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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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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논란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꺼낸 카드는 결국 '신뢰 정치'였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를 무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만만치 않은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여권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으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벌였던 세종시 대전에 이어 '신공항 대전'에 휘말리게 됐다.

박 전 대표는 31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국민과의 약속 위반"이라고 정면 공격했다. 이날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단호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평소 현안에 대해 몇 마디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던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다지만 미래에는 분명 필요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다"며 "국토해양부는 인천공항 3단계 확장이 완료된다 하더라도 2025년이 되면 우리 전체 항공 물동량을 다 소화할 수 없다고 추정하고 있고 입지평가위원장도 장기적으로 남부권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이 바로 미래의 국익"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종시 논란에 이어 또다시 MB에 맞선 박근혜

신뢰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동남권 신공항 조기착수를 약속했고 지난해 7월에도 영남권 5개 시·도가 이용할 수 있고 대구 국가산업단지가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국제공항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의 민심을 외면하는 것도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라는 점도 꼬집었다. 박 전 대표가 대선 공약 파기를 이유로 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예측가능한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말을 뒤집어 보면 이명박 정부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비판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발언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반기' 등의 정치적 확대 해석 차단에 나섰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여러 수요를 봤을 때 인천공항 외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건 정책적인 문제다, 다른 정략적이거나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비롯한 김범일 대구시장, 신성철 총장, 윤종용 이사장 등 지역 국회의원들이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축사를 마친 뒤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비롯한 김범일 대구시장, 신성철 총장, 윤종용 이사장 등 지역 국회의원들이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축사를 마친 뒤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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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가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며 현직 대통령이 만들지 않겠다고 한 신공항을 다음 대선에서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이 대통령과의 대결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신공항 백지화로 영남권 의원들이 대통령의 탈당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미래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박 전 대표까지 정면으로 맞서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치명상을 입게 됐다. 여권 내부도 다시 한번 '두 동강' 나면서 세종시 수정안 대립 이후 지난해 8월 회동을 계기로 이어져 왔던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화해 무드도 더이상 이어지기 힘들어졌다.

내심 박 전 대표의 이해를 바랐던 청와대는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한 청와대 반응은 "무반응이다, 무반응도 반응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신공항 백지화 이틀 만인 4월 1일 이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선 것은 그만큼 청와대의 위기의식이 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례적으로 기자들의 질문도 받기로 했다.

입지선정 숙제 미뤄놓은 박근혜, 여론도 부담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신공항 재추진 의지가 그의 대권 가도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하더라도 입지 선정을 놓고 다시 한 번 밀양과 가덕도 등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간 갈등이 벌어지고 신공항 건설의 경제적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신공항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을 뿐 구체적 입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신공항의 가덕도 유치라는 이해 관계가 걸린 부산이 지역구인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를 바로 잡는 게 진정한 애국이자 용기"라고 정부 결정에 힘을 실었다.

여론도 부담이다. 지난 26부터 27일까지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표본오차는 신뢰구간 95%에서 ±3.5%p)에서 '동남권 신공항은 불필요하다'는 응답비 43.2%로 가장 높았다. 특히 경기인천(55.5%) 등 수도권과 이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층(47.3%)에서 신공항 반대가 높았다.

여권의 '세종시 대전' 이후 수도권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여권 지지층 중 이 대통령 이탈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표로서는 신공항 재추진 카드가 '독'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 청와대가 신공항 백지화를 통해 박 전 대표를 대구경북 맹주 수준으로 고립화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던 당시 지지율의 동반하락 했던 쓴 경험도 한 바 있다.  

신공항 재추진, 박근혜에게 득 될까 독 될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신성철 총장, 윤종용 이사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신성철 초대 총장 취임식에 참석해 신성철 총장, 윤종용 이사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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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했던 유승민 의원(대구시당위원장)은 "박 전 대표가 청와대와 각을 세우지 않겠다고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과 신뢰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엄호에 나섰다.

하지만 수도권 의원들 중심으로 박 전 대표가 '악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신공항 재추진 카드로 박 전 대표의 영남권의 지지는 더 공고해 지겠지만 경제성 없는 사업에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판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수도권에서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명박 대통령이 뒤집어야 써야 할 책임을 박 전 대표가 스스로 지겠다고 가져간 셈"이라고 냉소했다.

'세종시 대전'에 이은 '신공항 대전'의 추이는 4월 1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신공항 관련 기자회견 내용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태그:#동남권 신공항, #박근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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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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