 마침내 '조상님'이 나타난다. 그 모습, 의외로 다이나믹하다. 위쪽으로 열리는 문, 이른바 '걸윙 도어'에, 차량 뒤편에 큼지막한 프로펠러가 인상적이다. 또 다른 사진을 보니 '홍익대학교'란 선명한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전기동력과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미래형 저공해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됐다. 홍익대 김관주 교수(36·기계공학)팀은 KUL 비행기 제작소와 한국 듀폰, 선경 인더스트리 등 11개 업체의 협력을 받아 평균 시속 80km, 최고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는 '홍익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어 11일 공개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홍익대 하이브리드카 HHV-1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차 '홍익 하이브리드차(HHV-1)'.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제공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차 '홍익 하이브리드차(HHV-1)'.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제공
ⓒ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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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의 영어 이름은 HHV-1. 사진을 제공한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소장은 "2.5마력 전기 모터 2개가 뒷바퀴를 굴리고, 35마력의 비행기 엔진이 프로펠러를 돌려 구동력을 얻는 시스템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보도를 보면, 신소재를 차체에 사용해 차량 무게가 가볍고, 내연기관이 구동되면 축전지가 충전되므로 별도 충전장치가 필요 없었다고 한다. 시동을 건 후 시속 40km가 될 때까지는 전기 모터로 구동하고, 그 이상 속력을 낼 때는 휘발유 엔진으로 전환하여 달리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HHV-1의 탄생에는 대한민국이 최초로 주최한 세계박람회, '대전 엑스포' 효과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 개월 후 열린 대전엑스포를 통해 HHV-1은 고려대의 무인자동차, 성균관대의 수소자동차 등과 함께 자동차관 옥외전시관에 전시된다. '첨단 제품'이란 수식어가 붙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하이브리드차, HHV-1이 공개된 곳이 대학교 캠퍼스였다는 점이다. 전 소장은 전화통화에서 "우리나라의 미래형 그린카 연구는 초기에는 대부분 대학에서 많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기아차가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차 선보여

1995년 4월 26일자 <매일경제> '서울모터쇼' 소개 기사. 사진 왼쪽이 기아차의 'KEV 4', 오른쪽이 현대차의 'FGV 1'이다
 1995년 4월 26일자 <매일경제> '서울모터쇼' 소개 기사. 사진 왼쪽이 기아차의 'KEV 4', 오른쪽이 현대차의 'FGV 1'이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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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에서는 기아차가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차를 선보였다. 전기를 주에너지로, 태양광을 보조 에너지로 활용하는, 이른바 '전기·태양광 하이브리드차'였다고 한다. 차체를 가볍게 한 프라이드와 세피아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차 역시 당시 기아차가 3백억 원을 들여 건설한 엑스포 자동차관에 전시됐다고 한다. '세피아 태양광 하이브리드차' 개발 소식이 알려진 것이 1993년 6월이었으니, 기아차로서는 약 3개월 차이로 홍익대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셈이다.

'하이브리드차 족보'에서 중요하게 기록될만한 해는 또 있다. 1995년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전시회인 '서울모터쇼'가 처음으로 열렸던 그 해, 자동차 3사는 '컨셉트 카' 형태로 새로운 하이브리드카를 일제히 선보인다.

현대차는 미래형 그린차란 뜻으로 명명한 'FGV 1'을 내놓는다. 니켈·메탈 수소 전지에 800cc급 가솔린 엔진을 보조동력으로 했으며 최고 주행거리는 810km였다고 한다. 기아차는 전기, 가솔린, 태양열 등 3가지 에너지를 함께 사용하는 'KEV 4'를 개발했다. 1회 충전으로 188km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대우차도 하이브리드차인 DACC-Ⅱ를 선보인다.

"선진국과 경쟁 모델 확보, 올해가 하이브리드차 원년"

1993년 9월 2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홍익 하이브리드차(HHV-1)' 사진
 1993년 9월 2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홍익 하이브리드차(HHV-1)'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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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오래 전 하이브리드차를 내놨으면서도, 왜 우리나라는 십 수년 동안 '하이브리드차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었어야 할까.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신차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는 만큼 기대 수익에 답이 나와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그렇지 못했던 상황이었다"며 "초기에 일본이 하이브리드차와 관련한 특허를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았던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최근 현대기아차가 내놓은 하이브리드차들은 일본 특허를 피해 새로운 원천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이로써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도 경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모델을 확보하게 됐다. 올해가 우리나라로서는 하이브리드차 원년"이라고 평가했다.

24일 현대기아차는 쏘나타 하이브리드 시승회를 통해 "쏘나타 하이브리드 수출 목표는 1만3천대, 기아차 K5 하이브리드는 6천대"라고 밝혔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둘러싼 한미일 3파전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셈이다. '홍익 하이브리드차'가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지 18년만의 일이다.


태그:#하이브리드, #현대차, #기아차, #친환경차, #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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