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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칠 편지를 점검하고 있는 남자.
▲ 우체국 부칠 편지를 점검하고 있는 남자.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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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예 없는 것 맞나요?"
"지금 방이 두 개 있긴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예약을 한 룸입니다. 체크인을 좀 늦게 하는 건지 어쩐지 아직 오진 않았네요. 근데 어차피 이미 예약을 해놓은 거라. 네. 없네요. 저쪽에 보면 YMCA가 있을 거예요. 거기로 가봐요."

대수롭지 않게 YWCA관리자는 말했지만, 난 휘청~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오후 8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거기 가서도 방이 없으면 결국 아까 오면서 본, 번쩍거리는 값비싼 호텔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일정 자체가 예정보다 계속 길어지고 있기에 예상금액보다 비용도 증가하고 있었으므로 값비싼 호텔에 묵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이 곳에 방이 없다면 YMCA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다르에살렘에 도착한 뒤로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아직 방도 못 잡았다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글로벌 영국기업 바클레이즈 은행
▲ 영국연방의 일원인 탄자니아 글로벌 영국기업 바클레이즈 은행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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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다르에살렘까지 15시간 이상을 버스에 있었더니 몸도 힘들고, 더구나 말이 다른 곳보다 더 안 통하는 탄자니아였다. 역시 스와힐리 문화의 자부심이 있는 나라인 만큼 국어가 스와힐리어라서 영어의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다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오기 전, 한두 달 동안 콩고 출신 선생님에게 배운 스와힐리어로는 식당에서 주문 정도나 할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람들이랑 수다를 떨지 못하니, 여정 자체가 더 길고, 힘든 것은 당연지사였다.

제일 저렴한 이 YWCA에 방이 없다니 기운이 쭉 빠짐을 느끼며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오늘따라 짐은 왜 이리 무거운지, 카메라고 뭐고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은 기운이 치밀었다.

스톤타운에 위치한 카톨릭 교회.
▲ 성당 스톤타운에 위치한 카톨릭 교회.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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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였다. 현관 입구에서 자그만 체구의 동양여자가 현지인 두 명과 열심히 무언가를 얘기중이었다. 설마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양인 아닌가. 탄자니아에 와서 처음 본 동양인이라 그런지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한국말로.

"저어기… 실례지만 한국 분이신가요?"
"아… 네. 잠시만요."

잠비아까지 잇는 동아프리카 허브 역할을 하는 타자라 기차.
▲ Tazara 기차역 잠비아까지 잇는 동아프리카 허브 역할을 하는 타자라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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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다시 열심히 그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얘기를 마치더니,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아, 한국분이신가요? 여행 오셨어요?"

등 뒤에 맨 커다란 배낭에 눈길을 주며 그녀는 나에게 덧붙여 물었다.

"방은 구하신 거예요?"

"아, 그게…. 버스가 좀 늦게 도착해서 헤매다 왔는데 이미 예약이 다 찼다네요. 방이 두 개 남았는데, 다른 사람이 예약을 했다나봐요. 낭패네요. YMCA를 가보려는 중이에요."

"아, 그 방 저희가 예약한 거예요. 지금 도착했어요. 여기 동생들은 제가 있던 마을의 동생들인데, 제가 자원봉사 기간이 끝나서 저 바래다준다고 같이 온 거에요. 방 하나에 침대 두 개니까 그럼 저랑 쓰실래요?"

잔지바르엔 각종 향신료를 생산해내는 농장들이 많이 있다.
▲ 향신료들 잔지바르엔 각종 향신료를 생산해내는 농장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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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나, 점을 볼 때 쓰이는 문장의 하나가 동쪽, 혹은 서남북쪽에서 '귀인이 나타난다'던가? 그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탄자니아 다르에살렘 현관문 밖에서 나에게 '귀인이 나타난 것'이었다.

영어악센트가 배어있는 그녀는 알고 보니 미국교포로, 탄자니아에서 3년 동안의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 상황이었고, 가족처럼 지내던 가족의 아들들, 그러니까 남동생 둘이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온 상황이었다.

매달려 있는 파인애플과 망고들
▲ 과일가게 매달려 있는 파인애플과 망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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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비슷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입은 적이 있는데, 잠깐이지만 다른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이 가진 열정과 능력을 희생하는 과정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남에게 대가 없는 손길을 건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길 위에선 이렇듯 감사한 돌발 상황이 나타나 감동을 하게 마련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것이라는, 남들이 내게 뻗쳐주는 손길을 깊이 인지하는 상황들 말이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번의 깨달음을 얻고,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여러나라에서의 인기만큼이나 탄자니아에서도 인기많은 오바마.
▲ 버락 오바마 아프리카의 여러나라에서의 인기만큼이나 탄자니아에서도 인기많은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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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탄자니아, #다르에살렘 숙박, #아프리카 여행, #아프리카 종단, #Y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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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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