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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앨범 사진.
▲ 졸업사진 대학 졸업 앨범 사진.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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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국 108만명의 20대 청년백수 중 1명이며, 언론사 취업준비생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 공채기간이 아닌 시기에는 자발적 실업상태에 놓여있다. 대학 졸업 후에 짧게는 1~2개월부터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취업을 못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들의 실업 상태가 길어질수록 어머님의 한숨도 깊어만 간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답답하셨는지, 아침밥을 먹을 때면 헛기침을 하시면서 눈치를 주기도 하신다. 지난해 10월부터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소정의 원고료를 받으면서, 집에서 마냥 놀지 않는 것을 나름대로 어필하려고도 해봤지만, 어머님은 성이 차지 않아 보이신다.

그렇다고 어머님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운영시스템을 찬찬히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은 아들대로 열심히 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아들아 꿈도 좋지만... 7월부터는 용돈 없다"

정초에 어머님께서 폭탄선언을 하셨다.

"아들아, 꿈을 갖는 것도 좋지만.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올해 7월 이후로는 너에 대한 지원을 일절 하지 않겠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아들의 경제적 뒷바라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는 언론사 취업준비생의 현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어머님 말씀에 벌써부터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 대부분은 20~40대부터 50~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언론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오마이뉴스>를 빛내고 있다.

나 역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분석 기사를 쓰기에는 지식의 깊이가 너무 얕았고,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를 쓰기 위해선 무조건 현장에 나가야했다.

그런데 현장 취재를 주로 하다 보니 교통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후불제 교통카드로 청구되는 금액이 5개월 동안 평균 7만원이 넘었고, 취재를 많이 한 달에는 10만원을 넘기도 하였다.

30개의 기사를 쓰는 동안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서 진도와 춘천, 양주를 다녀온 적도 있었다. 취재 장소가 여러 곳인 날에는 하루 동안 대중교통을 타고 3번 이상 이동한 적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하루 만원으로 취재할 수 있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노(no)"다.

살인적인 물가, 1만원으로 취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 

지난 6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추모 문화제 사진.
▲ 고 황유미씨 추모 문화제 지난 6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추모 문화제 사진.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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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로 활동한 5개월 동안 짧게는 하루 걸려 취재한 기사도 있었고, 길게는 5일 내내 취재해서 쓴 기사도 있었다. 취재를 하는 것은 분명 값진 경험이었지만, 취재활동을 하는 일은 곧 '돈이 드는 일'이었다. 

현장에 가기 위해선 우선 교통비가 들고, 취재원을 기다리거나 만날 때에는 커피숍에 가야만 했다. 끼니는 거르지 않는 성격 탓에 아침에 취재를 나가면 점심을 꼭 챙겨먹어야 했다. 또한 취재가 길어지는 날에는 저녁까지 먹어야 했다. 물가가 많이 오른 탓에 5천원 미만의 식당은 찾기도 힘들다. 저녁까지 먹어야 되는 취재를 할 때는 점심 한 끼는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운 적도 있었다. 이러니 하루 취재비 만원은 언감생심이다.

지난 6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23)씨의 4주기 추모문화제 취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오후 4시로 알고 갔던 추모문화제가 6시로 바뀌었다. 3시 좀 넘어서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려야만 했다(밖에서 기다리긴 날씨가 너무 추웠다. ㅡㅡ;). 2시간 정도 커피숍에 시간을 보낸 후, 추모문화제 취재를 마치고 다시 커피숍에 가서 현장기사를 썼다.

이 날 쓴 취재비용은 교통비 3천원, 커피숍에서 쓴 비용만 7천원, 담배값 2500원이었다.   결국 추모문화제 기사는 버금에 걸렸다. 원고료는 받았지만, 원고료는 취재비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버금 기사 원고료는 12000원이니, 단순 계산하면 500원을 손해본 셈이다. 

매번 취재할 때마다 만원 미만으로 쓰기로 하고 현장에 나간다. 하지만 요즘같이 비싼 물가로는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교통비에 쓰고, 담배 한 값 사서 커피숍에 가면 끝이다. 농성장 1박 2일 동안 지내는 취재를 할 때에는 취재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막걸리를 몇 병 사기도 하며, 미취학아동이 있는 취재원의 집에 방문할 때는 빈손으로 갈 수 없어 과자라도 조금 사들고 간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기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지만, 월말 체크카드에 찍힌 지출내역서를 볼 때는 한숨이 나온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줄어드는 잔고를 보면 마냥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내 지갑 상황도 불가항력이라오

1박 2일 밤샘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추운 농성장에서 잤지만, 의미있는 취재였다.
▲ 홍대 앞 사거리 1박 2일 밤샘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추운 농성장에서 잤지만, 의미있는 취재였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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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물가문제는 기후변화,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제 대통령에게도 고삐 풀린 생활 물가를 잡는 일은 뜻대로 안 되는 불가항력적인 일인 듯하다. 대통령도 불가항력적인 오늘날의 살인적인 물가가 청년 백수에게는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기본적인 소비만 해도 하루에 만원을 넘게 소비할 수밖에 없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게 되고, 밥을 한 끼라도 더 먹게 되고,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일주일치 원고료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나이 스물아홉에 집에서 돈을 받아쓰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조금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한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친구들에게 얻어먹기가 민망해 가끔씩 술값을 내기도 한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이 불만이고, 청년 백수 시민기자인 나는 백수로 살아가기에는 살인적인 물가가 불만이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밥 값, 최저임금보다 조금 싸거나 비슷한 커피 한 잔의 값 그리고 멈추지 않고 오르는 물가 앞에서 청년백수인 시민기자는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루 만원에 살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물가가 오르는 것도 불가항력이라고 하니, 청년 실업률을 줄이는 것도 불가항력인 듯하다. 불가항력이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 땅의 백수들에게는 불가항력으로 살아야 되는 세상이 야속할 따름이다.


태그:#물가, #시민기자, #최저생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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