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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사적>에 기록하기를 '향성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이 진덕여왕 6년인 652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지금의 신흥상의 전신이다. 이 향성사의 넓이는 현 신흥사 입구 주차장 앞까지, 상당한 크기를 가진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의 자리를 보아서이다.

 

속초시에서 신흥사로 들어가다가 보면 속초시 설악동 산 24~2에 삼층석탑 한기가 보인다. 이곳은 신흥사로 들어가는 도로변의 좌측이다. 이 삼층석탑은 원래가 '향성사'라는 옛 절터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향성사지의 형태는 전혀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이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형태를 띠고 있다.

 

 

두 개의 탱주를 조성한 삼층석탑

 

당시 향성사가 어느 정도의 크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향성사가 현 신흥사의 전신이라고 볼 때, 사지의 넓이는 대단히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형태이다. 바닥돌은 여러 장의 돌을 붙여 깔고, 같은 방법으로 아래층 기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의 가운데 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인 양우주를 새겨두었으며, 면의 가운데에도 2개씩의 기둥조각인 탱주를 새겨놓았다. 위층 기단도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기고,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 2개를 조각하였다. 여러 장의 석재를 이용해 조성한 기단의 형태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고졸한 멋을 풍기는 향성사지 석탑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듯하다. 고졸한 멋을 풍기는 이 석탑은 탑신부에서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새겼다.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인 우주를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전혀 없다. 이 탑은 1966년 해체, 보수를 하였는데, 이때 3층 몸돌의 가운데에서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두는 사리공은 찾아냈으나, 사리장치나 유물은 이미 없어진 뒤였다. 삼층석탑은 몸돌 위에 올린 지붕돌의 두께가 약간 두꺼운 것이 특징이며, 밑면의 받침 수는 전체가 다 5단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급한 반면, 치켜 올려진 정도는 적은 편이다. 이런 구성으로 인해 탑 전체가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

 

 

풍경 하나가 딱딱함을 가시게 해

 

4월 10일 찾아간 향성사지 삼층석탑. 지붕돌인 옥개석의 네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보인다. 이러한 풍경의 구멍 하나가 탑이 주는 무거운 느낌을, 반전시켜 경쾌하게 보이게 한다.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동해안에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석탑이다. 하기에 이 석탑의 가치는 남다르다고 보겠다.

 

향성사지의 절터에서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와편이 발견이 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향성사지 삼층석탑이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년 세월을 지나면서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향성사지 삼층석탑.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는 석탑 한기. 아마도 그 숱한 세월에 이야기가 넘쳐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음 향성사지를 답사할 때는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아야겠다.


태그:#향성사지, #삼층석탑, #보물, #속초,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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