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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는 지난 15일 "임상시험에 사용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을 3년간 한시적으로 비급여 대상으로 인정해 병원이 환자에게 비용을 징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피시험자에게 사용되는 대조군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의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임상시험 비용, 환자와 건보공단이 내라는 이상한 법률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제17조(연구중심병원의 지원 등)
① 정부는 제15조제1항에 따라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대하여 보건의료기술의 개발·촉진을 위해 필요한 인력, 예산 등을 지원할 수 있다.

②보건복지부장관은 제15조제1항에 따라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연구개발을 위하여 신의료기술 등을 임상연구 대상자에게 사용하는 경우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3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한시적으로 요양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하 "비급여대상"이라 한다)으로 정할 수 있다.

③ 보건복지부장관은 제15조제1항에 따라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의약품, 의료기기 및 의료시술에 대해 임상연구를 실시할 경우 임상연구 대상자에게 사용하는 대조군에 대하여 급여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기업으로부터 지원 받지 아니하는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에 한정한다.
이번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환자가 임상시험의 대상자가 되면서 동시에 임상시험에 소요되는 비용도 부담하고 임상시험 대조군의 소요비용을 건강보험료로 충당하는 것이다.

정부가 연구역량이 뛰어난 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해 보건의료기술 개발, 촉진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연구중심병원에 인력, 예산 등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왜 굳이 개발자가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임상시험 비용까지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에 부담시키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임상시험이 무엇인가? 의약품 등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사람을 직접 대상으로 하거나 사람에게서 추출(또는 적출)된 검체나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시험이나 연구를 말한다. 즉, 임상시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유효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임상시험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진행되고 비용도 개발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환자는 몸 대고 돈 대고, 임상시험 수혜는 제약사가

만일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치과병원, 한방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전문병원 등 웬만한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은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병원은 임상시험을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담으로 합법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제약사는 당연히 막대한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연구중심병원의 연구자를 설득해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하게 만들 것이고, 그 임상시험 결과를 연구자가 논문으로 발표하면 결국 그 수혜는 해당 제약사가 받게 되는 것이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또한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과 책임범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제약사의 재정지원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환자는 유효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상시험 비용까지 부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건강보험은 만성 적자로 재정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에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제약사가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임상시험 대조군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건강보험 재정으로 퍼주는 것은 상식 이하의 발상이다.

환자는 의학적 문외한이다. 의사가 좋은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이 나왔으니 한번 사용해 보자고 권유했을 때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가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임상시험은 식약청의 엄격한 사전, 사후 감시 및 통제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병원내에 IRB(연구윤리의원회)가 있지만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처럼 대부분 병원내 의료진과 병원에 호의적인 외부인사들로 구성되어 임상시험의 필터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되어 신약, 신의료기술 등의 임상시험을 환자의 부담으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임상시험 비용은 환자나 건강보험공단이 아니라 개발자가 부담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반인권적인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 폐기되어야

아울러 임상시험 중인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비용을 비급여로 환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정부 스스로 최소한의 관리 책임조차 내팽개친 조치이다. 임상시험 중인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개발자나 의료공급자가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비급여인 경우에는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임상시험 중인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이 개발자나 의료공급자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또 다른 경로로 악용되고, 환자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원인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임상시험 중인 신약과 신의료기술의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환자의 부담을 부당하게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기술의 유효성 및 안전성 검증 목적의 임상시험 대상자에게 그 임상비용까지 비급여로 부담시키는 반인권적인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폐기되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의료계, 제약계 뿐만 아니라 국민, 환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연구중심병원 육성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 기사는 환단연이 낸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태그:#임상시험, #환자단체, #환자단체연합회,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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