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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한명 가야한다는데 꼭 좀 부탁드려요."
"저도 바쁜데... 할 수 없죠 뭐."

딸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3학년 학부모 회장의 전화였다.

올해 아이가 학급 회장이 되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부모 대의원 감사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시험감독이나 급식 봉사 일을 간간히 해 왔으나, 감사는 처음인데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가 수학여행 답사다. 원래 수학여행은 차를 대절해서 반별로 줄줄이 관광버스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이었다. 요즘은 보통 비행기타고 제주도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100명 이하 소규모로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 서울시 교육청 권장사항이란다. 결국 우리 학교는 세 개의 반이 한 조를 이루어 각 조마다 다른 곳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 조별로 선생님 두 명과 학부모 한 명이 미리 답사를 다녀와야 했다. 

4월말 오전 8시 학교에서 선생님 두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출발했다. 남자선생님이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내비게이션에다 '무주 리조트'를 입력하니 안내는 내비게이션의 몫이 됐다. 여선생님이 음료와 간식을 챙겨왔다. 출근시간이라 느린 걸음으로 달리는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낸 선생님의 양육 성공담, 실패담을 나는 귀담아 들으며 흔들리는 차 안에서 지렁이 글씨로 수첩에 메모하느라 바빴다. 고속도로 옆길에 조팝나무가 하얗고 수북한 꽃을 매단 채 서있었다.

"저거 하나 꺾어 가면 좋겠네. 아이들 보여주면 금방 이해할텐데."

이유인즉슨 국어시간에 조팝나무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잘 몰라서 팝콘 같이 생겼다고 설명하신단다. 두 선생님은 그 후로 한참동안 수업내용과 방법에 대해 토의하였다. 나는 산속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진달래꽃과 아직 새싹이 오르지 않아 황량한 산들을 무심히 쳐다보며 갔다. 충청도를 지나 무주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시골길에 들어서니 내비게이션이 자꾸 다른 곳으로 안내를 하고 이정표도 찾기 어려워 잠시 산길을 헤맸다. 초행길 신고식을 약간의 조바심으로 치르고 난 후 12시경에 무조리조트에 도착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남자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작은 사고를 쳤다고, 원래 아이들은 선생님이 없으면 티를 낸다고 쿨하게 말씀하신 후 가끔 먼 산을 바라보셨다. 여선생님은 여행사에서 보내준 일정표와 확인해야할 것들을 꼼꼼히 메모해왔다.
                                                                                    
수학여행 숙소
▲ 숙소가 있는 무주리조트 전경 수학여행 숙소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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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경 1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 소강당과 숙소를 보러 갔다. 경험 많은 남선생님이 남학생과 여학생은 두개 층 건너뛰어서 방 배정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메모하느라 바쁜 여선생님을 대신해 나는 사진을 찍어줬다. 숙소 근처에 편의시설과 오락시설이 많음을 자랑하는 담당자에게 "저것들은 다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내가 우리 반 정도는 책임질 수 있어요"라며 젊은 여선생님이 당차게 말했다. 학교에서 조를 나누어 가다보니 인솔교사가 3명씩 배정될 예정이라고 했다.

수학여행 이튿날 일정을 점검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곤돌라탑승이 운행시간과 안 맞아 다른 대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오토 바이크, 서바이벌게임을 임시 대안으로 하고 장비, 장소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오후 2시경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선생님들은 비가 올 경우의 대안을 상의했다. 오후 2시 30분 반디별 천문과학관으로 출발했다. 원래 수학여행 일정에는 있으나 답사는 안 해도 되는 일정이었다. 천문대가 작아 시시할 수도 있다는 담당자의 말에 선생님들은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답사하고 가야된다고 했다.
                                                        
반디별 천문과학관내
▲ 천체망원경 반디별 천문과학관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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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굽이굽이 산길을 가다보니 차 여행에 약한 나는 울렁거리는 멀미기운과 싸우며 '내가 왜 왔을까?' 내심 후회하고 있을 때 차 앞길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도로 양옆으로 심겨진 벚나무 가지들이 서로 뒤엉켜 하늘을 뒤덮었고, 가지마다 화사하게 핀 벚꽃들이 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본 벚꽃 중에 제일 장관이었다.   '와~' '와~' 탄성을 지르면서도 일정이 바빠 차마 쉬었다 가자는 말을 아무도 못했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천문대는 작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학생들 견학에 좋을 것 같다며 우리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를 느끼며 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도로 양옆으로 있다
▲ 전주 한옥마을 전경 도로 양옆으로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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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마지막 여행지인 전주로 출발했다. 1시간 40분을 달리니 전주전통문화관에 도착했다. 한지공예체험에 대해 상담한 후 담당자가 전주 한옥 마을 체험도 괜찮다고 추천해줬다.

해설사가 설명을 해주는데 무료란다. 한옥마을 안내소로 찾아가니 학생손님을 별로 안 반기는 눈치였다. 일부 학생들이 설명을 잘 안 듣고 통제가 안 되어 해설사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고 사전 교육을 철저히 당부한다.

"제가 통솔해서 올 건데 책임지고 착 달라붙어서 아이들 지도하겠습니다. 사전교육도 철저히 시킬테니 염려마세요."  선생님은 결국 예약을 하고서 그곳을 나왔다.

우리는 마지막 날 점심 메뉴를 확인하러 식당으로 갔다. 예약을 했기에 학생들이 먹을 것과 동일한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주비빔밥인데 반찬 중에 서양식 샐러드가 제일 큰 접시로 정중앙에 나오는 것을 보니 퓨전으로 변질된 느낌이 났다. 나는 최소한 이런 곳에서는 전통을 더 고수하여 제대로 된 전주 비빕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답사를 마무리하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랴, 이런 답사 다니고 이와 연관된 업무들을 처리하랴, 너무 수고가 많으신데 이런 것은 행정실에서 해주면 안되냐?"물었더니 "선생님들이 하면 우리 반 애들이기에 더 좋은 것을 하게 해주려고 꼼꼼히 신경 쓰는데 행정실에서 하면 업무적으로 하고, 이권이 개입되기도 하고 그냥 선생님이 하는 게 더 낫다"고 하셨다.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음식은 먹을 만했고, 배고픈 아이들은 맛있게 먹을 것 같았다.

여행사를 통해서는 단체라 12000원 짜리를 8000원으로 할인해 주는 것으로 알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10000원 짜리를 8000원으로 해주는 거였다. 그냥 대접하려는 식당 주인의 호의가 있었으나, 선생님이 정중하게 여러 번 사양하며 30000원을 지불하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여선생님이 5살된 딸이랑 통화를 했다. 친정어머니가 키워주시고 주말에만 본다고 했다. 딸이 3살 때 아파서 응급실에 간적이 있었는데, 시험지 채점하느라 함께 못 있어준 것을 아이가 기억하고 가끔 말한다고 했다. 

오후 10시! 서울에 도착했다. 다음 주엔 안동에 다녀오는 조도 있단다. 집에 오니 피곤하여 목소리가 잠겼다. 나는 이제부터 쉬면되는데, 선생님들은 내일부터 보고서 작성하고 일정 확정하여 예약전화하고, 회의하고 등등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수학여행 답사를 처음 경험했다. 생각보다 힘들고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번 수학여행을 어떻게 다녀올지, 가서 뭐라고들 할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추억이 되길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무주를 아이들과 함께 돌며 수고해주실 선생님들께도 미리 감사드리고 싶어졌다.


태그:#답사, #수학여행,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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