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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 열중하고 있는 양준혁 해설 위원
 강연에 열중하고 있는 양준혁 해설 위원
ⓒ 고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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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양준혁. 양신 양준혁. 그가 은퇴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야구선수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고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야구장이 아닌 TV 예능 프로그램, 야구 중계 프로그램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대학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32년 야구인생을 통한 경험들을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5월 11일에는 양준혁씨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를 방문했다. 외대 학생들에게 '도전'을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넓은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약속된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강연실 입구가 시끌 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양준혁씨가 등장한 것이다. 양준혁씨는 "양신이다!", "정말 키 크다!", "귀엽다"와 같은 탄성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강연대로 다가갔다.

곧이어 마이크를 잡은 그는 힘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위기에 맞선 담대한 도전"이 오늘의 강연 주제라고 소개했다. 곧이어 "이 주제 생각하느라 밤 샜다"며 웃자 자리에 참석한 많은 학생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잠시 후 분위기가 진정되자 "내 32년 야구인생에는 참 많은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뛰어넘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분도 인생의 크고 작은 위기를 극복하고 멋진 인생 살길 바란다"며 사뭇 진지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32년의 야구 인생을 끝내던 날

2010년 9월 21일은 삼성과 SK의 프로야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이 팬들에게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양신'의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은퇴할 때 SK 와이번스의 김광현 선수가 선발이었는데 3삼진을 당했다. 처음에는 선배가 은퇴하는 경기에서 154km의 전력을 다한 투구에 다소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2번 삼진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맞춰주는 것보다 전력을 다해 나를 상대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고맙더라. 나를 특별대우 하지 않고 전력을 대해 상대한 것이 오히려 나를 인정하는 것이고 대우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은퇴 경기를 앞두고 팬들에게 "안타 하나 치겠다"고 공언했던터라 양준혁씨는 더 머쓱했을 것 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기 위해 몇 시간 혹은 몇 십 시간을 기다린 팬들에게 삼진만 보여줄 수는 없었다.

"7회에 김광현 선수가 내려가고 이후 송은범 선수가 올라왔고 드디어 내 인생의 마지막 타석을 들어섰지만 안타를 치지 못 했다.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을 쳤는데 생각할 것도 없이 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야구인생의 미련을 태워버리듯이."

은퇴 경기가 열리던 날의 대구 하늘은 맑았다. 그래서 지켜보는 팬들도 뛰는 양준혁 선수도 맑은 마음으로 경기를 치루고 양 선수의 은퇴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기 후 은퇴식이 열리게 되었는데 경기 전까지만 해도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고 조명은 나만 비추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언론에서는 '하늘도 울고 양신도 운다'고 하더라. 관중석에 조명이 다 꺼져서 나는 팬들을 볼 수 없었는데 팬들이 핸드폰 불빛으로 밝혀줘서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 것 같더라."

그렇게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듯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야구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에게 '인생=야구'였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얼마 동안은 너무 쓸쓸하고 외롭더라. 인생에서 나만 혼자 남은 것 같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큰 행복과 행운을 가진 야구선수였다. 현역 시절에는 이승엽 뒤에 있는 2인자로 지냈지만 나와 함께 내 야구 인생의 끝을 축하해주었던 팬들이 있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강연회 중 야구 설명을 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연회 중 야구 설명을 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다
ⓒ 고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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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은퇴하던 양준혁에게 뉴욕 양키즈로 코치 연수를 제안하고 이후 감독직에 도전하라는 안정된 '보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뉴욕이 아닌 한국이다.

"삼성에서 뉴욕양키스에 코치 연수도 가고 나중에 감독도 해보라는 보장을 해주었지만 거절하고 나는 도전을 선택했다. 예능인, 야구해설가로 새로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은퇴하자 마자 일반 청소년들을 위한 '양준혁청소년야구대회'를 만들어서 일반 청소년들이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고 운동을 통해 건전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끔 노력하고 있다.

처음 청소년 야구대회 시작할 때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공부에 방해된다고 걱정하고 싫어하셨지만 지금은 건전한 운동을 통해 성적, 건강 모두가 향상되었고 고맙다고 말씀들 하신다. 요즘 많은 보람을 느낀다. 궁극적으로는 이 친구들이 야구를 통해 희생번트도 쳐보고 홈런도 쳐보면서 인생 축소판을 경험하길 바란다."

위기에 맞선 담대한 도전을 위해

9년 연속 타율 3할을 기록했던 그는 삼성이 우승하던 2002년 3할 달성에 실패했다. 주위의 비판에 시달리던 그는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처방을 내리고 지도를 했다.

"반드시 3할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내가 나의 주치의가 되어서 내게 필요한 것을 진단하고 찾았다. 또 내 전성기를 연구하며 새로운 폼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만세 타법'이고 이는 전 세계 야구선수 중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양준혁은 한 번도 시즌 MVP가 되어 본 적이 없다. 수없이 타율 3할을 기록하고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가 MVP 한번 되어본 적 없다는 것은 의문이다.

"이승엽 선수가 54의 홈런을 기록한 1999년 시즌이 끝나자 타격폼을 수정하더라. 난 정말 의문이었다. 54개나 홈런 친 타격폼을 왜 바꾸나 싶었다. 하지만 4시즌 후 아시아 홈런 기록을 깼다. 이때 많은 것을 느꼈다. 30개 쳤다고 거기서 멈추면 도태된다. 40개를 위해 50개를 위해 60개를 위해 노력해야 이승엽처럼 롱런할 수 있다. 내가 MVP 되지 못한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이 마무리되어갈 때 즈음 그는 그만의 노하우를 전했다.

"나는 야구와 일상을 많이 접목했다. 버스 탈 때는 버스의 흐름에 맞춰 하체와 허리 이동을 연습하고 여름에 파리가 눈에 어른거리면 짧게 끊어치는 자세로 파리채를 휘두르고 화장실에서도 타격폼으로 소변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나는 야구를 위해 하루하루를 만들었다. 여기에 오랜 시간 3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또 나는 앞으로 '양준혁재단'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사회에 어려움이 발생한 곳을 찾아가 함께 봉사하며 교류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

약 한 시간 반의 강연이 마무리 되자 학생들은 끝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야구해설자 다운 입담으로 학생들에게 편안한 강연을 전달한 그에게 학생들은 웃음과 탄성과 감탄으로 보답했다. '도전' 그리고 '위기' 이 두 단어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반복 속에서 잘 살펴보면 위기 뒤에는 도전이 요구되고 도전 이후에 위기가 따라온 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강연회가 끝나고 자신의 사인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양준혁 씨. 은퇴 후 사인볼의 가치가 올랐다며 기분 좋은 생색을 냈다.
 강연회가 끝나고 자신의 사인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양준혁 씨. 은퇴 후 사인볼의 가치가 올랐다며 기분 좋은 생색을 냈다.
ⓒ 고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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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게 이 사회는 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20대는 하루하루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살아간다.

"여러분들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만세 타법' 만들기 위해 수십 수백 번 부딪혔고, 그러느라 얻지 못한 게 많다. 하지만 버리면 안 된다. 그것을 정리해서 다시 내 안으로 끌고 와야만 성장할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여라. 노력해라. 1993년 프로에 입단해서 18년 뒤 은퇴할 때까지 내가 한 번도 변치 않았던 것이 있다. 1루까지 전력으로 뛰는 것. 인생은 한 끗 차이다. 늘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이 차이를 만든다."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양준혁씨의 말이다. 그의 강연 내용은 20대가 처음 듣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 이다. 그러나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오랜 야구인생 동안 실천을 통해 스스로 증명해온 그이기에 이를 듣는 대학생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강연이었다.


태그:#양준혁,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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