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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는 맑은 내가 흐르고, 주변으로는 늙은 노송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은 시원한 바람을 안고 벽을 타고 올라온다. 육각형으로 된 정자는 예사 정자가 아니다. 모든 곳을 판문으로 달아내어, 위로 올려 걸게 되어 있다. 안으로는 한편으로 한 칸의 방을 놓고, 삼면으로 문을 내어 주변 경관을 구경할 수 있도록 꾸몄다.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정자이다. 소나무 숲에 둘러쌓인 '낙덕정(樂德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되어 있는 낙덕정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에 있다. 광무 4년(고종 37년)인 1900년에 김상기, 김노수 등 후손들이 조선 초기의 인물인 하서 김인후의 발자취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판자벽으로 두른 낙덕정

 

3월 12일 오후 6시가 다 되어 들른 낙덕정. 처음부터 낙덕정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지나는 길에 보니 낙덕정이란 간판이 보인다. 옆으로는 내가 흐르고 있고 절벽 위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다. 그런데 정작 정자는 보이지가 않는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르니, 앞에 서 있는 정자로 인해 눈이 번쩍 뜨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다니. 그냥 지나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팔면을 모두 판자벽으로 마감을 한 낙덕정. 앞에 현판이 달려 있는 곳의 문이 열려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판자벽이 아니라 판문(板門)이다. 뒤편만 판자벽으로 되어있고, 남은 면은 모두 문을 달아 개방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뒤편을 제외한 삼면에는 문을 내어, 판문을 열어 위로 올려 걸어 놓으면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였다. 단 하나의 편액이 걸려 있기는 하나 아마도 지은 지가 110년밖에 안 됐기 때문인 듯하다. 팔모단층의 집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정자를 꾸몄다는 것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문정공 김인후를 그리는 정자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쐬며

시읊으며 돌아간다

 

낙덕정이 선 자리에 올라 음풍영월을 하였다고 한다. 기수란 앞으로 흐르는 내를 말하는 것이고, 무우(舞雩)란 기우제를 지내던 이 낙덕정이 서 있는 언덕을 말하는 것이란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도학, 절의, 문장이 드높아 문묘에 배향되신 분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난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낙덕정에서 3km 정도 떨어진 점암촌에 은거하셨다. 그곳에 강학당인 훈몽재를 짓고, 후학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하셨다고 한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은 날이면, 늘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 낙덕정이 서 있는 언덕에 올라 거닐기를 즐겨 하셨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정자, 선생의 인품을 닮아

 

낙덕정은 소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그려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섬처럼 보이는 냇가의 작은 동산이다. 그 위에 낙덕정을 지은 것은, 선생이 '메기바위'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소일하시기를 즐겨 했기 때문이란다. 김인후 선생은 이곳에서 강론과 담소를 즐기셨으며, 후학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낙덕정 주변을 찬찬히 돌아본다. 메기바위를 '낙덕암'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아마도 선생의 인품이 자연을 벗 삼아 음률을 좋아하다 보니 절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기 때문은 아닌지. 겹처마로 지붕을 내고 화강암 원주기둥인 장초석으로 주추를 놓아,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정작 마루는 초석의 중간에 걸려 있는 모양이다. 뒤편의 아궁이도 판벽으로 마감하고 작은 문을 내어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에서 앞으로 흐르는 내의 물소리를 듣고, 바람이 실어다 주는 솔향을 맡으며 담소를 했을 김인후 선생. 앞으로는 메기바위인 듯한 바위가 냇가에 걸쳐 서 있다. 멀리서 보면 섬과 같고, 위로 오르면 소나무 숲이 된다.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늦은 시간 저녁 햇볕에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는 메기바위와 소나무 숲. 메기바위 밑을 흐르는 물이 어우러져 선생의 인품이 절로 그려지는 듯하다.


태그:#낙덕정, #문화재자료, #순창, #김인후, #메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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