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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시작됐다. 새학기 시작과 함께 전북지역 초등학교는 일제히 무상급식에 들어갔다. 1학년 신입생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첫날 식단은 클로렐라밥, 돼지등뼈찌개, 잡채, 양송이 오믈렛, 오이부추무침, 배추김치였다. 무상급식이 이뤄졌던 첫날 점심,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감격만하고 있기엔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무상급식을 환영하는 쪽이지만, 일부에서는 요즘 치솟는 물가 때문에 혹시 식사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무리도 아니다. 이상 기후에 따른 농작물의 물가폭등, 구제역, AI , 유전자변형첨가물 등등. 이러한 상황에 우리 아이들이 균형 잡히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정에서라면 반찬 가지수를 줄이고, 비싼 식자재는 안 먹으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대충 만들 수가 없다. 특히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급식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양과 현실의 균형을 맞추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요즘, 영양 교사들의 어깨가 그 어느때보다 무겁다. 전주의 O 초등학교의 한 영양교사를 지난 지난 7일 만나보았다.

식비 동결됐는데 물가폭등...어려운 식단짜기

조리실 사진을 찍을때 영양교사는 잠시 주저했다. 아무리 깨끗한 조리실이라도 사진으로 보면 크게 깨끗해보이지않더라는 생각때문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깨끗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깨끗해보이지않는다면 그건 사진기자의 책임이다.
 조리실 사진을 찍을때 영양교사는 잠시 주저했다. 아무리 깨끗한 조리실이라도 사진으로 보면 크게 깨끗해보이지않더라는 생각때문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깨끗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깨끗해보이지않는다면 그건 사진기자의 책임이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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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교사 김혜진(가명)씨는 요즘 무척 바쁘다. 새학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식단짜는 일에 머리를 싸매야하기 때문이다. 영양교사를 시작한 지 15년, 이렇듯 힘든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올해는 입학 첫날부터 급식이 시작됐기 때문에 새학기 시작되기 보름 전부터 한참 바빴다.

"급식 메뉴는 보통 2주 단위로 미리 짜놓죠. 식단 짜는 게 금방 끝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영양도 맞춰야 하고, 물가도 맞춰야 하고. 정말 무슨 어려운 퍼즐을 푸는 기분이네요."

김씨의 하루업무는 이렇다.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하고 난 뒤 8시 30분까지 그날 사용할 식자재를 검수한다. 주문한 식자재의 품질, 수량을 꼼꼼이 확인한다. 검수가 끝나고 난 뒤 8시 45분까지는 조리사들과 조회가 있다. 그날 조리할 음식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하고 특별한 사항이나 주의할 점을 이야기해준다. 8시 50분부터는 조리에 들어간다.

조리 중간에 음식의 간을 보는 것도 김씨의 업무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조리실의 위생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컴퓨터 업무를 본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그날그날의 메뉴 식단과 조리에 들어간 식자재의 영양소, 원산지 등을 꼼꼼이 기재해야 한다. 음식에 들어간 소금, 후추와 같은 양념의 칼로리와 양도 꼼꼼이 기재해야 한다. 예전에는 수작업으로 했지만 요즘은 모든 걸 컴퓨터로 작업한다. 영양교사라고 하면 조리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김씨가 근무하는 학교의 급식시간은 대략 11시 50분부터 1시 30분까지다. 병설 유치원의 급식까지 담당하고 있어서 급식시간이 길다. 기자가 찾았던 날은 유치원의 급식이 11시 40분부터 이뤄졌다. 가장 늦게 급식을 하는 학년은 3, 4학년. 그들까지 급식을 마치고 나면 1시반 가량된다. 급식후 마무리까지 마치고 나면 대략 오후 2시다.

김씨와 조리사들의 점심식사는 대략 2시 이후에 이뤄진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좀 한가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김씨는 약간 억울(?)해 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시더라구요.(웃음) 하지만 저희는 더 바쁘죠. 시장조사도 해야하고 식단도 짜야 하고 식단일지도 올려야 하니까요. 시장조사는 보통 식단짤 때마다 나가는데 대형마트, 재래시장을 다 돌아요. 그리고 날마다 가격조사를 게을리 할 수 없죠. 요즘과 같이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변할 때는요."

급식후 오후시간이 더 바쁜 영양교사

'물가'와 '영양'면에서 고민해야하는 영양교사들. 올해 영양교사 15년차인 김씨는 그 어느해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물가'와 '영양'면에서 고민해야하는 영양교사들. 올해 영양교사 15년차인 김씨는 그 어느해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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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에도 김씨는 여러 건의 업체와 전화를 하기 바빴다. 식단이 날마다 바뀌는 것처럼, 식자재를 거래하는 업체도 날마다 바뀐다. 업체 선정은 교육청 홈페이지에 오른 '공개입찰'을 통해서다. 물론 좋은 품질은 기본 조건이다. 여기에 학교 측에서 내건 가격보다 저렴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과 같이 물가변동이 심하고 폭등할 때일수록 가격 경쟁은 치열하다. 몇 번의 유찰 끝에 최종적으로 낙찰이 이뤄지고 식자재가 온전히 영양 교사의 손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 1인 식사 책정비가 2천원이에요. 여기에 약간의 보조금을 합쳐서 2105원정도 되거든요. 2천원의 60%는 식비로 쓰이고 나머지 40%는 인건비, 운영비로 들어가요. 책정비는 작년과 똑같은데 물가는 인상됐으니 식단짜기가 힘들죠. 고기류가 많이 올라서 고기류는 줄이는 대신, 단백질이 포함된 콩이나 달걀, 두부로 대체하기도 하죠. 야채류도 많이 올라서 그에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야채를 사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워낙 한꺼번에 올라서 오르지않은 품목을 고른다는 게 쉽지 않네요. 물론 명절이나 연휴같이 특별한 기간을 앞두고는 물가가 오르곤해요.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정상가로 돌아오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특별한 경우인 것 같아요."

메뉴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하다. 고기류가 등장하면 반응이 좋다. 그러나 야채가 등장하면 잔반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고기류나 인스턴트, 냉동음식을 선호하는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따라서 짤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물가와 영양, 여기에 아이들의 '취향'까지 고려해야하는 삼중고를 겪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한달에 4만원 가량 되는 식비가 별 거 아니라는 분도 계시지만 식비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부유한 집 아이들은 돈 내고 먹어야 되지 않느냐고 차등적용을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그 돈을 무상급식에 사용하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다른 혜택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면서요. 뭐가 정답이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영양교사 측면에서 봤을 때 아이들이 부담없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 오면, 급식실도 들러주시길...

깨끗이 씻어놓은 식판과 식기들. 어지간한 가정의 부엌보다도 깨끗하고 정결하다.
 깨끗이 씻어놓은 식판과 식기들. 어지간한 가정의 부엌보다도 깨끗하고 정결하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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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이다. 입버릇이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까운 염원이다. 오늘 하루, 급식이 무사히 끝나고 별 탈없이 보냈다면 성공한 하루라고 생각한다. 가장 두려운 단어는 '식중독'이다. 여름철이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사시사철 먹을거리가 위협받는 세상, 언제 어떻게 '터질지'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거의 습관적으로 '너 오늘 학교에서 뭐 먹었니?'라고 물어보잖아요. 그런 말 들을 때 좀 섭섭하죠. 위생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히 하거든요. 가끔 검수하러 오는 학부모들이 깜짝 놀라요. 자기 집 주방보다 더 깨끗하다면서요."

하여 김씨는 학부모들이 급식실을 방문하길 희망한다. 학교에 오면 교실만 둘러보지 말고 급식에 들러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학부모의 충고와 조언을 언제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김씨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를 둔 학부모다. 자연히 엄마의 마음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음식을 내 아들, 딸이 먹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엄마의 마음'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김씨는 말했다. 운영비로 할당된 40%분량을 좀 줄이고 식품비를 늘리더라도 아이들에게 좀 더 양질의 좋은 먹을거리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태그:#물가,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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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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