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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익숙했던 그 맛이 잎사귀에서 나네?

 

탄자니아 다르에슬렘에서 잔지바르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완치와는 둘 다 동양인의 외모라는 점과 사진을 찍는다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고 스톤타운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잔지바르에서 유명한 스파이스 투어(spice tour)를 신청했다. 본래 잔지바르는 스파이스 아일랜드(spice Islands)로 일컬어질 만큼 후추나 계피 등의 향신료로 유명한 곳이다.

 


이 여행상품은 묵고 있는 호텔이나 혹은 가까운 투어 에이전시에서 신청할 수 있는 데 보통 가격은 1만 5000에서 2만 탄자니아 실링(tsh)이다. (2009년 11월 기준) 우리가 흔히 음식에서 접할 수 있는 후추나 계피, 혹은 카레의 맛이 나무껍질이나 잎사귀에서 난다니 정말 신기했다.

 

달콤한 바닐라의 향이 나는 잎사귀나 매운 맛을 내는 잎사귀 등. 자연 안에 들어오니 내가 누리고 사는 것들의 진원지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 난다. 저렴한 가격으로 반나절 동안의 투어 시간 동안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해변에서의 물놀이까지 할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족스러움을 얻어 기분이 꽤 괜찮았다.

 

 

즉석요리의 천국...3분 요리가 안 부럽다

 

스톤타운의 해가 저 바다로 저물어가면 바다 앞의 항에는 하나 둘 작은 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야외 노천 까페 혹은 레스토랑들이 속속 불을 밝히는 것이다. 섬답게 다양한 해산물부터 각종튀김, 열대과일들과 사탕수수 주스까지……. 만족스러울 만큼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메뉴가 이국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더구나 보는 앞에서 바로 음식을 조리해주니 밤 바다의 운치를 즐기며 입까지 즐거울 수 있었다. 이방인들이 매료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그 중 잔지바르의 명물로 손꼽히는 것이 잔지바르 피자다. 우리가 흔히 먹는 커다란 피자를 조각낸 것이 아니다. 손바닥만 한 반죽 위에 각종 토핑과 치즈를 얹고 거기다 샐러드까지 함께 곁드는 음식이다. 여행자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이 피자를 한 번 맛만 본다는 게 결국 사흘 내내  먹게 되었다. 이 1500원 짜리 작은 피자의 중독성은 강했다. 물론 수완 좋은 아저씨가 우리 얼굴을 잊지 않고 첫날 주문했던 대로 잘게 썬 고추 토핑을 매번 많이 넣어준 센스를 발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감정에 대처하는 다른 표현법의 발견

 

완치와 다니면서 어떤 현지 청년을 알게 되었다. 호의를 가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이방인이라지만 공과 사는 구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상대의 감정을 낭비하게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완치에게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 청년이 계속 우리와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을 보니 완치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엔 저녁을 함께 먹자는 요청까지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닌 이상 상대가 호감을 갖고 있는지는 쉽게 느낄 수 있다. 완치 또한 그런 그가 부담스러워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적당히 둘러대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내가 먼저 꺼낸 얘기는 이러했다.

 

"완치, 보니까 걔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자꾸 매일 보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네가 싫으면 그냥 솔직히 싫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면 안 돼? 상대방의 감정을 아는데도 확실히 선을 긋지 않는 건 그의 감정을 소모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안 좋은 거 아닌가?"

 

상대에 대한 매너가 중요시 되는 유럽에 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대답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매달린 것도 아니고 호감을 좀 표시했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무례하게 굴기는 싫어. 지금까지 잘 대해줬는데 내가 그런다면 안 좋을 것 같아."

 

난 그녀의 방식을 존중해 기꺼이 때때로 그녀의 거짓말에 동참하곤 했다.

 


'쇠사슬'은 그대로인데

 

일명 슬레이브 마켓(slave market). 3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옆을 보면 쇠사슬을 차고 있는 사람들의 동상이 있었다. 입구를 지나 지하로 통하던 계단을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적막함과 혼자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다음 상황이 걱정돼 조금 미적거렸다.

 

163센티 미터의 내 키가 채 펴지지 않을 낮은 높이 게다가 어둡고 침침하기까지 했던 그 공간은 노예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갇혀 판매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어서 압사를 하기도 했고  산소가 부족해 여럿이 죽어나가기도 했다던 그곳에 난 홀로 서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쇠사슬에서 눈을 못 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못 할 짓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SPICE TOUR, #슬레이브 마켓, #스톤타운, #잔지바르 ,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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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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