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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왕따'라고 부르는 집단 따돌림 또는 집단 괴롭힘이 한때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따돌림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왕따는 학생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생긴다.

 

이 문제가 심각해지자 노동부에서는 직장내 왕따 행위에 대해서 사법처리하겠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법으로 처리하더라도 왕따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살인범들을 잡아서 아무리 감방에 처넣어도 살인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단순하게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소극적인 왕따라면 답답하고 불편하겠지만 피해자가 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를 넘어서 피해자를 괴롭히고 구타하고 금품을 뜯어내는 집단 괴롭힘으로 발전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피해자가 받을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가 더욱 클 것이다.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어지거나 자살을 생각할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이렇게 심각한 집단 괴롭힘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까.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두 명의 중학생

 

가와카미 미에코는 2009년 작품 <헤븐>에서 왕따 당하는 중학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해학생은 남자 주인공 '나', 그리고 주인공과 같은 반에 있는 여학생 고지마다. 따돌림 당하고 무시받기 때문인지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사시'를 가지고 태어났다.

 

다른 학생들은 주인공의 눈을 보고 '징그럽다'라고 말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매일 학교에 가면 특정 패거리들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인다. 그들의 명령대로 각종 심부름을 하고 변기의 물, 토끼우리의 채소 찌꺼기를 먹기도 한다. 강제로 분필을 먹은 적도 있다. 먹고나서 토하면 패거리는 토한 것을 핥아먹으라며 주인공의 머리를 찍어누른다.

 

이런 일을 당할 때면 주인공은 '늘 있는 일이야. 별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고지마는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에게 괴롭힘 당한다. 숨쉴 때 냄새가 난다면서 여학생들은 고지마의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 고지마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머리 좀 감으라며 고지마의 머리를 강제로 수조에 밀어넣는다.

 

이런 집단 괴롭힘 속에서 하루하루 학교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필통 속에 들어있던 그 편지에는 '우리는 같은 편이야'라고 쓰여 있었다. 그 이후로도 주인공은 계속 편지를 받게 되고 편지를 통해서 상대방과 만날 약속을 정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고지마다.

 

고지마와 약속장소에서 만난 주인공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곧 마음을 열고 고지마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이전에 한번도 서로 대화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학급에서 괴롭힘 당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유대감 때문인지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들이 당하는 괴롭힘은 언제 어떻게 끝날까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용기를 내서 가해학생 한 명과 대화한다. 주인공은 '너희에게 폭력을 휘두를 권리는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가해학생은 '권리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야,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걷어차고 싶은 욕구가 일부 학생들에게는 있다. 그런 욕구가 그 학생들에게 생겼을 때 우연히 그 자리에 주인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맞아도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은 왕따의 길을 스스로 걸어간 것이다. 가해학생은 또 말한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은 엉터리라고. 그런 것은 무능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변명에 불과하니까, 당하기 싫으면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고 말한다.

 

이런 대화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뭐든지 명령하는 대로 따른다. 주인공도 자신이 왜 당하며 사는지 많은 고민을 하지만 고민에서 끝날 뿐이다.

 

<헤븐>은 학교폭력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동시에 가해학생의 심리도 함께 묘사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완전히 없어진다면 좋겠지만, 현실세계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가해학생의 입장을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울 때 그만큼 유리해지니까,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그 안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2011)


태그:#헤븐,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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