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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소풍 나온 가족.
 공원에 소풍 나온 가족.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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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에 소풍 나온 가족.
 피라미드에 소풍 나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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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봄이 왔다. 지난 4월 24일은 이집트 '봄의 날(sham il-nissim)'이었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기온 상으로는 이미 초여름을 지난 지 한참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파라오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인 봄의 날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집집마다 대청소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며, 손에 손을 잡고 가족끼리 가까운 공원이나 펠루카(이집트 전통의 무동력 돛단배)에서 봄을 만끽한다. 이날 하루는 정말 이집트 전역이 사람들로 붐빈다. 가히 온 국민의 소풍날이라 부를 만하다.

봄날 밥상.
 봄날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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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날은 파라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봄이 되어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 봄채소들을 보며 신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달걀과 절인 생선(주로 청어를 먹는데, 이를 먹지 못하는 사람은 참치로 대신한다), 싱싱한 봄채소들을 준비해 온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봄의 날은 음식 준비로 시작된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 달걀을 삶으면 자녀들은 색색의 펜과 물감으로 달걀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생선과 봄채소들로 식탁을 차린다. 'fessikh'라고 불리는 이 절인 생선은 보통 한 달 이상 소금에 절이기 때문에 봄의 날이 되기 전부터 주부들이 준비하곤 한다. 요즈음은 그냥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는 집도 많이 늘었다. 생선과 달걀로 봄의 날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에 나서 봄기운을 만끽한다.

'봄의 날'은 이집트인 소풍날... 한산하던 피라미드도 북적

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왈라.
 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왈라.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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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뿐만 아니라 기자 피라미드나 동굴 교회 등의 관광지, 종교적 모임 장소 등에서도 소풍을 나온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관광지들은 교외에 있는데다 이집트인 입장료가 외국 관광객 입장료의 20~30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가족과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 애용된다.

이번 봄의 날, 기해드(22·여)씨의 집에서는 아침부터 달걀에 예쁜 그림을 그리는 일이 한창이었다. 남동생 카림과 여동생 왈라, 친구 칼리드까지 모두 네 명이 열심히 달걀에 그림을 그렸다. 여동생 왈라(14·여)는 "달걀 먹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이들이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머니 헤드이야(48·여)씨는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생선이 있는 것을 빼면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식탁이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명절이라 주부의 손길은 분주했다.

예쁘게 그림을 그려 넣은 달걀들.
 예쁘게 그림을 그려 넣은 달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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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이들은 기자 피라미드로 향했다. 민주화 혁명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한산한 피라미드였지만 이날만큼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에 피라미드가 관광지다운 모습을 찾은 듯했다.

피라미드 옆 스핑크스에서 만난 모으타즈(29·남)와 마하(23·여)씨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이한 봄의 날을 스핑크스에서 사진을 찍으며 보내는 중이었다. 마하는 아직 요리가 서툴러 달걀과 절인 생선 등 '정식' 봄의 날 요리는 준비해 오지 못했다며 샌드위치와 과자를 보여주었다. 봄의 날인데 어떠냐고 물으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봄의 날도 좋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이날이 더 좋다"며 모으타즈씨는 활짝 웃었다.

스핑크스에서 만난 마하씨 부부.
 스핑크스에서 만난 마하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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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옆 공터에서는 가족과 연인들이 도시락을 펴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고 오랜만에 손님들이 많아진 낙타 장수들은 신이 났다. 낙타를 태워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하는 무함마드(52·남)씨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정말 힘들었는데 오늘 하루라도 손님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거리에서도 봄의 날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내 검은색의 두꺼운 유니폼을 입고 있던 경찰들이 하얗고 가벼운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것도 봄의 날을 전후해서다. 민주화 혁명 이후 여기저기에서 건물 공사를 하는 것도 이번 봄에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다.

봄의 날을 전후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카이로 넬코 지역의 교통경찰.
 봄의 날을 전후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카이로 넬코 지역의 교통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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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하야 이후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잦은 시위와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이집트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이번 봄의 날에도 여러 종류의 테러 위협이 있었지만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지난 겨울은 이집트인들에게 큰 변화와 희망, 한편으로는 사회적 혼란을 가져다주었지만 여느 때처럼 봄의 날은 따뜻하고 활기찼다.

현 정부가 과도정부임을 틈타 도시 곳곳에서 신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세금, 건축법 규제 등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은 카이로 인근 마아디 지역.
 현 정부가 과도정부임을 틈타 도시 곳곳에서 신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세금, 건축법 규제 등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은 카이로 인근 마아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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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집트, #봄, #무바라크,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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