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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오면 이곳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은 야생차의 천국으로 변한다. 지리산 야생차의 1번지는 뭐니 뭐니 해도 하동 쌍계사 부근 화개골 주변이다. 5월 초가 되면 들판은 물론, 화개동천변, 산비탈에 이르기까지 하동은 야생차 천국이 된다.

하동은 5월이 오면 야생차문화축제와 더불어 야생차 명인들의 각축장이 된다. 다원마다 자신이 만든 차가 제일이라고 하는데, 차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과연 어떤 차가 가장 좋은 차인지 도대체 그 맛을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다. 차의 명인들은 어떻게 차를 제조하기에 자신이 만들 차가 제일이라고 뽑낼까? 언젠가는 한번 명인들의 차 제조과정을 견학해야 겠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야생 그대로 자란 녹차밭(구례간전면 흥대마을 뒷산)
 야생 그대로 자란 녹차밭(구례간전면 흥대마을 뒷산)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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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직접 차를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전남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마을 인근에는 산비탈에 거름이나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녹차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물론 주인이 다 있는 곳이지만 일손이 모자라서 그대로 방치를 하는 곳이 많다.

지난 5일, 마침 혜경이 엄마가 고모댁 차밭에 일손이 모자라 찻잎을 따지 못하고 묵혀두고 있는데 함께 가서 찻잎을 따다가 차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했다. 얼씨구나, 좋은 기회라고 하며 아내는 당장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찻잎을 직접 따서 차를 만들어 보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아 혜경이 엄마를 따라 아내와 함께 야생차밭으로 갔다.

난생 처음으로 찻잎을 따보는 체험이었다. 혜경이 엄마로부터 어떤 찻잎을 따야 하는지, 어떻게 따야 하는지를 먼저 설명을 들었다. 좋은 찻잎만 골라 따서 덖는 일은 정성과 몰입의 경지가 필요하다. 찻잎을 따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심신을 깨끗하게 하여 찻잎을 따고, 차를 덖는 마음의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

창처럼 뾰쪽한 녹차잎만 따야한다
 창처럼 뾰쪽한 녹차잎만 따야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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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입하(5월 6일) 전후가 찻잎을 따는 가장 좋은 절기라고 하는데 마침 내일이 입하이군요. 찻잎은 따는 날을 밤새 구름 한 점 없이 별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하늘에서 맑은 이슬이 내리는 날로 택해야 하는데, 오늘은 날씨도 맑고 햇빛도 좋아 찻잎을 따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군요."

"그럼 우린 운이 무척 좋군요. 처음으로 찻잎 따는 체험을 해보는 날인데… 그런데 어떤 찻잎을 따야 하지요?"

"일단 참새 입처럼 뾰쪽하고 연한 찻잎만 따세요. 찻잎이 가장 좋은 시기는 일창 일기나 이기 때가 가장 좋다고 해요. 삼기, 사기까지도 괜찮은 편인데, 그 이상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요."

"일창과 일기, 이기란 무슨 뜻이지요?"

"일창이란 찻잎의 생김새가 뾰쪽한 창과 같다고 하여 일창(一槍)이라고 한답니다. 일기, 이기는 옆으로 돋아난 이파리가 창 끝 아래 깃발과 같다고 하여 일기, 이기(한 이파리, 두 이파리)라고 한답니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요, 그냥 참새 입처럼 뾰쪽한 찻잎만 따세요."

"호호, 그런 오묘한 뜻이 있었군요. 참새 입처럼 생긴 모양만 골라서 따야 한다?" 

찻잎따기 시범을 보이는 혜경이 엄마. 적막한 차밭에 똑똑 찻잎따는 소리만 난다.
 찻잎따기 시범을 보이는 혜경이 엄마. 적막한 차밭에 똑똑 찻잎따는 소리만 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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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찻잎을 따보는 아내의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찻잎을 따보는 아내의 손이 떨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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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참새 입처럼 생긴 찻잎만 따서 담았다. 처음에는 두 손으로 따다가 나중에는 왼손에 대바구니를 들고 오른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땄다. 연한 줄기 부분을 가볍게 잡고 뭉개지지 않도록 꺾어서 따야 한다.

하늘을 향해 생명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연한 녹차를 똑똑 따는 일은 독특한 체험이다. 조용한 차밭에는 찻잎 따는 소리만 똑똑 들려왔다. 연녹색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찻잎을 따는 일은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다.

참새입 모양처럼 생긴 잎만 따야 하는데, 앞에 넓적한 잎은 잘못 딴 것이다
 참새입 모양처럼 생긴 잎만 따야 하는데, 앞에 넓적한 잎은 잘못 딴 것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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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을 따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청개구리들이 능청스럽게 찻잎 위에 앉아 있다. 녀석들의 색깔이 찻잎과 비슷하여 처음에는 잘 못 알아보았다. 차밭에는 청개구리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청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청개구리는 한 녀석이 울면 다른 청개구리들이 돌림 노래를 하듯 일제히 따라서 울어댔다. 녀석들이 울어대는 것으로 보아 내일이나 모레쯤에 비가 올 모양이다.

찻잎에 능청스럽게 앉아있는 청개구리
 찻잎에 능청스럽게 앉아있는 청개구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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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두 사람이 따는 양보다 혜경이 엄마가 따는 양이 훨씬 많았다. 그녀는 어느 스님의 주문으로 고모님과 함께 찻잎을 따고 있는데 참새 입처럼 생긴 찻잎을 잘도 골라 양손으로 재빠르게 땄다. 1시간만 서서 따도 힘이 드는데 하루 종일 서서 찻잎을 따는 일은 보통 노동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재미가 있더니 한나절 동안 찻잎을 따다 보니 지루하고 다리와 어깨가 아파왔다.

"2시간 동안 9번 계속해서 덖어줘야 해요"... 정성이 담긴 '찻잎 덖기'

그래도 찻잎을 처음 따보는 체험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아내와 나는 찻잎을 담은 광주리를 귀한 보석처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찻잎을 덖을 차례였다. 딴 찻잎은 상하거나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보관해야 한다. 연한 찻잎이 열을 받아 발효가 되지 않도록 직사광선을 피해서 시원한 그늘에 잘 펴서 널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오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 차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찻잎은 그야말로 그 어느 보석보다 더 귀한 존재인 것 같다.

아내와 내가 따낸 싱싱한 찻잎. 발효가 되지않게 시원한 곳에 보관했다가 즉시 덖어야 한단다.
 아내와 내가 따낸 싱싱한 찻잎. 발효가 되지않게 시원한 곳에 보관했다가 즉시 덖어야 한단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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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나절 동안 우리부부가 함께 딴 찻잎이 작은 광주리로 하나는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혜경이 엄마로부터 차를 덖는 방법을 배웠다. 잔손질을 해서 다른 이물질을 골라내고, 이파리가 큰 것은 줄기와 잎을 떼어내어 작은 찻잎만 볶아야 무더기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찻잎을 씻지 않고 바로 덖어야 한다는 것.

"약 두 시간 동안 아홉번을 계속해서 덖어야 해요."
"아이고, 아홉번이나 덖어요?"
"전해 내려오는 법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시기 좋게 적당히 볶아지면 될 것 같아요."

꼭 아홉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홉번을 덖는 것은 차의 성분이 최대한 파괴되지 않게 서서히 차를 먹기좋고 부패가 되지 않도록 숙성시켜 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년 녹차 농장에 가서 차를 덖는 일을 해온 혜경이 엄마는 그 누구 못지 않게 찻잎을 따고 덖는 일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었다.

혜경이 엄마는 차를 덖는 솥을 자기 집에서 아예 가지고 와서 차를 덖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하여간 아홉번을 덖어내야 한다는데, 저 연한 찻잎이 아홉번을 덖는 동안 견뎌 날까?

녹차를 덖는 솥
 녹차를 덖는 솥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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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이 엄마는 솥을 깨끗이 씻고 불을 약하게 켜서 물기가 마르게 하고, 물방울을 솥에 던져보아 또르르 굴러가는 온도가 되자 차를 덖기 시작했다. 면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찻잎을 솥에 부어 양 손으로 부지런히 섞어준다. 찻잎이 솥 바닥에 잠시라도 오래 머물거나 불이 너무 세면 말라버리거나 타버린다고 했다.

연록색의 찻잎이 톡톡 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찻잎이 1/3쯤 줄어들자 차를 덖는 것을 중지하고 꺼내어 넓은 바구니에 올려놓고 빨래 문지르듯 살살 문질렀다. 멍석위에서 비벼야 한다는데 멍석이 없으니 대바구니에 놓고 병아리를 잡듯 살살 비벼서 털어냈다.

녹차를 덖고 비비는 동안 고소한 녹차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해졌다. 잘 펴지도록 비벼진 녹차를 잠시 식혀 놓았다가 다시 그 양이 1/3쯤 줄어 들 때까지 저으면서 덖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지 않도록 부지런히 저어야 하는 것이다.

녹차를 덖는 시범을 보여주는 혜경이 엄마. 찻잎이 타지 않도록 쉬지않고 저으며 덖어야 한다.
 녹차를 덖는 시범을 보여주는 혜경이 엄마. 찻잎이 타지 않도록 쉬지않고 저으며 덖어야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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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덖는 녹차는 1차 덖을 때보다 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뭐랄까? 이 냄새는 깨소금 냄새하고는 분명히 다르다. 딱히 표현을 하기가 힘들지만 뭔가 싱싱하면서도 고소한 냄새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 향기가 맡기에 참 좋다.

3회째부터는 솥의 뜨거운 정도를 좀 더 줄여서 물방울을 굴려 피지직 보타질 정도의 온도로 해서 아홉번을 식히고 덖고, 식히고 덖는 일을 계속했다. 차를 덖을 때 마다 찻잎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잘 비벼서 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를 덖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독특한 향이 집안에 가득했다.

녹차를 비비는 광경. 멍석이 없어서 바구니에 살살 비벼 털어냈다.
 녹차를 비비는 광경. 멍석이 없어서 바구니에 살살 비벼 털어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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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비벼서 잎을 펴며 털어서 식힌다
 살살비벼서 잎을 펴며 털어서 식힌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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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동안 시범을 보여준 후 혜경이 엄마는 다른 일 때문에 가고 이제 우리 부부 둘이서 덖는 체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실제로 덖어보니 쉽지가 않았다. 뜨거운 솥 앞에서 아홉번을 반복하여 차를 덖어낸다는 것은 보기보다는 매우 지루한 작업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녹차잎을 펴서 식혀 말리는 모습. 식으면 다시 덖는다
 녹차잎을 펴서 식혀 말리는 모습. 식으면 다시 덖는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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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 솜씨로 우리가 볶아낸 차는 아무래도 찻잎이 엉키고 탄 찻잎이 많았다. 실수의 연발이었다. 솥에서 찻잎이 밖으로 튀어 나오기도 하고 아내는 팔뚝까지 데이고 말았다. 이마에 땀 방울이 맺히고 팔과 다리도 아팠다. 차를 덖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몰입이 필요한 것 같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눌어버리거나 타버렸다.

덖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찻잎의 부피는 줄고 냄새도 점점 고소하게 변해갔다. 참으로 독특한 냄새다. 뭐랄까? 횟수가 거듭될수록 풋내는 점점 줄고 고소하고, 녹차 특유의 그윽한 향기가 가슴을 적셨다.

마지막으로 미지근한 솥에 녹차를 말린다
 마지막으로 미지근한 솥에 녹차를 말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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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찻잎을 잘 털어서 바람에 쏘이며 말리면서 숙성을 하는 작업을 했다. 솥을 깨끗이 씻어 손으로 만져서 뜨거운 정도로 가열을 하여 아홉 번을 덖은 차를 부어 말리면서 숙성을 시켰다.

숙성의 의미는 단순한 건조도 아니고, 발효도 아니라고 했다. 발효시키면 황차(발효차)가 되어버리고 말리면 건조한 풀잎이 되어 버린다고했다. 한 시간 정도 숙성을 통해 말리지도, 발효도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잘 덖어진 찻잎
 잘 덖어진 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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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 덖어 타서 뭉쳐진 찻잎
 잘 못 덖어 타서 뭉쳐진 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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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시킨 차를 부러뜨리면 톡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덖어낸 차는 살짝만 건드려도 부러져 버렸다. 아무래도 너무 과열시켜 덖어낸 모양이다. 덖은 차를 열기를 식혀서 비닐로 포장을 하여 밀폐된 유리 용기에 저장을 했다. 그 많던 찻잎이 겨우 작은 유리병 두 개로 변했다.

밀폐된 용기에 녹차를 저장한 모습
 밀폐된 용기에 녹차를 저장한 모습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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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섬진강으로 귀농을 하여 처음으로 해보는 야생녹차 만들기 체험이다. 우리는 혜경이 엄마에게 깊은 감사를 드려야 했다. 그녀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귀한 체험을 해보겠는가? 이는 단순히 체험장에서 연습으로 해보는 의미하고는 다른 것 같다. 시골에서 나서 자라며 오랜동안 찻잎을 따고 덖어온 혜경이 엄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차를 만드는 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녹차 만드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우리에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녹차를 마셔보니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만든 차를 마실 때에는 녹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수고로움을 모르고 마시기만 했는데, 이번 체험을 통해 차를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니 녹차를 마시는 느낌이 달라졌다.

녹차든 곡식이든 혹은 과일이든 씨를 뿌려서 열매를 맺어 우리들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이 배어있는가를 생각하면 한 잎의 녹차나 한 알의 곡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찻잎을 따기 전부터 마음자세, 생명의 찻잎을 따는 과정, 아홉 번을 덖는 정성을 생각하면 한 잔의 차가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이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이 아니다. 한잔의 차가 만들어 지기까지 그 과정에 투여된 사람들의 정성과 생명의 신비를 마시는 것이다. 다도(茶道)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한 귀중한 체험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찻잎따기, #녹차 덖으기, #섬진강, #야생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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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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