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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을 모르는 이도 있을까?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예술혼으로도 유명한 운보 선생의 유작은 오늘날에도 숱한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느낌의 공명을 울린다.

어느 영역에도 구애됨이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독특한 화필로 독창적인 경지를 이룬 운보 선생은 불과 여덟 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은 후 귀먹고 말 못 하는 장애의 고통 속에서도 무려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명실상부한 희대의 기린아였다.

운보 선생께서 타계하신 지도 어느새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그렇지만 선생의 그 귀한 작품들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이 어찌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돈 한 푼 안 내고 공짜이니 말이다.

저 분재들 모두가 오 목사님의 지극정성으로 탄생했단다.
 저 분재들 모두가 오 목사님의 지극정성으로 탄생했단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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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지대한 절친한 친구의 소개로 아주 근사한 전시장을 찾았다. 장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 소재 '샘물원'. 인근의 주성천교회 담임목사인 오도석씨가 운보 선생의 그림들과 기기묘묘한 수석과 도자기, 또한 분재까지 무려 1만 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두루 갖추고 무료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샘물원과 교회 안에 두루 포진한 진귀한 '보물'들을 두루 구경했다. 그랬다. 목사님이 소장한 진귀한 각종의 문화재급 소장품들은 하나같이 '보물'에 다름 아니었다. 한데 어찌나 숨이 가쁘도록 화려하고 기가 막히던지 그만 너무도 호사하는 내 눈까지도 너무 좋다며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오도석 씨가 운영하는 영농법인인 샘물원과 주성천교회 안에 전시된 진귀한 보물들은 예술에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실로 경이의 차원을 훨씬 능가하는 충격으로까지 다가왔다. 왜냐면 "억(億)~" 소리가 절로 날 만치 고가의 운보 선생 작품에서부터 살아 숨 쉬는 듯한 분재와 도자기, 또한 박수근과 천경자 화백 등의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화백들의 그림들 또한 모두 이곳에 한꺼번에 '도열해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그야말로 압권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무엇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그야말로 압권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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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쉬운 점을 크게 느꼈던 건 시가로 200억 원 이상이나 나간다는 각종의 진귀한 작품들 거개가 얼추 풍찬노숙(風餐露宿)에 가까운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샘물원의 경우, 그 시설물이 허름하기 짝이 없는 비닐하우스 형태인지라 습기와 바람 따위에도 진귀한 그림들이 쉽사리 손상될 것 같아 자못 불안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샘물원과 주성천교회 안에 전시되고 있는 1만여 점의 소중한 보물들을 대전광역시 혹은 문화재청의 담당자와 실무자가 방문 판단하여 이를 모두 박물관 형태로 지은 건물에 안전하게 입주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화풍난양한 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그렇게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한국의 문화재 수집가였고 연구가이며 교육가이기도 했다. 그가 수집한 대부분의 문화재들은 매우 가치가 높아 국보나 보물 등으로 지정됐음은 또한 모두가 아는 그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는 1942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으며 간송미술관까지 세웠다.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한국의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처럼 문화재들을 직접 발품을 들여서까지 수집했던 것이다.

제2의 간송 전형필 선생에 다름 아닌 오도석 목사.
 제2의 간송 전형필 선생에 다름 아닌 오도석 목사.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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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오도석 목사님의 오늘날 문화재 수집 열의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어떤 쾌거임에 틀림이 없다는 셈법이 고스란히 생성되고 또한 도출되는 셈이겠다.

강원도에 위치한 영월군이 정부에 신청한 영월 박물관 특구가 정부 특구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이같은 '지원책'이 문화재청이 위치한 이곳 대전에 건립된다면 금상첨화일 듯 보였다. 따지고 보면 '녹색성장'이란 것도 실은 소중한 문화재와 보물 따위의 관람 만끽 정서와 그의 대가인 안온(安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샘물원' 가는 길 :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위치한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약 2~3분 달리면 유성 선병원 바로 앞에 있다(전화 : 042-825-0684).



태그:#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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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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