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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동양화 같은 남해의 '사 량도 지리산' 섬 산행

 

우리나라 남해안의 미항(美港), 그래서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경남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 "지리산 옥녀봉 291m"에는 "비정한 패륜 아버지와 그 딸 옥녀"에 대한 기막힌 전설이 "사 량도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며 유래하여 내려온다.

 

▲ 사량도 지리산 사량도 지리산 산행길에 가파른 암릉 구간을 오르 내리며 산행하는 아름다운 남해 섬산행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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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량도 옥녀봉 설화

통영과 사천의 바다 중간에 있는 사 량 도는 옛날부터 혼례식에 대례(大禮)를 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는데, 대례를 하면 반드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 온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 섬에는 홀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는데, 딸은 차츰 예쁘게 자라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처녀가 되어, 사람들은 그녀를 모두 옥녀(玉女)라고 불렀다. 그런데 딸은 키워 오던 홀아비가 아름다운 딸에게 욕정을 품게 되었다. 옥녀는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좋은 말로 진정시키며 그날그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바람이 몹시 쳤다. 욕정에 눈이 뒤집힌 아버지가 딸의 방으로 뛰어들어가니, 옥녀는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로써 호소하며 말하기를, "아버지, 사람이라면 이러실 수가 없습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차라리 소녀를 죽여 주십시오." 하면서 항거하였으나 욕정에 휩싸인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참다못한 옥녀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아버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소녀도 사람이라면 아버지께 어찌 몸을 바치겠습니까? 정히 아버지가 이러하시면 소녀가 저 산 위에 올라 있겠으니 아버지는 등에 소덕석을 쓰고 기어서 올라오시면 소가 된 마음으로 소원을 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울면서 말했다.

 

딸이 허락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아버지는 딸을 산 위로 보내고 자신은 소덕석을 쓰고 엉금엉금 소처럼 기어 산에 올랐다. "소처럼 기어서까지 나를 탐내시지는 않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으로 산 위에 서 있던 옥녀는 엉금엉금 기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자 더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예쁜 옥녀의 모습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싸늘하게 죽고 말았으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울면서 용서를 빌었으나, 죽은 옥녀는 살아나지 않았다. 이후에 이곳 사람들은 대례를 치러 보지 못하고 죽은 옥녀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행해지는 혼례식에는 대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으며 옥녀가 죽은 산을 "옥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온라인 자료 편집)

필자도 이 전설의 글을 읽고 다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도저히 전설의 주인공 옥녀 아비 행실이 용납되지 않아 옥녀의 그 아픈 전설의 사연이 있는 사 량도 지리산 옥녀봉을 2003년 3월 처음으로 산행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완전히 산행 초보 시절이 되어 감히 코앞에 철모처럼 둥근 모습의 봉우리로 가파르게 우뚝 선 암벽 앞에 등정을 포기하고 우회했어야 했다.

 

그리고 2005년 3월에 또다시 사 량도 옥녀봉에 2번째 산행을 감행하였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얼마나 억수같이 쏟아지는지…. 산악회에서 버스 한 대로 지리산을 찾은 회원님들이 대부분 산행을 포기하는 바람에 나 혼자 그 비 다 맞고 거의 산악 마라톤 수준으로 옥녀봉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산행 포기한 일행들이 지루하게 기다릴 생각에 그야말로 "다~다다다다다다" 달리는 산행을 하고 보니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처럼 가족 여행 삼아 필자의 3남매 부부, 그리고 외사촌 누이동생들과 친구, 늘 나와 함께 산행을 하는 일요산행 회원님들과 함께 세 번째 사 량도 지리산 산행길에 나서려고 (2011.4.1.23:00) 옛 서울운동장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에서 출발하는 전세 버스에 몸을 싫었다. 5시간 조금 더 달려 '삼천포 어시장'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새벽 4시 반이 채 안 되었다.

 

솔직히 나야 별 것 아니지만, 일행들에겐 들머리 초입부터 가파르게 고도를 곧추세운 산세도 걸리고 무엇보다도 산행구간 전체가 암릉구간으로 이어져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낭패를 볼 것이 두렵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평소 내 산행 스타일대로 하지 못하고 앞으로 갔다. 뒤로 왔다 반복 산행을 하는 덕에 이번 지리산 산행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간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청정해역 남해가 되어 선명한 조망을 기대하였으나 이곳도 혹시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 영향인지 아니면 해무 현상인지 근거리는 그만한데 원거리 조망은 희뿌연 모습이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쪽빛 바다 모습을 볼 수 없어 답답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와 여동생들이 너무 힘들어 후미에서 너무 오래 시간 지체하여 일행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걱정을 했는데 그런대로 대열에 크게 떨어지지 않고 산행을 이어가며 지리산 아름다운 풍경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을 한다.

 

그래도 문제는 어떤 구간은 하도 고도가 가파르고 암릉 구간이 험하여 아내가 우회 산행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내 산행 스타일에 우회란 산행은 내키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다행이도 연산동 대장과 남동도, 그리고 매제가 모두 아내들의 안전 산행을 도우려 철저히 "그림자 경호"를 하며 곁에서 근접 산행하고 있으니 설마 나의 아내 안전을 외면 않겠지 생각을 하며 나는 내 길을 간다.

 

그리고 한순간도 한눈을 팔아서는 되지 않는 칼바위 능선도 수직 암벽 구간도 모두 빼지 않고 (지리산 398m 불모산 399m 옥녀봉 281m) 열심히 오르며 어언 '내 나이 어언 6학년 8반'인데 언제 다시 또 "사 량도 지리산"에 올 수 있으랴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남해와 사 량도 지리산 풍경을 열심히 디카에 담으며 간다.

 

참고로 사 량도 지리산 산행은 중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코스로 오르든 길은 오직 한 길로 이어지고 있어 혹시 코스가 헷갈려 낭패를 보는 일은 거의 드물다. 또한, 중간중간 곳곳에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 세운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 산행 초보가 아닌 사람이면 대부분 완주 산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량도 지리산은 전 구간이 암릉 코스가 되어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며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수직 암벽 (20여 미터) 2개 코스에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물론 우회 코스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국외 (중국, 일본, 기타 여러 나라) 산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산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산이 가장 아름답고 훨씬 더 정감이 가는 것 같아 더 좋아한다. 특히 사 량도 지리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간지점에 있으며, 어찌 보면 마치 동양화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절경이 너무너무 맘에 쏙 든다. 그래서 주말이면 각지에서 몰려드는 등산객으로 "사 량도 지리산"은 만원을 이룬다.

 

그렇지 않아도 바위 앞에만 서면 겁이 많은 아내가 일행들과 우회하여 먼저 하산을 하였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오른 옥녀봉에서 '패륜의 옥녀 아비의 욕정으로 사랑하는 딸이 몸을 던졌다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내에게 전화하니 벌써 대포항 선착장에 도착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옥녀봉 스릴만점 줄 사다리를 내려와 우리를 싣고 떠날 배 출항 시간 (낮 12시 30분)에 맞추어 하산 완료하고 나니 15분여 여유가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시 배를 타고 50여 분을 달려 삼천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20분이 다 되었다. 우리는 쉽지 않게 다녀온 아름다운 "사 량도 지리산" 낭만 산행의 뒤풀이로 삼천포 어시장에서 싱싱한 회와 함께 이슬 이도 몇 잔 나누며 사 량도 지리산 안전산행 건배와 산행길 뒷이야기를 나누며 오후 3시 조금 지나 귀경길에 오른다.

 

▲ 한폭의 동양화 같은 사량도 지리산 섬산행 한폭의 동양화 같은 사량도 지리산 섬산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동영상으로 편집 하였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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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량도 , #지리산, #불모산, #옥녀봉, #가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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