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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떼뻬의 둘째 날. 밤새 요란스러운 동물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새벽 두 세시부터 시작된 닭 울음 소리, 이에 질세라 동네 개 짖는 소리, 새 소리, 원숭이 소리, 각종 풀벌레 소리까지...경쟁이라도 하듯 떠들어 댄다. 이것이 생상스가 아닌 오메떼뻬가 만들어낸 자연산 '동물의 사육제'가 아닐까?

산을 걸어오르기로 했다, 열대기후 나라에서...

낙타의 등처럼 솟아있는 두 화산, 콘셉시온(Concepcion)과 마데라스(Maderas). 우리가 머물고 있는 메리다(Merida) 마을에서 가까운 마데라스 화산 아래에는 길이 56미터의 아름다운 폭포 카스카다 산 라몬(Cascada San Ramon)이 있다. '카스카다(cascada)'는 스페인어로 폭포(waterfall)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 산 라몬 폭포인 셈. 콘셉시온 화산은 가이드 없이는 가기 힘든 곳이고, 마데라 화산 정상까지 가는 것도 버거울 듯 하여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폭포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약 4km 떨어진 산 라몬(San Ramon) 마을로 간 후에 산을 올라야 한다. 산 라몬까지 대부분 오토바이나 자전거 등을 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텔 프론터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등산 계획을 말했더니 그 역시 등산로 입구까지 말을 타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하지만 우리는 약간의 고집을 부려 직접 두발로 걸어보기로 했다. 조금의 고생만 감수한다면,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직접 섬을 느끼고 그 분위기에 동화되기엔 가장 좋은 방법일테니 말이다. 오메떼뻬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옥들, 그리고 바람, 흙, 나무, 냄새까지 몸소 느껴보고 싶었다. 게다가 호텔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4km 도보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까.

슬렁슬렁 걷기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이 땀에 흥건해졌다. 니카라과가 열대기후 나라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늘 없는 마른 흙길을 걷자니,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고른 길도 아닌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아닌가? 사실 '도로'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리만큼 길 상태가 장난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걷기로 맘 먹었던 것이 슬슬 후회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몇몇 외국인 여행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날 때마다 흙먼지를 뿌리고 가는 바람에 살짝 숨을 멈춰야 할 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부러운 반면 얄밉기도 했다.

소를 타고 가고 있는 마을 소년. 구멍이 숭숭 난 티셔츠가 인상적이다.
 소를 타고 가고 있는 마을 소년. 구멍이 숭숭 난 티셔츠가 인상적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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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만난 오메떼뻬 섬사람들. 말과 소를 이끌고 가다가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간다.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한 소녀가 돼지 등 위에 올라타고 있다. 대단한 여장부다. 그 집 마당엔 개와 닭, 염소도 함께 놀고 있다.

소가 소답고, 돼지가 돼지답고, 아이가 아이다운 곳

망고 가로수 길 아래 떨어진 열매를 따먹는 돼지는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스스로 배를 채워간다. 닭들도 병아리들과 함께 수풀을 헤치며 열심히 먹이 쪼아 먹기에 한창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가축들이 하나같이 날씬하고 털 빛깔도 윤이 나고 예뻤다. 소가 소답고, 돼지가 돼지답고, 닭이 닭다우며 아이가 아이다운 곳이 바로 이곳, 오메떼뻬다. 이곳엔 건강한 아이들의 웃음이 늘 넘쳐난다.

길가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돼지, 염소. 이 밖에 모든 동물을 풀어 키우고 있었다.
 길가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돼지, 염소. 이 밖에 모든 동물을 풀어 키우고 있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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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호수에서 고기잡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였다. 양동이를 들고 있는 소녀에게 얼마나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손수 보여주며 수줍은 듯 웃는다.

호수에서 고기를 잡은 소녀.
 호수에서 고기를 잡은 소녀.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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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40분을 예상하고 시작된 도보는 1시간이 지나서야 등산로의 시작점이 있는 산 라몬 마을의 에스타시온 바이오로지카 데 오메떼뻬(Estacion Biologica de Ometepe)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의 산림과 자연 생태계를 연구 조사하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나 있는 걸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곳의 총 책임자는 그저 그늘 아래 해먹에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부터 다시 3km이상 걸어가야 폭포가 나온다.
▲ Estacion Biologica de Ometepe 이곳에서 부터 다시 3km이상 걸어가야 폭포가 나온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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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3km 더 올라가야 폭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 당장 휴게소에서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하시엔다 메리다(Hacienda Merida)는 마치 건강 수련원과도 같아서 시판 청량음료는 먹을 수 없었다.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탄산인가? 정신없이 두병을 '흡수'해버렸다.

갈증을 달랬으니 다시 걷기 시작. 가이드 북에서 3km가 생각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지독히도, 지겹게도 끊임없는 오르막길이다. 등산이라는 게 나름대로 오르막 내리막이 번갈아 있어야 쉴 틈도 있는 법인데, 이건 정말 너무하다. 게다가 등산로 양 옆에 있는 과일 나무에는 탐스러운 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신선할까? 한개만이라도 따먹었음 좋겠건만, 나무 아래는 영락없이 "따먹지 마세요" 라는 경고 글귀가 적혀있다. 뭐 CCTV라도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외국에서 국제적 망신이라도 시키면 안되니 내가 참고 말지.

뜨거운 날씨에 계속 오르막 길이다보니 3km가 마치 30km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간간히 들리는 물소리. 다 왔나? 희망을 가져보지만 폭포는 쉽사리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힘든 3km 는 난생 처음인 듯 하다. 물탱크가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가거나 말을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우리는 어쩌자고 무턱대고 처음부터 걷기를 선택했을까? 후회 막급이다.

드디어 폭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게 분사되어 아래로 떨어지는 좁고 길다란 폭포. 그 아래로 무지개가 물과 햇빛에 반짝인다. 당장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을 만큼 폭포 아래에 고인 물은 너무나 아담하기 그지없다. 수영복을 챙겨올걸 그랬나보다. 슬리퍼가 없어서 맨발로 물 안에 들어가려니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도중 포기. 간신히 발만 담그고 왔다.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리고 있는 폭포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리고 있는 폭포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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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하산 후 숙소로 되돌아 가는 길이 눈 앞에 깜깜했다. 그러나 가는 길에 다행히 치킨버스(일반 대중버스를 칭함)를 탈 수 있었다. 중고 스쿨버스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치킨버스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가 여기저기 그대로 붙어있다. 버스는 오르막을 오를 때마다 힘에 겨워 영 속도가 나질 않았다. 이럴바엔 차라리 자전거가 더 빠른 이동 수단이겠다 싶다. 이런 차가 움직이는 게 신기하지만, 현지인들에겐 소중한 교통수단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여행객들. 현지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겐 소와 말, 자전거가 그들의 교통수단일 테니까.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동양인, 이번엔 잘못된 역사책을 바로잡다?

저녁 뷔페 식사 전, 분주히 음식을 만드는 주방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주인장 아저씨는 흥쾌히 주방 안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나도 요리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더니 오메떼뻬에 남아서 한국 음식을 좀 알려주고 가달라고 한다.

호텔 주인장 알바로 몰리나(Alvaro Molina)씨는 다시 "영어 할 줄 알아요?"라며 말을 걸어온다. 그는 각 나라에서 온 배낭족들과 함께 세상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듯 했다. 매일 저녁식사 때면 이쪽 저쪽 테이블을 오가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번엔 우리 차례인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후, 어떻게 오메떼뻬를 알고 왔느냐며 한국인을 처음보는 것 마냥 너무나 신기해 했다. 그러고는 공통 관심사라도 끄집어 내고 싶었던지 갑자기 자기 자동차가 한국산라며, 한국 자동차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저녁 뷔페를 준비하고 있는 주방 모습이다.
 저녁 뷔페를 준비하고 있는 주방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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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한 켠에 있는 책장엔 꽤 두꺼운 인류 역사책이 있었다. 그곳에 중국의 한자를 한글(훈민정음)로 소개하고 있었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것은 한글이 아닌 '한자'라고 볼펜으로 쫙쫙 그어 수정을 하고 뿌듯이 책을 덮었다.

애마부인을 꿈꿨으나, 난생 처음 '틱'에 물리다

호텔에서 알선해주는 승마 코스는 여러 군데 있었지만, 우리는 장장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산도 토밍고(Santo Domingo)코스를 택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꼭 한번 호숫가를 따라 모래사장에서 말을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시간에 미화 5달러면 미국에서는 상상 못할 저렴한 가격이 아닌가? 하지만 프론터의 청년은 정말 4시간을 타겠느냐며 연거푸 확인을 한다. 그나저나, 이 청년은 우리만 보면 왜 그렇게 실실 웃는지….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말했더니 그 역시 어떻게 오메떼뻬에 올 생각을 했느냐며 많은 관심을 보여댔다.

마부가 말을 끌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어제 저녁 인사를 나눴던 덴마크에서 온 남자가 우리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말을 걸어온다. 말을 탈 때 짧은 반바지를 입고 타면 마찰 때문에 다리 안쪽이 아파서 안된다며 입고 있는 복장을 지적해주었다. 그는 자기 소유의 말을 가지고 있을 만큼 말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충고에 감사를 전하고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말을 끌고 온 아저씨.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무지 애를 먹었다.
 말을 끌고 온 아저씨.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무지 애를 먹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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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부와 말 두마리가 도착했다. 이전에 타봤던 것들보다 훨씬 작고도 꾀죄죄한 말들이다. 마치 그냥 집 헛간에 있는 말들 중 두마리를 쫄래쫄래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마부는 고삐를 당겨 이동 방향을 전달하는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었는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4시간 동안 의사소통이 괜찮을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저 말 위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안전 장치가 미약한데다가 다리에 힘을 주고 있자니 제법 힘에 겹다. 게다가 울퉁불퉁한 길을 걸을 때마다 몸이 통통 튀는 바람에 이미 사타구니와 골반, 허리까지 안 아픈데가 없다. 말의 상태도 청결하지 못하여 머리털 사이에 벌레가 지나가는 게 그대로 보일 정도다. 그때 갑자기 허벅지가 따끔하다. 모기라도 물렸나?

오후의 햇볕이 너무나 뜨거워서 마치 사하라 사막 위를 낙타로 거니는 듯한 느낌이다. 내리막길에서 말이 뛰기라도 하면 사타구니 통증은 더 심해 온다. 그 덴마크 아저씨 말을 듣고 옷을 갈아입기를 잘 했지, 반바지를 입고 말을 탔으면 허벅지가 홀라당 까졌을 거다.

마부는 길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가게에서 볼일을 보는 등. 느긋느긋 자기 일을 다 보고 갔다.
 마부는 길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가게에서 볼일을 보는 등. 느긋느긋 자기 일을 다 보고 갔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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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산토 도밍고에 도착했다. 이럴수가! 지난 우기 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호숫가 너머로 물이 범람한 상태였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쉬운 대로 사진 한 장만 겨우 건질 수 있었다.

호숫물이 범람하여 호숫가를 걸을 수가 없었다.
 호숫물이 범람하여 호숫가를 걸을 수가 없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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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

하루종일 오메떼뻬의 산, 물, 초목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라나다의 집들은 하나같이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지만, 오메떼뻬는 그저 회색과 벽색의 단조롭고 어두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엉기설기로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는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고, 마당에는 아이들과 가축들이 함께 뛰어 논다. 때묻지 않은 그들만의 삶은 현세와 동떨어져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되돌아 오는 길
 되돌아 오는 길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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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다가 다리에 없던 검은 점(?)을 발견했다. 승마 때문에 물집이 잡힌 걸까? 싶었는데, 마치 검은색 사마귀처럼 생겼다. 헉! 말로만 듣던 틱(tick)에 물린 것이다. 틱은 진드기 일종의 벌레인데 몸에 붙어 피를 빨아 먹는다. 특히 사슴틱이 유명한데, 오늘 탔던 말들의 위생상태가 의심스럽다 했더니 말에 붙어있던 것이 옮아왔나 보다. 호숫가를 따라 우아하게 말 탈 것을 상상하며 시작했건만 난생 처음 틱에 물릴 줄이야.

매일 저녁 카약을 타고, 이틀을 연달아 등산에 승마까지…. 오메떼뻬에 있는 동안 무슨 건강 수련원에 들어와 자연식을 먹고, 극기훈련이라도 한 느낌이다.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 밤은 제발 동물 소리의 방해가 없는 가운데 숙면을 취할 수 있기를 바라며 휴지를 돌돌말아 귓구멍에 쑤셔 넣고 잠을 청해본다. 다음번에 오메떼뻬에 올 일이 다시 있다면, 꼭 귀마개를 가져오리라 다짐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오메떼뻬, #니카라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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