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게 된 허재 KCC 감독과 강동희 동부 감독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농구의 두 레전드다.

중앙대 2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김유택 전 오리온스 코치를 더하여 '허동택 트리오'를 결성하며 중앙대와 기아자동차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대학무대 전관왕, 농구대잔치 7회 우승, 프로 원년 우승에 이르기까지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그들이 합작한 우승컵만 해도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성격이나 플레이스타일은 현역 시절부터 다소 대조적이었다. 강동희가 전형적인 포인트가드라면, 허재 감독은 슈팅가드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만능 플레이어였다. 침착하고 냉철한 강동희가 최고의 야전사령관이자 도우미였다면,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허재는 승부처를 즐길 줄 아는 해결사이자 강심장이었다.

'야전사령관' 강동희 vs. '해결사' 허재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계보를 거론할 때 항상 이름이 빠지지 않는 강동희지만, 사실 그의 농구인생은 허재라는 거물의 그늘에 가려서 내내 '2인자'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강동희 역시 득점력이나 해결사 본능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허재나 김유택 같은 걸출한 선배들과 한팀이었던 탓에 자신의 욕심을 자제해야 했던 면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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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도 강동희로 인하여 수혜를 입은 면이 적지 않았다. 대학시절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던 허재지만 강동희라는 뛰어난 백코트 파트너를 만나게 되며 리딩이나 패스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의 공격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인트가드임에도 뛰어난 득점력까지 갖췄고, 경기운영의 안정감 면에서는 오히려 허재를 능가했던 강동희의 존재는 허재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자존심이 강하로 유명한 허재 본인조차도, 인터뷰 때마다 '자신이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를 꼽는 질문에 항상 강동희를 첫손에 꼽았을 정도였다.

강동희가 허재 못지않게 한 팀의 에이스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다는 것은 1997년 프로무대에서 입증됐다. 당시 프로가 출범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이 등장했고, 기존 토종 슈터나 빅맨들보다는, 외국인 선수들과 효과적으로 2대 2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는 포인트가드들의 주가가 치솟았다. 강동희는 이해 리그 도움과 가로채기 2관왕을 수상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고, 소속팀의 정규리그-챔피언전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허재는 프로 개막을 앞두고 벌어진 음주운전 파문과 최인선 감독과의 갈등으로 팀 내 입지가 줄어들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강동희가 허재를 제치고 팀의 에이스로 부상한 유일한 시즌이었다.

절치부심한 허재는 이듬해 1998년 화려하게 부활하며 팀을 2년 연속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올려놓았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부상 투혼을 불태우며 시리즈 내내 발군의 활약을 펼친 허재는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우승팀에서 MVP가 배출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준우승 직후 허재는 트레이드를 자처하며 TG 삼보(현 원주 동부)로 이적하게 되어 허재와 강동희의 10년 한솥밥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성인무대에 데뷔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농구인생에 적으로 대면하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두 선수 모두 소속팀이 한동안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큰 무대에서 만날 기회는 없었다.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플레이오프 맞대결은 02~03시즌에 나왔다. 허재 감독이 플레잉코치로 활약했던 원주 TG와 강동희-김영만이 버틴 창원 LG가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것. 당시 허재의 TG는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LG에 3승 2패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챔프전에 올라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2004년 나란히 은퇴한... 지도자의 길로 제2의 농구인생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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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나란히 은퇴한 두 사람은 지도자의 길에 접어들며 제2의 농구인생을 시작했다. 프로 선수 출신 1호 감독인 허재는 은퇴한 지 1년 만에 전주 KCC의 2대 지휘봉을 잡으며 코치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강동희는 LG와 동부 코치를 거쳐 2009년 KT로 자리를 옮긴 전창진 감독의 뒤를 이어 동부의 5대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허재 감독은 2009년 KCC의 네 번째 우승을 이끌며 프로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 강동희 감독은 취임 첫해 4강에 이어 이듬해 챔프전 진출에 성공하며 젊은 나이에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현역 시절의 성격과 플레이스타일을 반영하듯, 두 감독이 이끌고 있는 팀컬러도 대조적이다. 안정된 수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동부가 '냉정'이라면, 화끈한 공격력과 스피디한 팀컬러를 자랑하는 KCC는 '열정'이다. 강동희 감독이 젊은 사령탑답지 않게 침착하고 신중하다면, 허재 감독은 선이 굵고 과감한 경기운영이 돋보인다.

두 감독은 농구를 떠나서 사적으로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 경기 때마다 홈-원정 라커룸을 스스럼 없이 드나들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소주 한잔을 주고받으며 마음의 고민까지 털어놓을 만큼 막역한 사이다. 개성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학연이나 서열을 떠나 오랜 시간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운동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이기에 가능했다.

현역 시절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었던 두 감독이 지도자로서도 눈부신 성공 가도를 달리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농구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만하다. 두 감독의 오랜 우정만큼이나 멋진 승부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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