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애프터>의 포스터

<히어애프터>의 포스터 ⓒ 드림윅스SKG

81세가 된 거장 감독이 죽음을 말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야기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체인질링>과 같이 무게 있는 영화들을 선보였던 그가 이제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히어애프터(3월 24일 개봉)>는 죽음을 보는 남자와 죽음을 겪은 여자, 그리고 죽음과 함께 하는 아이가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죽음이 전해주는 세 이야기

프랑스의 정치부 기자인 마리(세실 더 프랑스)는 휴가지에서 거대한 쓰나미를 만나게 되고 짧은 순간 죽음을 경험한다. 좁은 빛을 통해 바라보았던 사후세계의 경험 탓에 그녀는 일상으로 잘 되돌아오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조지(맷 데이먼)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죽은 자들을 본다. 죽은 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저주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그에게 유일한 낙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녹음기로 듣는 것이다. 

술과 약에 찌든 엄마를 돌보며 지냈던 쌍둥이 형이 자신을 대신해 엄마 약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마커스는 자신의 반쪽과도 같았던 쌍둥이 형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위태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로 교차편집이 되던 화면이 연결되는 지점은 영화 후반부다.  샌프란시스코와 프랑스에 머물던 사람들이 런던으로 모일 때 영화는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쌍둥이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하는 마커스

쌍둥이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하는 마커스 ⓒ 드림윅스SKG


각자의 방법으로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아픔은 절제된 감정으로 승화된다. 죽음을 경험한 후에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멍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마리는 남자친구도 일자리도 잃게 되지만 죽음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

감추고 싶은 상처까지 꿰뚫어 보는 능력으로 인해 사랑할 기회조차 잃게 되는 조지는 외롭다. 남의 아픔을 들추며 돈을 버는 자신의 능력에 환멸을 느껴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어느 날 자신을 이용해 돈 벌 궁리만 하는 형의 곁을 떠날 결심을 한다.

12분 일찍 태어난 쌍둥이 형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 마커스는 엄마와도 헤어진 채 위탁가정으로 보내지지만 오로지 형만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인터넷을 통해 죽은 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영매사를 찾아 나서지만 모두 죽은 자들을 이용하려는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형을 만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죽음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삶의 희망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지닌 자들의 우연한 만남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지닌 자들의 우연한 만남 ⓒ 드림윅스SKG


하지만 아픔을 지닌 그들의 우연한 만남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각자의 방법으로 죽음을 경험한 그들의 상처가 서로의 아픔을 통해 희망으로 달라지는 순간 그들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고로 친구를 잃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히어애프터>의 작가 피터 모건은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지내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지만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고 그곳이 어디인지 질문하기 위해 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 본 사람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던 사람은 말했다. 죽음 앞에 다가선 순간 삶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고.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매순간을 살고 싶다고 했다. 죽음은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달라지게도 한다. 

쓰나미 영상의 짧은 예고편으로 재난영화를 상상하고 극장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첫 장면부터 우리 영화 <해운대>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시선을 압도하지만 영화는 내내 부드럽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실감나는 쓰나미 영상으로 일본에서는 상영 중지

 휴가지에서 쓰나미를 만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마리

휴가지에서 쓰나미를 만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마리 ⓒ 드림윅스SKG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최초로 컴퓨터그래픽(CG)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CG를 활용한 실감나는 쓰나미 영상으로 영화는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지난 2월 개봉한 일본에서는 대지진 여파로 상영이 중지되기도 했다.

감독은 인도네시아,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프랑스, 런던, 각국을 종횡무진하며 죽음의 언저리를 맴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도 아쉬움도 아니다. 또한 무엇을 향해 달렸고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미지수다. 그저 누구도 스스로 선택해서 존재하지 않듯이 알 수 없는 순간에 우리 주변에 머물 수 있는 죽음을 담담하게 선보인다.

죽음을 겪은 여자와 죽음을 보는 남자, 죽음과 함께 하는 아이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말한다. 죽음을 통해 희망을 찾는 그들처럼 살아있는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히어애프터>는 죽음을 통해 희망을 말하는 영화다. 

"저 세상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서 죽음은 종착지입니다. 저 세계에 뭐가 있고 없는지에 대해서 저마다 믿는 바는 있지만 모두 가설일 뿐이죠. 가 봐야 아는 거니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히어애프터 클리트 이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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