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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
 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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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직후 2~3일 정도는 거의 패닉이었죠. 동포들이 트위터로 안부를 주고받는 걸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던 11일 오후 김명준(41)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2007년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해방 이후 일본 땅에서 한국의 역사와 말, 문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조선학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 인물이다.  

김 감독은 현재 '몽당연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몽당연필은 '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재일동포 및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조선학교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배우 권해효, 가수 이지상·안치환씨가 몽당연필 공동대표를 맡았다.

"국적?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는 해줘야죠"

이날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에 있는 노래패 '우리나라' 사무실로 김 감독을 찾아갔을 때, 김 감독은 '몽당연필' 관련 작업으로 분주해 보였다.

"대지진 발생 후 (한국에서) 모금 운동이 많이 벌어졌지만 정작 조선학교를 비롯한 동포 사회의 문제는 많이 다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학교 등과 인연을 맺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답답해서 몽당연필로 뭉친 겁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우리 취지입니다."

김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조선학교의 지진 피해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재일동포들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재일동포들의 삶에 대해 배웠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조선학교를 돕자'는 이야기를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북한=빨갱이를 돕자'는 걸로 보는 의식의 흐름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은 이 대목에서 한 방송사의 보도에 대해 말했다.

"지진 피해를 겪은 도호쿠 조선학교 지역을 취재한 것이었어요. 총련 동포들이 보낸 구호물자를 (도호쿠 지역 동포들이) 일본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을 내보내면서 민족학교라고만 표기하고 '총련, 조선학교'라는 언급은 뺐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김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국적이 어디인지는 (조선)학교 안에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조선학교에 오는 건 일본에서 우리 말과 문화, 그리고 민족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남한 혹은 북한과 가깝기 때문에 택한다'는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2002년 제가 도쿄 조선학교에 처음 갔을 때, 어느 방송사 기자가 학생들에게 묻더군요. 조선적(재일동포 가운데 해방 후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택하지도,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인지, 한국 국적인지, (귀화해) 일본 국적인지. 그건 (조선)학교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국적은 선생님들만 알고 참고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국적이 어디냐를 보지만, 동포들은 조선 사람이냐 아니냐를 봅니다."

아이들의 국적을 따지는 데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조선학교에는 한국 국적 아이들이 절반이 넘고 일본에 귀화한 재일동포 아이들도 다니고 있다"(몽당연필 제안서).

"우리는 국적을 보지만 동포들은 조선 사람인지 아닌지를 봅니다"

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이 미야기현 센다이시 '도후쿠 조선초중급학교'의 사진을 보여주며 피해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이 미야기현 센다이시 '도후쿠 조선초중급학교'의 사진을 보여주며 피해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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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40개가 넘던 조선학교는 현재 80여 곳 정도가 남아 있다. 그중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이번 대지진이 발생한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도호쿠 조선학교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건물이 완전히 휘었어요. 교실 바닥이 기울어져, 공을 놓으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굴러갑니다. 벽의 타일도 떨어지고 텔레비전들도 파손됐어요. 교원실(교무실) 벽도 무너졌고 기숙사도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측량사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요주의: 출입 제한'이라는 표시를 붙이고 갔을 정도입니다." (도호쿠 조선학교의 자세한 피해 상황은 몽당연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김 감독은 "기숙사 중에서 그나마 성한 곳을 임시로 교원실과 교실로 쓰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인 데다 파손 정도가 심각"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 형편이라며, "(새 건물의) 기둥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 몽당연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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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 몽당연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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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조선학교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조선학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김 감독은 "건물 자체의 파손 문제보다는 원전 폭발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조선학교에서는 피폭 위험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친척집으로 대피한 이들이 생겨나면서 4월 3일 23명의 학생 중 15명만 등교했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또한 김 감독은 "원전 폭발로 위험한 상황인데도 조선학교 선생님 등 10여 명은 학교에 남았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동포들이 조선학교로 보내오는 구호품을 받아, 각자의 집에 머물고 있던 동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이바라키현의 조선학교도 여진 위험을 안고 있다. 이어 김 감독은 "지진으로 손상된 도쿄 조선학교의 강당 천장도 수리해야 한다"면서도 "미야기현과 후쿠시마현 쪽에 살던 동포들 중 기반을 잃은 이들이 많고 도호쿠 조선학교가 가장 많이 파손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쪽을 우선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안전 문제를 우려해 '요주의: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안전 문제를 우려해 '요주의: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 몽당연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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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학교 건물... 기둥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습니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주춤하긴 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대지진 이후 일본을 돕기 위한 성금을 냈다. 대한적십자사에 모인 금액만도 371억 원이 넘는다(10일 오후 6시 기준). 이렇게 모인 성금은 일본 정부와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이재민 지원에 쓰이고 있다.

김 감독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 성금을 낸 마음이 너무나 좋게 보인다, 인류애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도와야 한다"며 "일본 국민들에게 골고루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제때에,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김 감독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조선학교에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다만 조선학교 건물을 공식 피난처로 지정해 일본 사람들도 그곳에 머물게 되면서 일본 정부의 지원 물자가 들어온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몽당연필 측은 "한국 정부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총련 동포들 및 학교를 잃은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구호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김 감독은 그러한 소식이 아직 일본 정부로부터도 들려오지 않고 있으며, 이와 달리 총련은 북한이 지원한 50만 달러의 구호자금을 총련 소속이든, 민단 소속이든, 일본으로 귀화했든 상관없이 재일동포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일본 지진 피해 성금 모금 현황을 알리는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화면.
 일본 지진 피해 성금 모금 현황을 알리는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화면.
ⓒ 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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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부 지자체, 대지진 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김 감독은 "일본에 여러 외국인 학교가 있는데 만약 지원 대상에서 조선학교만 뺀다면 국제 문제가 될 것이고, 일본 정부도 이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의 일부 지자체의 움직임을 우려했다.

"일본의 고교 학비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만 제외됐잖아요? 그 문제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극우 성향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작년에) 깃발을 들었어요. '(조선학교에 대한) 지자체 보조금 지급을 동결(중단)하겠다'고. 도쿄에 이어 오사카와 지바도 보조금을 동결했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번 대지진 후 미야기와 사이타마에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동결했다는 거예요. 이에 대해 항의하니 두 가지 이유를 댔다고 하더군요. 지진 때문에 조선학교의 보조금 문제를 논의할 정신도 없고 돈도 없다, 그리고 현(縣)민 정서가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더군요."

김 감독은 일본 지자체에서 근거로 제시한 '현민(주민) 정서'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지진 발생 후 각지의 재일동포들이 (미야기현) 도호쿠 조선학교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지원 물자를 보냈어요. 동포들은 그 물자를 주위에 있던 일본 사람들과 나눴고요. 동포들 본인들은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서, 주먹밥 수백 개를 만들어 일본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 사람들도 감동했다고 하고요. 그런데도 미야기현 당국이 '현민 정서'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이와 관련, 김 감독은 조선학교가 세워진 이래 일본 당국의 냉대와 핍박이 이어졌지만 이것만으로 조선학교와 일본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60여 년간 조선학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동포들의 힘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지원 활동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선학교 어느 곳을 가든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일본인 모임'이 있습니다. 이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관공서의 차별에 항의하며 학교를 도왔습니다."

또한 김 감독은 "일본 정부나 북한과 별개로, 한국에서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을 기억하고 우리 몫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닙니다. 재일동포들, (그동안 온갖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이번에도)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는 분들입니다. 중요한 건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 한국에서도 이렇게 나섰구나. 우리가 그동안 (한국의 역사와 말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길이 그릇되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김 감독은 "영화 <우리학교>를 본 많은 분들이 '(상황을) 몰랐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이번에도 그때처럼 상황을 공감하는 이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조선학교를 생각해주세요"

몽당연필은 이처럼 "조선학교와 재일교포를 기억하기 위한"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 매달 각각 1번씩 콘서트와 문화 행사를 열어 "한 달에 2번 정도는 조선학교를 생각할 수 있게" 할 예정이며, 이러한 활동을 최소한 1년은 이어갈 계획이다. 첫 번째 콘서트는 27일(수) 오후 8시 서울 중구의 웰컴시어터에서 열린다. 몽당연필은 5월부터는 매달 세 번째 수요일 오후 8시에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아울러 몽당연필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도 이미 시작했다. 11일 오전까지 약 520만 원이 모였다고 한다. 몽당연필은 행사 수익금과 성금을 모아 일본에 있는 비영리단체인 '우리학교'에 직접 전할 예정이다. '우리학교'는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만든 단체로 2008년 7월 1일 발족했다.

인터뷰 내내 궁금했던 점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감독 김명준에게 '우리학교'(조선학교)란 어떤 존재일까.

"제 결혼식을 <우리학교>를 찍은 홋카이도 조선학교 강당에서 했어요. 동포들이 재일교포 식으로 결혼식을 준비해주셨죠. 저와 우리학교, 그리고 동포들은 그런 관계입니다. 가족이죠. 어느 곳에 있는 (조선)학교를 가든 고향에 간 느낌이 들어요. 동포들은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친척 같고요.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겪는 느낌이죠. (조선)학교에 갔다 오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덧붙이는 글 | *트위터 @penMD 몽당연필
*페이스북 www.facebook.com/mongdang



태그:#조선학교, #일본 대지진, #우리학교, #몽당연필,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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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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