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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 강아무개씨 장례식. 평택장례식장에서 노제를 위해 강씨의 시신이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
 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 강아무개씨 장례식. 평택장례식장에서 노제를 위해 강씨의 시신이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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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째 죽음.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일에 이렇게 숫자를 붙인다는 것은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또 한 명의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가 죽었다는 것, 벌써 14번째라는 것, 또 어떤 죽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오열하는 유가족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었다. 단지 숫자가 아닌 그의 삶을 듣기 위해 유가족과 옛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침묵만 돌아왔다. 그들은 입술을 악다물고 한 없이 눈물만 흘렸다.

12일 오전, 강아무개씨(45)는 입관도 하지 못하고 흰 천에 둘러 싸여 구급차에 실렸다. 고향 전주에서 장례를 치르기 전, 잠시 머물렀던 평택장례식장을 떠나는 길이었다. 흰 천 뒤로 그의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였다. 강씨를 끌어안은 부인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인을 밝히기 위해 강씨는 바로 전날까지 부검을 받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4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을 한 순간에 죽음으로 떨어뜨린 이 병명은 그의 동료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강씨보다 먼저인 지난 2월 28일에도 무급휴직자였던 임아무개(44)씨가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강씨와 마찬가지로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던 그의 아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지 1년 만에 임씨는 그 뒤를 따랐다.

그의 앞에도 다수의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들이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희망퇴직자'였던 강씨도 그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희망퇴직 하지 않았다면 죽을 이유 없다"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진행된 강씨의 노제. 그의 부인이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진행된 강씨의 노제. 그의 부인이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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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노제 추모 공연.
 강씨의 노제 추모 공연.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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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영정을 실은 차량이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때마다 민들레 꽃씨가 날려 왔다. 차갑게 식은 채로 또 다시 찾아온 옛 동료 앞에서 쌍용자동차 노조 조합원들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공장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닫친 철문 뒤로 경비원들이 줄지어 섰다.

노제를 치르기 위한 상이 차려지고 강씨의 사진이 놓였다. 강씨의 부인은 그 앞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따라 강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도 흐느꼈다.

그녀가 겨우 몸을 추스르자 노제가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은 마이크를 잡았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구호를 외치지 않겠습니다. 구호가 그를 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자들은 오열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쌍용자동차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직된 지 2년이 됐지만..."

"너무 많은 동료를 보내 이제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던 이 실장도 결국 울었다. 강씨는 희망퇴직 후 쌍용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완전히 다른 공장이지만 그는 쌍용자동차 작업복을 벗지 않았다. 일하던 공장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을 때도 그는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복직을 꿈꾸며 쌍용자동차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노제에 참여한 그의 옛 동료는 기자에게 유가족을 통해 들은 강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희망퇴직자가 아니었다면, 쌍용자동차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면 죽을 이유가 없어요. 정상적인 일과뿐 아니라 잔업이나 특근이 있어도 매번 한 시간씩 일찍 나와서 근무 준비를 하며 정말 (자신을) 다 받쳐 일했던 사람입니다. 부인이 '이렇게 죽을 이유가 없다'고 어찌나 목을 놓아 우시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노제가 진행 된 것은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 안쪽에서는 인기가요가 흘러나왔다. 고인의 넋을 달래는 추모곡이 울리는 공장 밖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정동영 "10년 집권한 민주당 일원으로 부끄럽다"

공장앞을 떠나는 강씨의 영정차를 보내며 옛 동료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공장앞을 떠나는 강씨의 영정차를 보내며 옛 동료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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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월 임아무개씨의 노제에 이어 이날도 쌍용자동차 공장 앞을 찾았다. 정 최고위원은 "13살이나 젊은 고인의 영전에 절을 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더 이상 죽음이 없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또 지난 10년 동안 집권했던 민주당의 일원으로 부끄럽다"며 "우리는 IMF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보살피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정 최고위원은 "결국 해고는 살인으로, 죽음으로 돌아왔다. 티끌만큼이라도 사죄하는 의미로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서 죄송하다"며 "하지만 또 다시 14번째 죽음은 없어야 한다고 맹세하는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더 이상의 죽음을 막겠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노조도 "잇단 죽음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 유가족의 한과 고인들의 넋을 올곧게 받들겠다"며 "이 죽음의 배후가 쌍용자동차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은 결국 확인되고 밝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오는 13일로 예정돼 있던 공장 앞 굴뚝 농성 2주년 기념집회를 취소하고 고인의 장례가 마무리 될 때까지 일부 일정을 축소 또는 취소했다. 다만 14일 오후 3시 30분 평택대학교에서 열리는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김제동 토크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태그:#쌍용차, #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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