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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곳곳에 위치한 화가들의 작품들.
▲ 그림들 골목 곳곳에 위치한 화가들의 작품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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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 (어디 출신이세요?)
"I'm from Zanzibar." (전 잔지바르 사람입니다.)
"ah~ So, you are a Tanzanian!" (아, 그럼 탄자니아 분이군요!)
"No, I am from Zanzibar." (아뇨, 전 잔지바르 출신이예요.)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지도를 펼쳤을 때, 탄자니아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1964년 합병되어 탄생한 탄자니아는 이후로도 크고 작은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를 겪어왔다. 또한 남반구(적도 남쪽의 반구) 아래 세워진 최초의 모스크가 있는 곳인 만큼, 대부분이 무슬림들인 이슬람 사회라서 건축 분위기나 마을의 느낌이 상당히 독특하다.





저렇듯, 골목에 늘어서 있는 채로 판매되기도 한다.
▲ 그림들 저렇듯, 골목에 늘어서 있는 채로 판매되기도 한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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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돌들로 이루어진 건물들, 아랍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커다란 대문들, 그리고 하얀색 긴 옷을 입고 다니는 무슬림 남자들…. 그들은 본인들의 문화에 대해, 본인이 잔지바르 출신인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치 탄자니아가 스와힐리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관광의 이유로든, 16세기 노예무역이 번성해서든, 유명한 그룹 QUEEN(퀸)의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든, 이곳엔 외국인들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다. 그래서 더욱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낯설지 않게 꾸며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와, 여행자들이 힘들지 않을 음식문화가 관광지에 맞게 잘 발달 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편안해 할, 깔끔하게 꾸며진 스톤타운 거리.
물론 외곽으로 나가면 그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다.
▲ 관광지로서의 스톤타운 외국인들이 편안해 할, 깔끔하게 꾸며진 스톤타운 거리. 물론 외곽으로 나가면 그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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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에살렘에서 출발해 잔지바르에 닿으면 여권을 준비해야 한다. 탄자니아 비자를 받았다고 해서 함께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잔지바르에선 잔지바르의 입국도장이 또 찍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톤타운에 들어오면 지금까지의 아프리카 나라에서 그랬듯, 이방인을 맞는 것은 호객꾼이다.
 
스톤타운에선 딱히 갈 만한 곳을 생각해 놓지 않아서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배에서 만난 동양아가씨가 나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둘일 때 느끼는 든든함을 무기로 우리는 씩씩하게 호객꾼들을 떨쳐냈다.




이슬람이 주류인 잔지바르에서도 카톨릭 교회는 조화롭게 공존한다.
▲ 카톨릭 교회 이슬람이 주류인 잔지바르에서도 카톨릭 교회는 조화롭게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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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슬림 남자들이 이런 복식은 아니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복장
▲ 무슬림 남자 모든 무슬림 남자들이 이런 복식은 아니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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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양아가씨의 이름은 완치(wanchi).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어찌나 나와 같은 생김새가 반갑던지 주저 없이 말을 걸었다.(이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의 하나다. 사람에게 말 걸기.)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이겠지 싶은 생각의 반가움도 잠시,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유럽인이었다. 홍콩 출신인 그녀의 조부모가 네덜란드로 건너왔으며,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유럽의 문화가 더 익숙한 유럽인이었다. 비슷한 생김새로 그렇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우습지만, 다른 문화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나 이런 '구분'에서 오는 것을 잘 거르고 조화롭게 만들 수 있어야 정말 글로벌한 사람이 되는 것. 이렇듯 여행은 내가 발길을 닿은 곳의 것들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배우게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문화, 그리고 점점 경계가 없어지는 세상 말이다.
 
녹지조성이 잘 되어있는 스톤타운의 한 공원. 널어놓은 것은 누군가의 빨래들.
▲ 공원 녹지조성이 잘 되어있는 스톤타운의 한 공원. 널어놓은 것은 누군가의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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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둘이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트윈 베드룸을 침대 하나씩 나눠 쓰기로 했고, 그렇게 3일 이상 묵는 조건으로 매니저와 적정 가격을 맞추기 위해 20분 정도의 공을 들여야 했다. 더구나 완치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어 함께 다니기 너무 편리하고 반가운 존재였다. 나 또한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가 잦았기에 그녀와 함께 떠난 마을 산책은 더할 나위 없는 출사가 되었다.  
1시간 반가량 바다를 건너 왔을 뿐인데 아이들의 생김새는 내륙과 확연히 다르다.
▲ 카톨릭 교회에서 만난 아이들 1시간 반가량 바다를 건너 왔을 뿐인데 아이들의 생김새는 내륙과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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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들이 진열되어 있다.
▲ 과일가게 망고들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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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기에 아침일찍 시장에 나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 있다.
▲ 해산물이 풍부한 잔지바르 섬이기에 아침일찍 시장에 나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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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스톤타운은 사진을 찍을수록 그 마을이 담고 있는 시간과 역사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걸어 다니며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그런 산책이 아닌, 건물 하나하나가(칠의 벗겨진 모습까지도) 품고 있는 역사, 그리고 지금은 외국인들과의 조우가 낯설지 않은 관광지로서의 면모, 젊은 예술가들이 창작해 내는 작업, 해 질 녘의 바다에 넘실거리는 다우(탄자니아의고유 범선)등 잔지바르의 스톤타운 전체가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포르투갈에 이어 오만, 그리고 영국 등의 점령을 거친 아픈 역사를 가진 만큼 잔지바르가 응축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깊고 슬프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질 때의 노을은 장관이다.
▲ 스톤타운의 앞 바다. 해가 질 때의 노을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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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스톤타운 , #탄자니아, #잔지바르 , #잔지바르 입국심사, #노예무역 번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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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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