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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젖는 섬진강

봄비가 내리니 대지가 춤을 춘다. 추운 겨울 동안 건조하고 메말랐던 대지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빗소리다. 대지는 밤새 봄비에 촉촉이 젖어 열아홉 가시내의 입술처럼 부드러워진다.

운조루에 핀 산수유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운조루에 핀 산수유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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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하얀 운해가 지리산 노고단을 휘감아 돌며 선경을 이루고 있다. 운해는 섬진강 자락을 적실 듯 춤을 추며 백운산으로 계족산으로 자유자재하며 여인의 길고 흰 저고리처럼 치렁치렁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아름답다. 이럴 때는 집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밤새 내린 비는 황사도 방사능도 거두어 내버린 듯 하늘과 산천이 말끔하다. 카메라 한 대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선다.

섬진강변의 산수유. 멀리 노고단의 운해가 섬진강으로 휘돌아 내려오고 있다.
 섬진강변의 산수유. 멀리 노고단의 운해가 섬진강으로 휘돌아 내려오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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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는 매화며,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어디가 천국이더냐? 가슴 가득 풋풋하게 밀려오는 꽃 냄새, 푸른 섬진강을 날아가는 새들, 들 섶에 겨우내 웅크렸던 풀들은 봄비에 젖은 채 용수철처럼 고개를 디밀어 내고 있다. 스프링! 봄비는 만물에게 축복을 내려 생명을 스프링처럼 솟아나게 한다.

산수유 물결 위로 지리산 왕시루봉과 노고단으로 흘러 내려가는 운해가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빗물을 머금은 산수유의 샛노란 입술이 터질 것만 같다. 곧 떨어져 내릴 듯 물방울이 보석처럼 아름답다. 과연 자연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어 낸다. 서울의 수많은 편리한 것들을 버리고 왔지만, 그 편리한 것들이 어디 자연이 주는 혜택에 비기랴.

산수유애 맺힌 물방울이 수정처럼 아름답다.
 산수유애 맺힌 물방울이 수정처럼 아름답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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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의 운해는 왕시봉을 타고 내려와 토지면으로 내려온다. 마치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운해는 토지면 오미리 마을 쪽으로 흘러 내려와 섬진강으로 휘돌아치며 깔린다. 그곳은 남한의 3대 명당의 하나인 운조루가 있는 곳이다. 바람이 머무는 곳, 운조루(雲鳥樓). 나는 섬진강을 가로질러 운조루로 차를 몰았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雲鳥樓)는 '구름 속의 새'란 뜻으로 '숨어 사는 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토지면'이라는 이름은 어쩐지 사람을 끄는 지명이다. '오미리(五美里)'라는 이름도 아름답다. 현재의 토지면(土旨面) 지명은 본래 금가락지를 토해냈다는 토지면(吐指面)이었다고 한다.

운조루가 위치한 오미리 마을
 운조루가 위치한 오미리 마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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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五美里)는 월명산, 방방산, 오봉산, 계족산, 섬진강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이르는 것으로 내죽(內竹), 하죽(下竹), 오미(五美)의 세 마을을 아우른 이름이다. 오미리 마을 앞에 당도하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멀리 노고단을 두르고 있는 운해가 신비롭게 보인다. 노고단은 베일에 가린 듯 오락가락 숨바꼭질을 한다.

운조루 앞에 주차를 하고 내려서니 담 너머로 노란 산수유 꽃이 수줍은 듯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운조루 앞 개울가에도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행랑채 앞에 뜰에는 노란 복수초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운조루 입구 뜰에 핀 복수초
 운조루 입구 뜰에 핀 복수초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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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름다운 꽃이여!
운조루에 봄이 온 것이다.
산동면의 산수유 마을이 온통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은 한 폭의 산수화라면 운조루의 산수유는 뒤꼍에 다소곳이 숨은 아름다운 규수의 모습이다.

"여기가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명당 터여"

나는 풍수지리를 잘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세계 오지를 기행 하면서 풍광이 아름답고 사람이 살기가 편하면 바로 그곳이 명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토지면 오미리가 바로 그런 곳이다. 거대한 지리산 자락을 뒤로하고, 앞에는 너른 들과 섬진강이 흘러간다. 오미리는 바로 그런 위치에 남쪽을 향해 시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운조루로 가는 길, 뒤로는 지리산 자락이, 앞으로는 섬진강 배산임수의 풍수지형을 이루고 있다.
 운조루로 가는 길, 뒤로는 지리산 자락이, 앞으로는 섬진강 배산임수의 풍수지형을 이루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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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왕시루봉 밑에 금환낙지의 명당 오미리마을에 위치한 운조루
 지리산 왕시루봉 밑에 금환낙지의 명당 오미리마을에 위치한 운조루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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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서 내려온 맥이 마지막 뭉친 곳이 지리산 노고단이라고 한다. 운조루 뒤쪽에는 노고단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흘러가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산남강북(山南江北)'의 자리다. 그리고 노고단과 섬진강 사이에는 제법 너른 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봉인 반야봉이 천왕봉에서 이어져 내려와 노고단을 만들고 그 아래로 형제봉과 천행치가 병풍산을 이루어 오미리의 명당터를 낳고 있다. 그래서 운조루는 전국의 풍수 마니아들이 연중 순례를 하는 풍수순례 코스라고 한다.

운조루 앞으로 흘러가는 개울.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섬지강과 반대 방향인 동출서류이다
 운조루 앞으로 흘러가는 개울.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섬지강과 반대 방향인 동출서류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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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에 한 노인이 한 평 남짓한 간이매점에 앉아 있다. 매점에 있는 노인치고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안녕하세요?"
"운조루 구경하려고?"
"네."
"그럼 여기에 싸인을 해요."
"그러지요. 안내장 같은 것은 없나요?"
"안내장? 여기 있어. 운조루는 명당 중의 명당이여. 지리산 정기가 뭉쳐 내린 곳이지.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닭발을 닮은 계족산이고, 그 옆에는 둥그런 엽전 같은 오산이여. 계족산은 불산이고, 오산 돈 산이지. 음료수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는가?"
"물 한 병 주세요."
"천천히 잘 살펴 보시오."
"감사합니다."

류맹호씨. 그는 마치 운조루 지킴이처럼 운조루 입구 작은 노점에 앉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 한 병과 운조루 안내서 한 장을 받는다. 안내장을 펴니 금환낙지(金環落地) 지새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금환낙지란 무슨 뜻이지요?"
"천상의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자리라는 뜻이재. 이 운조루는 지리산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자리여. 그 자리에서 금거북도 나왔어."

운조루로 들어가는 입구. 행랑채가 길게 들어서 있다.
 운조루로 들어가는 입구. 행랑채가 길게 들어서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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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는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금귀몰니(金龜沒泥-거북이 등살주름으로 당대에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당)'와 '다섯 가지 보물(금, 은, 산호, 진주, 호박)이 모이는 오보교취(五寶交聚)',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터로 세 가지 진혈이 모이는 명당 터라는 것.

1776년 류이주가 이 자리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 길리 25cm, 높이 12cm, 머리 3.5cm의 돌거북은 집을 완성하고 가보로 전해 내려왔으나, 1989년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운조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핀 산수유
 운조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핀 산수유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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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고택들은 문화재 도둑들로 몸살을 하고 있다. 운조루도 예외는 아니다. 운조루의 종손 류홍수씨는 문화재 도둑들에게 머리를 크게 다쳐 2년여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 이후로 무려 17번이나 도둑을 맞았다니 고택을 지키며 사는 것도 생명을 걸고 살아가는 일이다.

류홍수씨의 동생 류정수는 형이 혼자 이 집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서울 생활을 접고 구례로 내려왔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엘리트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고택을 지키기 위해 운조루로 합류를 했다.

235년 전 류이주가 지은 99칸 고택

비기(秘記)에 따르면 오미리와 금내리 부근에는 지리산 선녀가 노고단에서 섬진강에 엎드려 머리를 감으려다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이라 하여 예부터 '금환낙지(金環落地)' 명당터라 일컬어지고 있다.

235년 전의 고택 운조루는 봄 냄새가 물씬풍긴다.
 235년 전의 고택 운조루는 봄 냄새가 물씬풍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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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옛 지사(地士)들은 한반도를 절세의 미인 형국으로 보았고, 지리산 자락 구례 땅은 그 미녀가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의 옥음(玉陰)에 해당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미녀가 성행위를 하기 직전 금가락지를 풀어놓았는데, 그곳이 명혈(名穴)이 되어 금환낙지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정표인 금가락지는 성행위를 할 때나 출산을 할 때만 벗는 것이 상례인데, 가락지를 풀어놓았다는 것은 곧바로 생산 행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 1922년 그려진 동가도 원본은 도난당하고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 1922년 그려진 동가도 원본은 도난당하고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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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년 전, 이 명당터에 운조루란 99칸 가옥이 지어진다. 운조루는 1776년(영조 52년) 현 소유주 유홍수(54년생)의 9대 조부 입향조 류이주(柳爾胄, 1726~1797)가 삼수 부사를 지낸 뒤 지은 78칸의 가옥이다. 이 집은 예부터 99칸 집으로 알려져 왔으며 전국적으로 150년 이상, 삼십 칸 이상 된 고 가옥 건물은 열아홉 곳뿐이라는데 특히 이 건물은 재료의 크기나 간의 크기가 보기 드문 집이다.

류이주가 계획하고 설계한 운조루는 크게 연못이 조성된 바깥의 전정(前庭), 행랑채, 사랑채,안채, 사당으로 나뉜다. 운조루의 옛모습과 당시 식재 상황을 알 수 있는 도형 사료로는 '전라구례오미동가도'가 있다. 1922년 그려졌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근래에 도난당해 지금은 사본밖에 없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택 주변의 식재 경관과 사랑마당, 안마당, 사당의 배식상황 등을 알 수 있다. 대문밖에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연못이 조성되었고 주변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 기타 관목류가 심겨 있다.

뒤에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집 앞에는 연못이 그려져 있다. 연못 가운데 원도에 심은 소나무는 줄기가 뒤틀려 수형이 기괴하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 그대로이다. 철철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따라 걸어본다.

맑은 개울물 우측에 연지 가운데에는 그림과 같이 뒤틀린 소나무가 홀로 서 있다. 그곳에 들어서니 정신이 맑아지고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든다. 과연 이 집을 설계한 류이주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235년 전 운조루의 봄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덧붙이는 글 | 지리산의 명당터인 운조루는 235년동안 쌀을 나누어 먹는 나눔정신을 실천해온 철학을 가진 아름다운 고택이다. 봄을 맞이하여 '타인능해'의 '나눔'정신을 전해주는 운조루의 봄을 취재하여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하고저 한다



태그:#운조루의 봄, #구례, #섬진강, #지리산, #류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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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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