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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전경이다. 앞에 보이는 85호 크레인 조종실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넉달이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85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당시 노조지회장이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멘 곳이기도 하다.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전경이다. 앞에 보이는 85호 크레인 조종실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넉달이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85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당시 노조지회장이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멘 곳이기도 하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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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면서 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던 어느 날의 일이다. 한진중공업 인근에 있는 대학교 학생회 사무실을 지키던 학생이 전화를 받았다.

"여기 한진중공업 노좁니다. 오늘 우리 박창수 위원장님이 안기부에서 죽었다고 하는데예, 우리 조합원들 시내로 집회하러 갈끼니께, 학생들 있으면 좀 와주이소."

당시 한진중공업은 부산지역 민주노조의 핵심 사업장이었고, 그 구심에는 박창수 위원장이 있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터였다. 1991년 초, 대기업연대회의 수련회장에서 안기부에 체포된 박창수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안양병원에 안치됐다. 당시 안기부는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가족과 동료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과 시민들 모두 분노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진상조사를 주장하며 안양병원에 보관된 시신을 둘러쌌지만, 당국은 병원 벽을 부수고 시신을 탈취했다.

김진숙 당시 부산지역노동자연합(부노련) 의장은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에 누구보다도 분노했다. 김진숙 위원장의 입은 대중들 앞에서 불을 토해 냈다.

"박창수는 나와 함께 한진중공업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 동지입니다. 박창수는 절대로 죽어서 열사가 되지 말고 살아서 투사가 되자고 강조하던 사람이에요. 자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 있다. 버스를 타면 10분 안팎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때문에 한진중공업 노동조합과 우리 학생회는 적잖이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앞서 얘기한 박 위원장이 사망하는 그날 노조가 전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화로 처음 전해 들었던 학생이었다.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 이후 20년이 흘렀다. 내가 부산을 떠나 지낸 20년 동안 한진중공업에서는 또 다른 죽음이 있었다고 한다.  2003년에는 김주익 지회장이 구조조정과 임금투쟁 승리를 위해 파업을 벌이던 중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당시 파업을 이끌던 김주익 지회장은 85번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측의 회유로 파업의 대오가 약해지고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자, 크레인 농성 129일째 되는 날, 크레인 난간에 목을 맸다.

김주익 지회장이 숨을 거둔 지 며칠 후, 곽재규라는 조합원이 또 몸을 던졌다. 곽재규는 당시 사측의 회유에 못 이겨 작업에 복귀한 상태였는데, 아끼던 후배 지회장이 목을 맨 것을 두고 "모든 게 내 탓"이라 자성하며, 조선소 도크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박창수의 동지이자 20년 넘게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로 지내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번 크레인에서 지난 1월 6일 이래로 넉 달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 전 "살아서 투사가 되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23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농성현장을 찾았다. 조선소 입구에는 크레인 농성이 불법 점거 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결정내용과 더불어 '불법행위에 조력 등을 할 경우 회사는 조력 또는 가담한 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사규에 의한 중징계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삼엄한 문구가 적힌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 덕분에 힘 나고, 파업 대오 유지하는 것"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농성 소식이 언론을 타고 확산되었고, 배우 김여진씨, 정동영 의원, 심상정 전 의원 등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지만, 고공농성이 이어지는 85호 크레인 주변은 여전히 쓸쓸했다. 박아무개, 한아무개, 안아무개씨 등 조합원 세 명과 성당의 수녀 두 분이 크레인 주변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외부세력'이 되어 '또 다른 외부세력'인 수녀님들이 사온 순대와 족발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씩 나눠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스물한 살에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해서 스물여섯에 해고를 당했다. 20여 년째 해고노동자로 살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이다. 조합원이기는 하나 복직의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파업의 성패와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다른 노조 집행부가 아닌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농성에 나선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물음에 대한 박아무개 조합원의 해명이다.

"우선 조남호(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와 한판 붙으려고 올라간 거죠. 그런데 왜 하필 김 지도(김진숙 지도위원)냐 하면, 그건 솔직히 현 노조 집행부의 투쟁기조로는 약하다고 본 거예요. 지회가 파업에 돌입하면, 작업장을 점거하고 사측과 직접적인 투쟁에 들어가야지요. 그런데 현 지회 지도부는 시민 선전전 한다고 계속 밖으로 나도는 거예요. 그 사이 회사는 외부 인력을 동원해서 필요한 작업을 모두 해버려요.

그 때문에 노조 집행부와 김 지도 사이에 갈등이 많았어요. 김 지도가 크레인에 오르기 전에 회사 입구에서 단식농성을 하는데, 노조 지회가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어요. 투쟁기조가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죠. 그런데 김 지도가 크레인에 올라가자 여론이 여기에 쏠렸고, 그래서 문철상 지부장(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과 채길용 지회장(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이 2월 14일에 17호 크레인에 올라간 거예요."

지난 2월 15일, 한진중공업은 조합원 400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이중 230명은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남은 170명은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650여 명의 조합원에 대해서 회사는 교육발령을 낸 상태다. 이 중 상당수는 회사의 발령에 따라 교육에 참가하고 있고, 나머지 비해고 조합원들이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노동자들과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 농성장을 지키는 세 명 중, 박아무개씨는 해고 통지를 받은 조합원이고 한아무개·안아무개씨는 비해고자에 해당한다. 파업의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박아무개씨의 부연설명이다.

"해고노동자가 복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런데 비해고자가 가압류와 손해배상소송을 감수하면서 장기간 파업에 함께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리고 해고자는 해고를 당하면 실업급여라도 있고, 명퇴를 신청하면 퇴직금과 명퇴금이 있잖아요. 그런데 비해고자가 장기간 파업에 참여하면 급여도 실업급여도 아무것도 없어요. 몇 달간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해고자와 비해고자를 합해 300여 명 조합원이 파업 대오를 유지하는 것도 김 지도가 저러고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김 지도가 저 위에 있으니, 여론이 조성되고 조합원들도 힘이 나고, 회사도 함부로 못하는 거죠."

안아무개씨는 비해고자로써 파업에 동참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파업을 끝까지 사수하자던 친구들도 여러 명이 회사의 교육에 참가하고 있어요. 일단 급여가 중단되어 생활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지만, 가장 힘든 것은 가압류 압박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만 끝까지 함께할 수 있다고 봐요."

"크레인 오르기 전 따뜻한 물 샤워... 모든 것 걸었다는 메시지일 수도"

안아무개씨가 줄을 이용해 35미터 높이 크레인 조종석으로 물을 올리고 있다.
▲ 물통 올리기 안아무개씨가 줄을 이용해 35미터 높이 크레인 조종석으로 물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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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이는 85번 크레인은 김주익 전 지회장이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맨 곳인 만큼 조합원들에게 주는 상징성이 큰다. 실제로 김 지도위원은 김주익 전회장이 생을 마감한 이후, 한 차례도 난방을 하지 않았고, 겨울에도 찬물로만 씻었다고 한다. 한아무개씨의 설명이다.

"2003년 이후 한진중공업 노조는 김주익 피의 값으로 살았어요. 김주익이 정리해고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갔으니, 노조가 싸우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다시 사측이 공세를 가해오니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잖아요. 김 지도는 조합원들로 하여금 다시 김주익을 떠올리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평소 찬물로만 씻던 김 지도가 크레인에 오르기 전날에는 따뜻한 물로 몸을 씻는 거예요. 아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봐요. 모든 것을 걸었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어요."

김진숙 지도위원은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공에 올라가서는 트위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그 바람에 밑에서 김 지도 수발을 드는 세 사람도 트위터에 재미를 붙였다. 이들은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강정마을 해군기지 관련 기사들도 트위터를 통해 보았노라고도 말했다. 한진중공업 파업과 관련해서는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모든 언론사 기자 중 가장 제대로 소식을 전한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 김진숙 지도위원으로부터 '물을 올려 보내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안씨와 한씨가 줄을 타고 내려온 빈 통을 받고, 물이 가득 든 물통을 올려 보냈다. 이 세 남자들은 주말에 집에도 못 들어가면서 이렇게 넉 달이 넘게 한 여성의 수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수녀 두 분이 살인미소로 김진숙을 응원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김진숙이 살아오면서 지켰던 '인간에 대한 존중', '동료에 대한 사랑'이 투쟁 과정에서는 상상을 못하는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법원은 지난 1월 17일 크레인에서 철수하지 않는 김진숙 조합원에게 '강제이행금'으로 1일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여, 현재까지 벌금 누적 액만도 약 1억 3000만 원에 이른다. 또, 회사는 지난 4월 15일에 노조를 상대로 불법파업에 따른 피해금액 158억 원을 청구했다.

반면, 노조는 지난 2월 16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이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각판결을 받았다.



태그:#한진중공업, #김진숙, #크레인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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