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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오면 떠오르는 노래들이 많았다. 계단이나 연록의 푸른 빛을 내는 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아 '5월'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땐 참 슬펐다.

 

'5월 빛고을'의 의미를 안 이후 40대를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5월이 오면 나는 그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래는 더 서글픈 노래로 바뀌었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던 새벽 별도

어두운 뒷 골목에 숨 죽이던 흐느낌도…

- <동지를 위하여> 중에서

 

그랬다. 그 분노가 너무나 컸던 것일까?

 

 

꽃이 떨어진 그 흙에서는 향기가 날 것 같았다. 이렇게 봄이 가는데 올해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돌아본다.

 

이어지는 출장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달력을 보니 5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돌아보니 먹고사는 일에 치여 분노하면서도 참고, 견디고, 나를 어루만지고, 동료들을 어루만지면서 살았다.

 

역사같이 거창한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다보니 '빛고을 5월'도, '5월 바보의 노란 빛'도 돌아볼 겨를 없이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혁명과 진보 혹은 개혁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하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돌아본다.

 

정말,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고 살아가기에도 짧은 세상인데 5월 내내 못 볼 것만 보고 듣고 말하며 살았구나. 아주 가끔, 좋은 것을 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늘 나의 분노를 불같이 일으켰다.

 

아직도 청년 혹은 사춘기일까? 왜 여전히 나쁜 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일까? 나는 또 그 판에서 살아남으려고, 그 판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면서 내 욕심만 채우는 똑같은 부류가 되어 호시탐탐 나쁜 놈이 될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그들만큼의 힘이 주어지면 나는 그들보다 나을까?

 

 

잘 모르겠다. 활짝 피어난 너를 하도 오랜만에 봐서 내 속내를 잘 모르겠다. 50년을 더불어 산 육신 속에 들어 있는 나를 내가 잘 모르겠다.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오늘은 좋은 생각 하고, 좋은 말 하고, 좋은 것만 듣고 보며 살자고 다짐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부산, 해운대, 바다. 그 모든 것이 찌푸린 날씨 속에 파묻혀버렸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낙동강과 덤프트럭과 중장비와 흙탕물. 나도 모르게 질펀한 욕이 나왔다. 

 

 

가을꽃을 닮은 마가렛, 저 꽃이 피니 벌써 가을인가 싶은 생각에, 짧은 5월이 다 갔나 조바심이 난다.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5월만큼은 진지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기 밥줄에 목을 매느라 청춘의 순수함들과 꿈들을 하나둘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5월을 그리 살지 못했다면 6월, 그 6월은 뜨겁게 살아야겠다.

 

 

문득 한창 푸른빛을 자랑하다 누렇게 사그라드는 상사화의 이파리가 떠올랐다. 5월이 가기전 이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꽃줄기 길게 드리우고 꽃을 피울 터이다. 서로 본 적이 없어 그리워만 하는 상사화, 어쩌면 5월 광주 영령들이 내게는 그런 존재들이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너무도 고마워 그리운 존재인 것이다.

 

꽃이 지고나서야 이파리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인도 있지만, 꽃이 피어나기 전 꽃보다 아름다운 이파리는 또 어떠한가?

 

 

모내기철이다. 쌀값파동을 겪으면서도 봄이면 모를 내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는 농심,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이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건강한 먹을거리가 식탁에 올라올 터인데, 이젠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굶어죽는 이웃이 있어도 쌀을 창고 안에 그득히 쌓아두고, 동물사료나 만들자고 아니면 술이나 만들자고 한다. 그렇게 창고에 그득하니 쌀값을 제대로 쳐줄 수 없다고 한다. 논농사를 짓지 않으면 돈도 준다. 미국에서 수입한 쌀을 푼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모를 낸다.

 

 

일주일 전에 오른발에 상처를 입은 채 말라 죽어가던 청개구리를 물에 넣어주고는 잊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살아 있는 그를 만났다. 여전히 아픈 발은 아물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박씨라도 하나 물고 오지 그랬어?"

"얼만큼 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것만 보고 살아라. 그렇게 살기에도 짧은 삶이다."

 

내 삶도 뭐 그리 다를 바 없을 듯하다. 좋은 것만 보고 말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사람살이가 그렇지가 않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보이고, 험한 말이 나온다. 그것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다보니 5월이 다 가버렸다.


태그:#청개구리, #5월, #연산홍, #노무현, #5월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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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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