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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금강산 건봉사의 출입문인 불이문,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이다
▲ 불이문 고성 금강산 건봉사의 출입문인 불이문,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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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는 6·25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31본산의 하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신흥사의 말사(본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이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원각사'라 불렀다. 그 후 경덕왕 17년인 758년에는 발징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만일회(만 일 동안 도를 닦는 의식)의 시초이다.

건봉사의 뒤편 금강산에는 등공대라는 곳이 있다. 바로 염불만일회를 열면서, 만 일(27년 5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염불을 드렸다는 것이다. 신라 경덕왕 17년인 758년 무술년에 발징화상, 정신, 양순 등 31명의 스님들이 모여 염불을 드렸는데, 신도 1820명이 환희심이 일어 동참하였다고 한다.

2007년 5월 6일 촬영. 건봉사 뒤편 등공대에서 열린 등공제. 2009년 10월 금강산건봉가을축제 당시 건봉사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 등공탑 2007년 5월 6일 촬영. 건봉사 뒤편 등공대에서 열린 등공제. 2009년 10월 금강산건봉가을축제 당시 건봉사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 건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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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마친 스님들과 신도들이 등공탑을 돌고 있다
▲ 탑돌이 제를 마친 스님들과 신도들이 등공탑을 돌고 있다
ⓒ 건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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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공'이란 육신이 살아 있는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말한다. 허공으로 솟은 채 몸은 벗어버리고, 영혼만 부처님의 극락정토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건봉사 북쪽에 있는 등공대는 만 일 동안 쉬지 않고 예불을 하시던 스님들이 원성왕 3년인 787년 회향(자기가 닦은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림)을 할 때, 건봉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몸이 떠올라 날아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위로 1.5km 정도를 날아오른 스님들은, 육신은 그대로 땅에 떨어트리고 맑은 정신만 등공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광무 4년인 1900년에, 몸을 버리고 간 스님들의 다비식을 거행한 곳을 '소신대(燒身臺)'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소신대 자리에 1915년 5월 등공탑을 세워 그 뜻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동안 군사작전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등공대가, 2005년에는 57년 만에 일반인에 개방되기도 했다.

불이문 현판. 해강 김규진의 글씨이다
▲ 현판 불이문 현판. 해강 김규진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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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의 낮은 기단위에 다포계 팔장지붕으로 자어진 불이문
▲ 불이문 1단의 낮은 기단위에 다포계 팔장지붕으로 자어진 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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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안고 있는 불이문

신라 말 도선국사가 건봉사를 중건한 뒤 절 뒤쪽에 봉황새와 같은 돌이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라 했으나, 공민왕 7년인 1358년에 나옹이 중수한 뒤 다시 건봉사로 바꾸었다. 건봉사는 1464년 세조가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되자 이때부터 역대 임금의 원당이 되었다.

건봉사는 6·25한국전쟁 이전에는 대찰이었다. 대웅전, 관음전, 사성전, 명부전, 어실각, 불이문 등 총 642칸에 이르는 전각이 있었으나, 6·25한국전쟁 때 거의 다 소실이 되고 유일하게 불이문만이 남았다. 이 불이문은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이문은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배흘림 형태로 조성된 석주에 남아 있던 총탄 자국들을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건봉사의 출입문이다. 이 돌기둥에는 길이 90cm의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을 따로 축조하지 않고 불이문으로 하여금 사찰수호의 기능을 함께 하게 한 것이다.

불이문의 기둥에 새겨진 금강저. 이 불이문의 사찰 수호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금강저 불이문의 기둥에 새겨진 금강저. 이 불이문의 사찰 수호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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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당시 생긴 탄흔. 치열한 전투로 인해 건봉사는 불이문만 남고 모두 소실이 되었다
▲ 흔적 6.25 한국전쟁 당시 생긴 탄흔. 치열한 전투로 인해 건봉사는 불이문만 남고 모두 소실이 되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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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은 1단의 낮은 기단을 놓고 그 위에 1.61m의 돌기둥을 세웠다. 다포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불이문의 중앙에 걸려있는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이다. 노송 숲길을 지나 주차장을 거쳐 만날 수 있는 건봉사 불이문. 불이문을 지나면 불국정토가 된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님을 뜻한다. 즉 생과 사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 선과 불선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 불이문이 이렇게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불이의 완전한 뜻을 이루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남아 있고 사라지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4월 10일 찾아간 건봉사에서 만난 불이문은, 옛 모습 그대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태그:#불이문, #건봉사, #고성, #문화재자료, #등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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