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태릉 빙상장에서 인터뷰 중인 김연아 선수.

3월 31일 태릉 빙상장에서 인터뷰 중인 김연아 선수. ⓒ 곽진성


4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011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번 대회에서 세계 피겨팬들의 관심은 '피겨여왕' 김연아(21) 선수에게 쏠려 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 여자싱글에서 빛나는 금메달을 획득한 그녀가, 1년여 만에 은반 위 경쟁 무대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모스크바의 겨울처럼 길었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녹이는 봄의 기운이 피겨퀸 김연아의 귀환을 알리고 있다. 많은 피겨팬들은 그녀가 1년여의 국제무대 공백을 딛고 예술적인 피겨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믿고 있다.

취재진을 대상으로 한 김연아 선수의 연습장면 공개(3월 22일, 31일)는 '비밀의 화원'처럼 가려져 있던 그녀의 현재 기량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 김연아 선수의 합류로 들뜬 어린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이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봄날의 태릉에서 꿈을 만들어가는 김연아 선수와 어린 국가대표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기에 담고자 한다. 

 2007년 겨울에 만난 태릉의 피겨 국가대표들(왼쪽부터 김연아, 김수진, 최지은, 김민석 선수).

2007년 겨울에 만난 태릉의 피겨 국가대표들(왼쪽부터 김연아, 김수진, 최지은, 김민석 선수). ⓒ 신동민, 곽진성


다시 찾은 태릉, 다시 만난 피겨퀸

3월 22일, 김연아 선수의 연습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 노원구에 있는 태릉 빙상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2007년 겨울 태릉에서의 작은 추억 하나가 스친 듯 떠올랐다.

국가대표 피겨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던 난 '연아, 민석, 수진, 지은' 4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일주일이란 긴 시간동안 국가대표들의 모습을 세세히 기록하며 즐거운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추억이 많다. 그 시기에 허리 부상으로 고생하던 김연아 선수였지만, 취재 당시 그녀는 부상 통증이 사라져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또 김연아 선수와 어머니의 카세트를 들어주며 인터뷰를 따낸 일은 잊히지 않는 기억의 편린이 됐다.

당시 꼬마(?)였던 김민석 선수와는 취재 내내 '인생토론(?)'을 하며 친해졌다. 또 최지은 선수의 제안으로 국가대표 4인의 특별한 포즈를 사진에 담은 일, 유쾌한 김수진 선수 덕분에 훈련장이 밝아진 일, 당시 겪었던 소소한 일들은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다.

선수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인터뷰의 한 부분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어쩌면 지금은 잊혀진 추억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겐 많은 것을 배우게 한 순간이었다. 열악했던 태릉 빙상장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던 4남매, 아니 4남매 같이 서로 친했던 국가대표들의 모습에는 가슴을 뭉클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4년 전 태릉 빙상장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선수들이 제대로 훈련하기조차 힘들었다.

4년 전 태릉 빙상장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선수들이 제대로 훈련하기조차 힘들었다. ⓒ 신동민, 곽진성


북극해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강추위를 묵묵히 견디며, 딱딱한 빙질로 인한 부상 위험을 감수하며 묵묵히 꿈을 키우던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들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웠고 또한 미안했다.

피겨 불모지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선수들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올림픽 챔피언'과 '세계피겨선수권 우승자'가 나온 것은 그저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피겨퀸 김연아의 노력 덕분에 이뤄질 수 없을 것 같던 '올림픽 피겨 금메달'의 꿈은 현실로 이뤄졌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올림픽 피겨 챔피언'과 '세계피겨선수권 챔피언'을 배출한 특별한 국가로 기록되게 됐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이 1년여 지났지만, 그때의 감동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별로 남았다.

 "올림픽챔피언 김연아" 펼침막이 걸려 있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그 모습이 이채롭다.

"올림픽챔피언 김연아" 펼침막이 걸려 있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그 모습이 이채롭다. ⓒ 곽진성


봄날의 태릉엔 '연아'와 '동생들'이 산다

그래서일까. 3월 22일 김연아 선수의 연습현장을 찾아가는 순간에는, 4년 전처럼 다시금 가슴이 떨렸다. 세계 피겨사의 한 획을 긋는 챔피언으로 성장한 그녀의 연기는 어떻게 발전했을지 기대감이 컸다.

오전 10시 20분경. 피겨퀸 김연아의 올해 첫 연습 현장 공개(11시)를 앞두고 태릉에는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수준 높은 피겨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현장을 많이 찾았다. '흥미로운' 기사를 쓰는 유명 기자들을 눈으로 직접 보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몇몇 분에게 "좋은 피겨 기사 잘 읽고 있어요"라고 인사를 할까 하다가, 겸연쩍은 행동 같아 마음으로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나도 언젠간 저런 좋은 기사를 쓰겠다 다짐하면서.

김연아 선수가 등장할 시간이 점차 가까워오자, 빙상장에 모인 많은 취재진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현장을 지켰다. 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김 선수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순간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었다. 태릉 빙상장에서 연습에 임하는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대한민국 남자 피겨의 자존심 김민석 선수. 오랜만의 해후가 반가워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대한민국 남자 피겨의 자존심 김민석 선수. 오랜만의 해후가 반가워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 곽진성

한국 피겨의 미래 곽민정 선수를 비롯해, 든든한 기대주 박소연 선수였다. 깜짝 놀라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들 사이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4년 전 태릉에서 만난 김민석 선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만남이었지만, 여전히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김민석 선수가 고마웠다.

"앗, 안녕하세요."
"우왓, 반가워! 민석아!"

2007년에 처음 만났을 땐 내 어깨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김민석 선수는 2011년 잘생긴 외모가 인상적인 대한민국 남자 피겨의 대들보로 성장해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의 해후는 내 마음을 더욱 밝게 했다.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김연아, 곽민정 선수와 함께 출전하는 김민석 선수의 선전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를 책임진 국가대표들은 '김연아의 귀환'을 앞두고 먼저 훈련에 임했다. 어린 국가대표 선수들의 연기를 조용히 감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의 피겨 미래는 참 밝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 비해 여건은 많이 부족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피겨 전용 연습장 하나 없는 것이 올림픽 피겨 챔피언을 배출한 국가의, 그리고 G20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이다. 추위 속 부상 위험에 시달리는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대한민국 스포츠를 책임진 분들의 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피겨선수들이 따뜻한 환경에서 마음껏 훈련하고 좀 더 부드러운 빙질에서 훈련할 수 있는 작은 연습장 하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러시아 총리처럼 피겨에 애정을 갖고 지원하는, 또 일본 같이 국가적으로 수많은 예산을 들여 최신식의 피겨 전용 링크장을 건설하는 꿈은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선수들이 따뜻한 환경 속에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피겨선수로 발돋움하는 기본적인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월 22일. 연습을 위해 빙상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연아 선수.

3월 22일. 연습을 위해 빙상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연아 선수. ⓒ 곽진성


김연아가 온다. 예술이 온다

10시 58분. 그런 아쉬움에 멍해져, 태릉 빙상장 한구석에 앉아 있는데 갑작스레 어느 취재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김연아가) 온다!"

그 소리와 함께 피겨여왕 김연아가 링크장 안으로 등장한다. 목도리를 두르고, 당당한 모습으로 걷는 김연아 선수를 향해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쉴 틈 없이 터졌다. 이런 카메라 세례가 부담될 법도 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은반 위로 들어가 연습 채비를 마친다. 유유히 은반 위를 유영하는 김연아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다.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피겨여왕!'

그리고 다가온 약속의 시간 11시. 드디어 김연아의 새 쇼트 프로그램 '지젤'의 안무가 세상 밖으로 첫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태릉 빙상장에서 본 김연아 선수.

태릉 빙상장에서 본 김연아 선수.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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