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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송글송글 맺힌 들녘에 애기똥풀이 아침햇살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게 어우러지니 별 볼일 없는 것 같았던 애기똥풀이 꽃단장을 한 듯 하다.
▲ 애기똥풀과 이슬 아침이슬 송글송글 맺힌 들녘에 애기똥풀이 아침햇살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게 어우러지니 별 볼일 없는 것 같았던 애기똥풀이 꽃단장을 한 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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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아침마다  물방울 보석이 아침햇살을 담고 가장 찬란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을 터이다. 생전 처음으로 간 그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연 이틀 새벽에 일어나 그 길을 걸었다.

그 아름다움은 이슬방울과 그 틈에 작고 못생긴 꽃들이 어우러져 서로를 빛내고 있음이다.나는 그것을 보면서 '작고 못생긴 것들의 발칙한 반란'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애기똥풀을 수도없이 찍어왔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 건졌다. 그 기분만으로도 한 주간은 넉넉하게 행복할 수 있으니 이른 아침에 횡재를 한 셈이요, 운수 좋은 날인 것이다.

육안으로 거의 보일까 말까 작은 꽃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애기수영은 암꽃과 수꽃이 딴그루다.
▲ 애기수영(수꽃) 육안으로 거의 보일까 말까 작은 꽃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애기수영은 암꽃과 수꽃이 딴그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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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명아준가 했다. 그러나 이파리와 모든 것을 종합해 보니 애기수영의 수꽃이었다. 어딘가 암꽃도 있었을 터인데 이미 집에 돌아와 식물도감의 도움으로 알아낸 것이니 암꽃은 차후에 만나야 할 터이다. 도감상으로 보니 암꽃은 수꽃만 못하다.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동물도 식물도 수놈이 더 화사한 것을 보면 사람만 별종인가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것 같다.

애기수영, 그렇게 뻥 튀겨서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꽃도 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그냥 지나쳐버리고, 뽑아버리던 그 풀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고는 '함부로 뽑지 마라!' 호령을 하는 듯하다.

꽃 색깔치고는 수수하다 못해 못생겻지만, 저 꽃에서 열릴 보리수 붉은 열매를 생각하면 너무 예쁘다.
▲ 보리수 꽃 색깔치고는 수수하다 못해 못생겻지만, 저 꽃에서 열릴 보리수 붉은 열매를 생각하면 너무 예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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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못생긴 것이라고 해도 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들을, 사랑하는 누이와 동생들을, 기둥이었던 아버지를 형님을 빼앗아간 자들이, 이후에 온갖 호사를 다 누린 자들이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서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을 보낸 어제는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그것도 이젠 과거가 되어버리다니, 마치 내가 4·19혁명을 느끼는 그런 정도로 아이들은 5.18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서글펐다. 그런데 그게 역사인가? 죽은 자들은 말이 없는데, 아직도 학살의 주역들을 국민의 세금을 축내가며 지켜주는 현실과  그들이 떵떵거리는 현실은 무엇인가?

못생긴 것들 모두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아침은 생동감이 넘친다.
▲ 둑새풀과 꽃다지와 쇠뜨기 못생긴 것들 모두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아침은 생동감이 넘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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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못생긴 것들만 보여 있었다. 쇠뜨기, 꽃다지, 둑새풀, 냉이 뭐 이런 것들이다. 사람으로 치면 저 밑바닥 같은 인생들, 천덕꾸러기 같은 인생들이다.

잡초. 그런데 그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만들어낸다. 반란이다. 밑바닥 인생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그 세상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이슬이 거미줄엔 앉질 못했다.
▲ 거미줄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이슬이 거미줄엔 앉질 못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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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못생긴 것들이여, 반란을 일으켰는가? 매일 아침 반란을 일으키고 진압되기를 반복하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겨울이 오기 전에는 절대로 그 일을 쉬지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휴식의 시간이 너무 길다. 아니,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역사란 것이 그런 것이지 하며 스스로 포기하고 그냥 이런들저런들 사는 것이 세상 사는 법이라고 자위하며 침묵하고 있다.

벼과의 새포아풀, 가만 들여다 보면 짚신 한짝 혹은 나룻배 같은 꽃술이 달려있다. 그들의 춤이 아름답다.
▲ 새포아풀 벼과의 새포아풀, 가만 들여다 보면 짚신 한짝 혹은 나룻배 같은 꽃술이 달려있다. 그들의 춤이 아름답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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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가다보니 장님이 되었다. 이전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역사를 보던 그 눈들이 멀어버렸다. 작고 못생긴 것들을 담고 돌아오는 길, 나는 작고 못생긴 것들의 발칙한 반란을 보며 그런 반란을 꿈꿨다. 한밤의 꿈, 발칙한 꿈이라도, 그런 꿈을 꾼다.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되는 세상, 못생긴 것들이 대접 받는 세상, 서로 낮아지며 섬기는 세상, 일한 만큼 거두는 세상, 학위가 아니라 능력이 대접받는 세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남의 것 빼앗는 것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세상,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들이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세상,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서 나쁜 짓 하면 바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그런 세상…. 갈 수 없는 혹은 이룰 수 없는 발칙한 꿈일까?


태그:#애기똥풀, #애기수영, #새포아풀, #쇠뜨기,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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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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