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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만난 청노루귀.2011년 4월 17일
 북한산에서 만난 청노루귀.2011년 4월 17일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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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일요일, 북한산 산행 중 노루귀를 만났다. 북한산에서도 노루귀가 자란다는 말을 듣긴 들었지만, 드물게 자라는 걸로 알고 있는지라 설렘은 더욱 컸다. 그리하여 사진을 충분하게 찍고서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산에서 돌아와 아이들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나처럼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해 자랑을 하기도 했다.

사실 노루귀와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3월에 수리산에서 만났고, 지난해 H 산에서도 만났다. 그럼에도 노루귀와의 이번 만남이 이토록 설레는 것은 다른 산도 아닌 북한산에서, 그것도 내가 가장 많이 갔던 구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산에서 노루귀를 봤다는 말을 들은 후 산행하다가 노루귀를 찾아 자랄 만한 곳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북한산에서 만난 노루귀, 반가웠지만...

"노루귀도 보고 산행도 하자"는 어떤 사람과 2시간 걸려 노루귀가 있다는 수리산에 갔던 2009년 당시 야생화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서울·경기에서 노루귀가 자라는 곳은 수리산과 청계산뿐"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변산바람꽃과 노루귀가 있다는 수리산 어떤 골짜기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사람들은 노루귀를 찾아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찾을 때처럼 낮게 엎드려 숲을 기어 다니다 시피 했다. 변산바람꽃은 지고 있었고, 털을 잔뜩 뒤집어 쓴 노루귀 꽃망울들이 몽글몽글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 주에나 활짝 핀 노루귀를 볼 수 있을 거라고들 했다. 웹을 통해서만 보던 노루귀를 직접 만났으나 활짝 핀 꽃을 맘껏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노루귀란 이름이 실감나는 H산의 노루귀.2010년 5월.
 노루귀란 이름이 실감나는 H산의 노루귀.2010년 5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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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란 꽃이름이 실감나는 H산의 노루귀 잎.2010년 5월.
 노루귀란 꽃이름이 실감나는 H산의 노루귀 잎.2010년 5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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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강원도 H산에서. 왜 노루귀란 이름이 붙었는지 실감이 날 만큼 H산의 노루귀들은 영락없는 짐승의 귀를 닮은 솜털 보송보송한 잎들과 함께 활짝 피어 있었다.

사실 지난해 H산의 노루귀를 보기 전까지 '잎이 노루귀를 닮았다'는 꽃 설명이 실감나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노루귀 사진 대부분은 꽃을 찍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짐승의 귀여운 귀를 떠올리게 하는 H산의 노루귀 잎 사진을 찍으며 솜털 보송보송한 그 잎에 뺨을 슬며시 대보기도 했다. 지금도 그날의 그 촉감이 아른아른하다.

솜털 보송보송한 H산의 노루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어떤 블로거가 북한산에도 노루귀가 있다는 댓글을 남겼기에 '어디쯤에 가면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어떤 이유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안 들었으면 몰라도 이미 들은 말이라 북한산 산행을 하는 중 나도 모르게 자꾸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를 노루귀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됐다. 한편으론 '북한산에도 정말 노루귀가 있긴 있는 걸까? 공연한 거짓말 아냐?' 이런 생각도 드문드문 들었다. 

이런 노루귀를 북한산에서, 그것도 워낙 자주 가는 산길에서 만났으니 그 설렘이 오죽 컸으랴.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런 설렘도 잠깐, 노루귀를 만나기 1시간 전에 만난 몰지각한 사람들이 떠올라 노루귀가 걱정됐다.

천지가 노랑제비꽃인데... 한뿌리 캐면 어떠냐고?

그들에 의해 이중 일부분은 뽑혀 버렸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찍었던 사진이다. 2011년 4월 17일
 그들에 의해 이중 일부분은 뽑혀 버렸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찍었던 사진이다. 2011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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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를 만나기 전에 노적사에 들렀었다. 노적사를 조금 앞둔 곳에 노랑제비꽃이 아주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지난해 그 주변에서 만났던 남산제비꽃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지난해 겨우 꽃 몇 송이 피울 정도로 작았던 노랑제비꽃 무리가 한눈에도 지난해와 큰 차이가 날 만큼 큰 무리를 이루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노적사에서 볼일을 보고 산행을 하려던 구간을 향해 가는데 30분 전에 노적사를 가면서 만났던 그 노랑제비꽃 앞에 두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사람들 곁에는 노랑제비꽃을 캐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있고 그들은 제비꽃을 막 캐서 까만 봉지에 담고 있지 않은가.

"무엇하시는 거예요?"라고 묻는 나에게 또 다른 제비꽃 포기를 캐려던 여자는 기분 나쁘다는 듯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거 금방 쉽게 많이 퍼지는 꽃이에요"라고 퉁명스럽게. '귀하지도 않은 흔한 꽃, 쉽게 퍼지는 꽃인데 좀 캐면 안 되냐? 기분 나쁘게 네까짓 게 뭔데 참견하고 그러냐?' 여자는 되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쉽게 퍼지고 안 퍼지고는 그 제비꽃 사정이고. 그럼 막말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사람이 많으면 사람을 일부러 쳐내도 된다는 거예요? 이곳은 북한산 국립공원이거든요. 국립공원에서는 풀 한포기도 마음대로 뽑아서도 안 되거든요. 당연히 벌금을 물어야 하거든요."

자신의 낯부끄러운 짓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많으니, 쉽게 번식하니 좀 캐도 된다는 여자의 뻔뻔함이 어이없었다. 이런 내 말에 여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제비꽃을 함께 캐던 남자가 자존심 상하는 듯 "그럼 다시 심어줘"라며 얼굴 붉히며 말하자 그 여자는 다시 당당하게 말했다. "다시 심어봤자 죽어."

캐서 가지고 가 심어봤자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캤다는 그 여자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대답에, 노랑제비꽃을 캔 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는 듯한 그 여자의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지만, 더 이상 말하면 불미스런 일로 번질 것 같아 그 자리를 떠나 산행을 하다가 이 노루귀를 만나게 된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흰색의 남산제비꽃과 꽃색깔이 다르다. 옆에 핀 고깔제비꽃(오른쪽 아래 잎이 고깔제비꽃의 잎)의 색이 혼합되었다. 외에도 이날 태백제비꽃,엷은잎제비꽃,털제비꽃 등 6~7종의 제비꽃을 만났다. 2011년 4월 17일
 흔히 볼 수 있는 흰색의 남산제비꽃과 꽃색깔이 다르다. 옆에 핀 고깔제비꽃(오른쪽 아래 잎이 고깔제비꽃의 잎)의 색이 혼합되었다. 외에도 이날 태백제비꽃,엷은잎제비꽃,털제비꽃 등 6~7종의 제비꽃을 만났다. 2011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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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노랑제비꽃과 엷은잎제비꽃 등과 같은 몇 종류의 제비꽃들은 산에서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만 자라는 것 같다. 노랑제비꽃 설명에 '해발 500m 이상에서만 자란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제비꽃이 흔해도 평지나 산의 중턱에서는 노랑제비꽃을 볼 수 없고 어느 정도 올라간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걸 보면 아무데서나 자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날 그들이 캐간 노랑제비꽃은 아마도 십중팔구 죽지 않을까.

내가 아는 한 노루귀는 더욱 까다롭다. 산속 볕이 조금씩 들락 말락하는 나무아래서만 자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하필 내가 만난 북한산의 노루귀는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산행코스 산길에 바짝 붙어 피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혹시 자기 집에 심겠노라 노랑제비꽃을 캐던 그 사람들처럼 누군가 어리석고 무모한 욕심으로 그 노루귀를 캐가 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 사라집니다

지난해 목격한 일도 생각난다. 5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찔레나무 옆을 지나다가 찔레순 꺾어먹던 옛날이 생각났던지 찔레순 몇 개를 꺾었다. 마침 내 옆을 막 스쳐지나간 레인저 둘이 그 광경을 목격했고, 그 여자들에게 국립공원에서 식물을 함부로 채집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두 여자는 "찔레순 꺾은 것이 뭐가 잘못이냐? 설령 법이 그렇다고 해도 이까짓 찔레순 좀 꺾었기로 벌금까지 내야 한다고 어머니뻘인 우리에게 협박할 수 있는가?"라며 되레 그 젊은 레인저들을 꾸짖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여자들의 '찔레순 꺾기'는 불법이다. 벌금감, 세상 물정 모르는 무식한 행동인 것이다. 엊그제 내가 만난 노랑제비꽃을 캔 그 사람들도 당연히 벌금감이다. 해마다 봄이면 국립공원에서 무단으로 산나물 채취하는 것을, 가을이면 도토리 채취하는 것을 단속하고 벌금을 부과한다고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면 이처럼 불법으로 채취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북한산에서 만난 큰괭이밥. 개체수가 적었다. 겨우 몇송이 피웠다.2011년 4월 17일
 북한산에서 만난 큰괭이밥. 개체수가 적었다. 겨우 몇송이 피웠다.2011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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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내가 만난 현호색은 이처럼 청색을 띄는 것과 자주색을 훨씬 많이 띄는 것인데, 지닌해 보다 일찍, 훨씬 많이 피었다. 2011년 4월 17일.
 이날 내가 만난 현호색은 이처럼 청색을 띄는 것과 자주색을 훨씬 많이 띄는 것인데, 지닌해 보다 일찍, 훨씬 많이 피었다. 2011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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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5월, '1시간에 3종, 하루에 130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멸종하고 있다. 1970년부터 2006년까지 지구상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31%가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1970년~1995년 사이에 무려 380종의 식물이 멸종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4000가지가 넘는 식물이 자라고 이중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것은 500가지가 넘는데,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것 중 하나가 멸종되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된다.

노랑제비꽃은 북한산 높은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캐다가 가까이 두고 보려는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자생지에서는 이젠 거의 보기 힘들어져 멸종위기 식물이 된 복주머니란과 같은 식물들도 예전에는 노랑제비꽃처럼 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식물들도 저마다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이 있지 않을까? 우리처럼 말이다.

'이렇게 많은데 나 하나쯤 어떠랴'의 마음으로 예쁘니 캐다가 집에 심고 보자는 사람들이 어쩌다 한 두 사람이고 흔한 꽃이면 몰라도, 너나없이 그 식물의 생태적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캐다 심는다면, 그리고 그 꽃이 그리 많지 않은 꽃이라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지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봄꽃들이 툭툭 꽃망울을 터트린다. 봄이라 그런지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봄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아이들과 산행을 하며 꽃을 꺾어주는 것도 자주 보인다. 노루귀를 만난 그날 꽃망울을 맺었던 나도개감채는 꽃을 피웠을까? 큰괭이밥 옆에 있던 털제비꽃은 피었을까? 산행하기 좋은 날씨다. 노루귀의 안부도 궁금하다. 겸사겸사 다시 가 봐야겠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물어봤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국립공원에서의 동식물 불법 채취에 대해 보도하지만 불법 채취하는 모습을 여전히 흔하게 보게 된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국립공원에서의 동식물 불법 채취에 대해 보도하지만 불법 채취하는 모습을 여전히 흔하게 보게 된다.
ⓒ 포털사이트 검색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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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오물투기,지나친 고성방가, 취사, 지정장소 외 흡연-산은 무조건 금함, 입욕 등)들을 할 경우 자연공원법이 정한 규정에 의해 과태료나 벌금을 물게 된다. 무단으로 동식물을 채취할 경우는 과태료가 아닌 벌금과 고발 대상이다.

희귀식물이나 기타식물을 뿌리 채 뽑거나 야생동물을 포획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런 불법을 발견하고 지적할 경우 불미스러운 일로 번지는 위험의 소지도 있다. 국립공원 높은 지대에까지, 각 요소요소에 레인저들이 배치, 불법을 단속하고 있다. 목격하게 되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면 현장에 있는 관리자들에게 무선으로 즉각 연락, 단속하는 단속시스템이 가동 중이니 이용해 주시면 되겠다.

국립공원관리공단(02-3279-2700)에 전화해도 되나 선생님 같은 경우 북한산에 자주 가시니 02-909-0497(~0498)로 전화해주시면 훨씬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가는 국립공원 사무소에 전화하면 훨씬 빠른 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4월 24일 통화를 정리했으나 표현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태그:#노루귀, #북한산, #자연공원법, #국립공원관리공단, #노랑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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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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