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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한 까꿍이

놀이터를 활보하는 아이
▲ 걷기 시작한 까꿍이 놀이터를 활보하는 아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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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걷는게 서투른 까꿍이
▲ 주저앉는 아이 아직 걷는게 서투른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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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지난 까꿍이의 가장 큰 변화는 걸음걸이 그 자체였다. 아이는 직립보행이 인간의 본능임을 증명하려는지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했는데, 언젠가 한 번 앉다가 넘어졌는지, 앉을 때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며 조심조심해서 주저앉아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걸을 것 같은 아이. 그러나 아내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아이가 걸을 때가 되면 다 알아서 걷는다며 일부러 걸리지 않았고, 오히려 걷기 시작하면 임신한 몸으로 돌보기 더 힘들다며 스스로를 다스렸다.

걷기 시작하더니 종횡무진 누비는 아이
▲ 아빠, 나 잡아봐라 걷기 시작하더니 종횡무진 누비는 아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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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도 잠깐. 처음에는 무언가 잡고 겨우 일어서는가 싶던 아이는 어느새 그 앙증맞은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늦게 걷기 시작한 탓인지 생각보다 많이 넘어지지도 않았다. 뒤뚱뒤뚱 넘어질 듯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잡아 줄 수 없다고 다짐해보는 부모 마음.

걷기 시작한 이후 아이의 기분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기어 다닐 때와는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몸뚱이를 가누기가 쉬워졌으며, 그만큼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여기 있는가 싶으면 쏜살같이 사라져 저기서 나타나 무엇인가를 뒤적거리는 아이.

덕분에 부모의 잔소리는 늘어만 갔다. 아이는 뭐든 만지고 확인하려 했으며, 아내와 난 그와 비례해 '안 돼!'라는 단어를 연신 입에 달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아이는 뭔가 집기 전에 우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우리가 자신을 놓쳤다 싶으면 부리나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바빴다.

한 예로, 어느 날 손님들이 와서 우리 부부는 술안주로 과자 몇 봉지를 내놓았었는데 우리가 돌아가는 술잔에 정신이 팔린 사이, 까꿍이는 허겁지겁 과자 부스러기를 입안 가득 집어넣기 바빴다. 이젠 자신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만큼 지능이 발달한 것이다.

마당 있는 집으로 가자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아이
▲ 호기심 가득한 눈빛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아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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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잘 걸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만의 외계어로 나름 의사표현을 하는 까꿍이. 그런 녀석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멍 때리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아파트 창가 앞이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

내 눈에는 아이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아내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아내는 그것을 밖에 나가고 싶다는 아이의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걷기 시작했으니 나가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라는 아내. 비록 찡찡대지는 않지만 밖을 갈망하는 아이의 처연한 눈빛을 알 수 있다나, 어쨌다나.

아내의 말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내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기는 어린 시절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공간 속에서 뛰어놀았는데 당장 자기 아이는 도심 아파트 9층에 갇혀 마냥 밖만 바라보고 있으니 안쓰러울 수밖에. 또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밖에만 나오면 신 나게 돌아다녔다.

빨리 나가자는 아이
▲ 창밖 세계에 대한 호기심 빨리 나가자는 아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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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년 12월 전셋값 1천만 원 올려준 뒤로 조용하던 아내가 다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위험하지 않게 집에서 반발자국만 나가도 놀 수 있는 그런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는 아내. 그녀는 최소한 집 가까이 쉽게 갈 수 있는 공원, 도서관, 대학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서울의 부암동, 연희동 등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나가고 싶어요
▲ 창밖에 대한 호기심 나가고 싶어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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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지리산 밑 산청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서울 화곡동 마당 있는 집에서 잔디밭을 뒹굴며, 그네를 타며, 라일락 나무에 오르며 살았던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요즘 세상에는 비싼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개들도 키우면서 사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 까꿍이를, 그리고 아내 뱃속에 있는 산들이를 위해서 이사할 수는 없었다. 인천에 자리한 회사도 회사였지만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던 전셋값 폭등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작년 전셋값 인상분 1천만 원도 겨우겨우 마련했는데, 최근 알아본 주위의 전셋값은 다세대 주택도 최소 2~3천만 원 이상 올라 있었다. 서울 변두리 오류동도 2~3천만 원 인상이라면 다른 지역은 불 보듯 뻔했다. 오히려 작년 겨울 전세 계약을 갱신한 것이 운 좋았다고 할 수밖에.

결국 아내는 부동산을 다녀온 뒤 전처럼 이사 가자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았다. 여전히 바깥에만 나오면 좋아라 방방 뛰는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건 똑같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인식한바,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전세 계약이 끝날 때 전셋값이 지금과 같이 비정상적으로 인상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많은 미분양 아파트들이 장기임대주택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며.

나가는 대신 책을 읽을까?

임신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데 제약을 받던 아내는 대신 아이에게 책을 사주기 시작했다. 물론 돌 갓 지난 아이가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밖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인식하기 어렵다면 대신 책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고, 아이가 혼자 책을 볼 때면 그만큼 엄마에게 자유시간이 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아이는 책에 꽤 흥미를 보였다. 넘기는 재미 때문인지, 아니면 각 장마다 그려진 새로운 그림 때문인지 혼자 책장을 넘기면서 신기한 듯 꺅 소리도 질렀으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이다 싶으면 엄마나 아빠에게 가지고 와 읽어달라고도 요구했다. 물론 그게 읽어달라는 이야기인지 그냥 하는 행동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부모 된 입장에서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었다. 이젠 눈만 뜨면 책장에 가서 자신의 책들을 꺼내 너저분하게 펼쳐놓은 다음 한 권을 택해 읽는 기특한 아이.

부모들의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
▲ 까꿍이는 독서 중 부모들의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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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대신 가지고 놀기 바쁜 까꿍이
▲ 장난감 대신 책 읽기 대신 가지고 놀기 바쁜 까꿍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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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득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것 또한 부모의 욕심이자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만 보면 아이가 똑똑해지고 공부 잘한다는 편견에 우리가 너무 길들여 있는 건 아닌지. 차라리 그런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조금 먼 데 나가 직접 세상을 보여준다면 그게 교육상 더 옳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나만 하더라도 책을 적게 보는 편은 아니지만, 결정적일 때 정작 중요하게 작용했던 건 직접적인 경험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유아용 도서 시장이 너무나도 크게 형성되어 있는 듯했다. 단계를 다 합치면 100만 원이 넘는 전집에서부터 시작해서 5천 원 단권까지 천차만별의 유아용 도서 시장. 과연 이 모든 책들이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아님 현재 사교육에 찌들어 있는 우리 사회의 일면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물론 선택은 부모의 몫이겠지만 이렇게 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사회에서 과연 어느 부모가 유아용 도서라는 사교육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돈을 쓸데없는 곳에 쏟아 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도 유아용 도서 전집을 몇 질 사더니 더 이상의 구매를 그만두었다. 주위의 엄마들은 더 많은 책을 사서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하지만 경험상 책을 어느 정도 사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견이었다. 책이 책으로서 기능을 하다기보다는 장난감인 이상 과유불급이라는 아내. 나는 아이의 바로 옆에서 그 발육과정을 지켜보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할 뿐이다.

까꿍아. 비록 마당 있는 집에는 이사 가지 못하지만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아빠랑 꽃놀이도 하면서 좀 더 놀러다니자꾸나. 사람이 너무 책만 읽다 보면 답답해지거든. 물론 우리 사회는 너무 책을 안 읽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따뜻해진 봄에는 더 돌아다니자꾸나
▲ 직립의 본능 따뜻해진 봄에는 더 돌아다니자꾸나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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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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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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