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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가족들이 텍사스에서 제주를 방문했다.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신부, 신랑, 신랑의 형, 신랑의 아버지, 신랑의 아저씨 등이다. 이들은 피로연에 함께 하면서 내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 신랑의 가족들 신랑의 가족들이 텍사스에서 제주를 방문했다.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신부, 신랑, 신랑의 형, 신랑의 아버지, 신랑의 아저씨 등이다. 이들은 피로연에 함께 하면서 내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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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고향 마을이 종일 시끌벅적했다. 결혼 잔치가 열리는데,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잔치에 온 아주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신랑 얼굴이 영화에서 본 미남배우와 닮았다"며 부러워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만은 아닌 듯했다.

3남 1녀를 둔 당숙이 첫딸 여진이를 시집보냈다. 태어나서 줄곧 고향에 살면서, 조상 묘 벌초를 비롯하여 집안의 많은 대소사를 도맡아 왔던 당숙이다. 지난 2006년에 마을 이장으로 봉사할 당시, 위미가 해군기지 문제로 혼란에 휩싸이자 제주도청 앞에서 삭발로 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랬던 당숙이 지난 시절의 열정을 뒤로하고, 사위를 맞아들였다. 처음으로 사위를 맞아들이는 당숙은 내내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그 사위가 예사롭지가 않다. 제주대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로 근무하는 미국인 청년 라이언 브라운(Ryan Brown)을 사위로 맞은 것이다. 가까운 아시아 이웃나라에서 며느리를 맞는 경우는 있었지만,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 사위를 맞아들이는 건 처음인지라 친지들과 이웃들은 모든 게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하지만, 원래 잔치란 좀 정신이 없어야 제 맛인 법 아닌가?

시가를 좋아했다. 필자가 "체 게바라를 닮았다"고 말하자,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 바깥사돈 릭 브라운(Rick Brown)씨 시가를 좋아했다. 필자가 "체 게바라를 닮았다"고 말하자,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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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온 사돈들은 윷놀이를 재미있게 관람했다.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며, 룰을 설명하는 책을 소개해달라는데..
▲ 윷놀이 외국에서 온 사돈들은 윷놀이를 재미있게 관람했다.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며, 룰을 설명하는 책을 소개해달라는데..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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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전통으로는 혼례를 치를 때 피로연을 먼저 치르고 나서 다음날 예식을 올린다. 신부의 친족과 이웃이 모여 피로연을 여는 날, 예비사돈 가족이 멀리 미국 텍사스에서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스무 시간의 비행 끝에 위미를 찾아왔다.

제주의 결혼 풍습이 낯설만도 한데, 멀리서 온 손님들은 모든 게 즐겁다고만 했다. 그중에서도 바깥사돈 되시는 릭 브라운(Rick Brown)씨가 가장 사교에 적극적이었다. 브라운씨는 "한국 사람들의 웃는 얼굴,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모습은 미국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라며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가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필자가 "체 게바라를 닮았다"고 말하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여 하객들을 즐겁게 했다.

릭 브라운씨의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일본과 중국 해안 전투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릭 브라운씨는 가족들의 사진과 이력이 담긴 스토리북을 가지고 와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비록 국적은 달라도 자기 가문을 사돈가에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손수 제작한 것으로 보였다.

미국에서 온 사돈님이 가족의 내력을 담은 스토리북을 보여줬다. 릭 브라운의 아버지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일본과 중국 해안에서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스토리북 미국에서 온 사돈님이 가족의 내력을 담은 스토리북을 보여줬다. 릭 브라운의 아버지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일본과 중국 해안에서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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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잔치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놀이가 있다. 멍석 위에서 사기로 된 술잔에 윷가락을 넣고 던지는 종지윷(방언으로 '넉동뱅이'라고 한다)이다. 미국인들의 눈에는 윷놀이가 주사위놀이와 체스경기의 혼합형으로 보였는가보다. 게임을 해보고 싶은데 "너무나 전략적인(so strategic)" 경기라서 더 배운 후에 해야겠다며, 배울 수 있는 책을 보여 달라는데, 글쎄 그런 게 있기는 한가.

결혼식은 드라마 <아이리스>(IRIS)에서 배우 이병현과 김태희가 제주도 여행 중 생사의 길에서 서로 이별했던 등대가 보이는 해변에서 치렀다. 신랑과 그 가족 및 친구들이 미국인임을 감안하여, 한국인과 미국인 두 명의 사회자가 예식을 진행했고, 신랑신부의 혼인서약도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한번 씩 읽었다.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I promise to love and respect you through the good times and in the bad."

신랑과 신부가 반지를 교환하고 있다. 멀리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던 등대가 보인다.
▲ 결혼식 신랑과 신부가 반지를 교환하고 있다. 멀리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던 등대가 보인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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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가족들이 결혼식이 진행되는 과정을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신부의 가족들 신부의 가족들이 결혼식이 진행되는 과정을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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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돈 린다 브라운 여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결혼식이 열리기 전 이들은 이 해안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 신랑의 가족들 안사돈 린다 브라운 여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결혼식이 열리기 전 이들은 이 해안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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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결혼한 부부는 언제 미국으로 갈지 정하지도 않은 채 한국에서 계속 생활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으로 가기에는 신랑이 제주도를 너무도 좋아한다고 했다. 세상 어딜 간들 이만한 데가 있겠나.

며느리에게 한복을 선물로 받아서 좋아하시던 우리 안사돈 린다 브라운(Linda Brown) 여사, 친구들에게 결혼식 자랑해야 한다며 꼭 이메일로 사진 보내달라던 바깥사돈 릭 브라운씨,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예쁜 아내와 딸과 잠시 이별한 것을 아쉬워하던 사형 대런 브라운(Darren Brown)씨, 모두 안녕히 돌아가시고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태그:#국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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