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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5년 차인 이남호(58세) 센터장. 아직 그 흔한 명함 한 장 없다. 센터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승합차에도 센터를 홍보하는 글귀가 붙어 있지 않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아이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활에 녹아 있어서다.

 

하지만, 그녀에겐 다른 이들에게 없는 '눈물'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눈물의 기도'라고 할까. 기자와의 인터뷰 중간에도 예순이 다 된 그녀의 눈시울은 몇 번이나 적셨다.

 

산수화 아파트 601호에 무슨 일이?

 

처음부터 센터를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2003년 안성 산수화 아파트로 이사 왔다. 자신의 집 대문을 열어두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놀러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었다.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부부 가정,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의 아이들이 놀러 왔다. 집에선 구박받고 대접받지 못하던 아이들이 거기에 가면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601호에 놀러 가면 좋은 일이 많이 있다고. 이것이 센터를 하게 된 계기였다.

 

2006년 지금의 자리에서 센터를 창립했을 때도 그때 놀러 오던 아이들이 따라왔다. 아파트에서 센터까지 상당한 거리다. 하지만 실제 거리는 멀어도 마음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던 게다. 지금도 그 아이들 중 몇 아이는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맨땅의 헤딩' 해본 사람은 안다.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여성으로서 센터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목사(공도 순복음교회)이기도 하다. 상가건물 2층엔 교회당, 3층엔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몸이 몇 개라도 늘 모자란다.

 

눈물의 기도는 그칠 줄 모르고...

 

새벽이면 센터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가며 눈물로 기도한다. "저 아이들이 지금은 바닥에 살아도 나중에 커서는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할 때면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스쳐 지나가고,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센터에 아이들이 오면 반갑다. 그녀는 늘 그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여주고, 잘해주고 싶다. 하지만, 간혹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이것을 이용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영악하게 굴고, 함부로 그녀에게 대하면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진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이 좋아지길 원하는 데, 아이들은 전혀 변화가 없을 때 자신의 가슴을 치곤 한다.

 

학부모들 중에서 간혹 "그거 정부에서 다 해주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자신들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센터 운영에 관한 자부담이 상당하다는 걸 그들은 몰라서다. 그럴 때면 예산 출납부를 다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그녀는 서로가 감사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욱 안타까워 마음이 아파져 온다.

 

"사실 내 새끼에게도 이렇게 못해줬는데..."

 

작년 12월, 어느 기관의 후원으로 경기도 영어마을 파주캠프를 다녀왔다. 체험비가 자그마치 40~50만 원이지만, 센터의 아이들은 무료로 다녀왔다. 호텔 같은 방, 근사한 침대, 단독 샤워장 등은 아이들에게 꿈의 장소였다. 아이들이 신기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아이들의 현실을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이 짠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녀는 또 한 번 눈물을 훔친다.

 

"사실 내 새끼에게도 이렇게 못해줬는데..."

 

이 말을 하며 그녀는 또 한 번 코끝이 찡하다. 서른이 된 자신의 자녀는 클 때 이런 호강을 시켜준 적이 없었다는 엄마의 마음이다. 센터의 아이들 중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밤잠을 설친다. 기도해주고, 병원 데려가고, 마음 쓰느라고. 이것 또한 자신의 자녀에게는 이렇게까지 못했었단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 지원이 줄었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들이 운영난에 허덕이다 하나둘 문을 닫는 형편이다. 이 센터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보니 비용은 예상보다 항상 많이 들어간다. 카드 값 걱정하고 돈 빌리러 다니는 속사정을 누가 알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한 번 그녀는 눈물을 훔친다. 덩달아 기자의 마음도 먹먹하다.

 

눈물이 씨앗이 되어...

 

센터의 자랑은 단연 정훈 학생이다. 정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센터에 왔다. 그는 소위 언청이였다. 주변에서 놀림도 심했다. 하지만 이 센터장이 주선해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정훈은 미남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고2. 누구보다 활발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이런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나는 재미는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많이 읽힌다. 실제로 훌륭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녀의 이런 말은 으레 하는 것이 아닌 듯 보였다. 이런 말을 하는 동안 그녀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강렬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센터의 아이들이 고교를 졸업하면 지역의 대학들(폴리텍 대학, 두원공대, 한경대 등)에 진학하도록 나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센터의 자랑인 정훈 학생이 졸업할 내후년이면 1호 대학생이 배출될 예정이다.

 

그녀는 상상한다. 센터의 아이들이 커서 10년 또는 20년 후 자신들의 자녀를 데리고 센터에 찾아오는 것을. "센터장님 덕분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입가엔 벌써 미소가 하나 가득이다. 

 

그녀를 만나고 나오면서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5) 꿈나무들의 대모 눈물, 말 그대로 어머니의 눈물이고 사랑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0일, 경기지역아동센터(031-651-8191) 사무실에서 이남호 센터장과 있었다. 


#지역아동센터#경기지역아동센터#안성#이남호 센터장#이남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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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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