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사로운 봄날 휴일 아침, 남들은 이맘때쯤이면 등산도 가고 가족과 함께 도시락 준비하여 즐거운 꽃구경을 위해 가벼운 일상을 벗어난다. 길가엔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만개하여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산에는 연분홍의 진달래가 울긋불긋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더하는 계절이다.

 

아주 즐거워해야 할 휴일 아침이지만 친정 오빠들과 언니들은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모여야만 한다. 일 년 농사의 시작인 못자리를 만드는 날이기 때문이다. 벌써 한 달 전부터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던 상황이라서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한 해 두 해 오빠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형부들도 언니들도 다 마음만큼 몸이 안 따라주는 처지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카들이 군대 가고 유학 가고, 곧 취직하여 결혼할 조카까지 있는 터라 두말할 것도 없다.

 

오남매니 한 집에 두 사람씩만 해도 열 명이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열 명. 하지만 올해부터 큰언니와 형부는 제외를 시켰다.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는 사람들. 어머니는 늘 농사일에 서 있을 것 같다던 큰형부를 빼놓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 결단을 하기까지 어머니는 많은 날을 고심했다고 하셨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처갓집 농사일 30년이면 참으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작은형부도, 남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큰형부 못지않은 세월을 흙 밟으며 함께 농사를 지어왔다. 어머니가 손에서 놓지 않은 농사일. 그 일을 묵묵히 지켜가고 있는 가족들이 있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봄볕은 따사로웠다. 정말 햇살을 느끼며 가벼운 산행을 하고 싶었다. 맛있는 도시락 싸들고 말이다. 모판에 흙 넣고, 볍씨 뿌리고, 흙 뿌려가며 못자리 할 논에 가져다주면 작은형부와 작은오빠, 남편은 모판을 날라 반듯하게 줄지어 자리를 잡는다. 예전엔 비닐을 덮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좀 쉬운 방법으로 모판 위를 덮는다.

 

어머니의 성화에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인지 참 때가 되니 일의 진행속도가 빨라졌다. 아직 총대 메고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여기서는 '이래라', 저기서는 '안 된다', 말이 많아졌다. 정말 누구의 말에 장단을 맞춰 일해야 하나 싶어 한참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서로가 호흡이 맞아야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했다. 일 년 동안 먹을 농사이기 때문이다. 생각만큼이나 몸이 안 따라줬지만 다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일했다.

 

일하는 동안 어머니는 끊임없이 오빠들과 옥신각신하셨지만 그것 역시 어머니의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언니들과 웃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오십 넘은 아들들이 말을 듣겠냐고. 꼼꼼하게 하지 않는다고, 모판 자리 하나 더 만들겠다고 허리 구부린 채 흙을 파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어 오빠는 오빠대로 소리 지르며 서 있고, 그런 아들 말에 기막혀 하면서 논두렁에 섰다 앉았다 하는 어머니. 모두가 뒤끝은 없다. 그래서 좋다.

 

비록 꽃구경으로 일상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못 보고 지내던 가족들을 어머니라는 끈으로 만나고, 또 함께 일 년 양식을 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난 아직도 농사일이 싫기만 하다. 고생스러운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하지만 싫다고 안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며 반성하고 준비한다.

 

늘 해오는 이맘때의 일상이다. 싫다 하면서도 어머니가 아직도 농사일을 하고 있음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하는 한켠에 어머니를 앉혀 놓고 딸과 며느리, 그리고 사위와 아들이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면서 모판 위에 볍씨를 뿌리는 것이 즐거운 노동이 아닐 수 없다.

 

휴일 아침, 봄의 들녘에서 어쩜 우리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꽃구경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흐뭇하기만 한듯, 일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그 얼굴은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답다. 이 세상 그 어떤 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바로 어머니 꽃.

 

이제 얼마 뒤에 우리 가족 두 번째 노동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날, 모내기 날에는 어머니와 오빠가 싸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다. 더 큰소리로 싸웠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어머니나 오빠가 힘이 있고 젊다는 의미이니까 말이다. 벌써 올 농사도 풍년일 것만 같다.

 


태그:#모내기, #못자리, #어머니, #모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