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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들은 퇴직 후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업을 향해 칼 자루를 쥐었던 인사들에 대한 모시기 경쟁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이춘석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퇴직공직자의 영리사기업체 재취업 현황'과 '취업제한대상 퇴직공직자 현황자료'를 입수해 그들의 공생 관계를 분석했다. 첫 번째로 국세청 관료의 재취업 현황과, 금융당국의 경제 관료들이 금융권의 감사직으로 이직한 현황을 공개한다. [편집자말]
국세청 출신 병마개 업체로 이동...회계·세무 법인으로 이직하기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세청 취업 제한 대상자(7급 이상) 중 사기업체로 재취업한 관료는 모두 34명이다. 이들 가운데 회계법인으로 8명, 보험사나 은행으로 15명, 주류업계에 4명, 건설이나 제조업 등 기타 분야로 7명이 자리를 옮겼다.

재취업 기업 중 눈에 띄는 것은 주류업계인 삼화왕관이다. 2009년 12월 31일, '후배에게 승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용퇴를 결심했다'는 석호영 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은 퇴임 1개월여 만에 삼화왕관 부회장으로 이직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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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고위 공무원이 왜 병마개 제조업체로 이동을 한 것일까. 여기엔 국세청과 주류 기업의 오랜 밀월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국세청은 주류 제조 중지나 판매중지처분권한을 갖고 있다. 주류업계에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국세청은 병마개 제조업체가 생산한 병마개 수와 주류 업체가 생산한 주류 수를 비교해 주류 제조업체의 탈세여부를 파악한다. 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국세청은 병마개 제조업체를 3개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사실상의 독과점이다.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탈세를 감시하기 위해 병마개 업체를 지정해 운영하면서, 해당 업체의 고위직에 국세청 직원들이 재취업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리라 보기 힘든 지점이다.

1994년 두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2010년 9월 다시 유리병제조회사인 (주)금비로 넘어간 삼화왕관은 애초 국세청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세우회'가 중심이 돼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국세청 퇴직 고위 공직자들의 든든한 안식처가 됐다. 납세지원국장을 지낸 정시형, 이동훈씨 모두 이 회사 부회장 자리를 거쳐 갔다. 국세청 평택세무 서장을 지낸 이는 2009년 삼화왕관 감사로, 국세청 서장직을 지낸 한 인사도 삼화왕관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미지 참여연대 행정 감시팀 간사는 "고위 관료들이 퇴직 전 어떤 업무를 했는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어 고위 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국세청에서 세금을 다루던 공직자가 민감하고 중요한 주세와 연관된 업체로 취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병뚜껑.
 병뚜껑.
ⓒ 강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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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관료가 회계·세무 법인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삼일회계법인으로 2명, 안진회계법인으로 5명, 한영회계법인으로 1명이 각각 이동했다. 모두 6, 7급 출신인 이들은 국세청에서 과세 업무를 담당하다가 돌연 입장을 바꿔 절세에 힘쓰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급이나 직무분야에 종사하였던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의 임직원은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사기업체 및 관련협회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급 이상의 공직자에 대한 취업 제한이 적용된다. 다만, 국세청은 7급 이상, 금감원은 2급 이상에 취업제한이 적용되는 등 몇몇 기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만일 법을 어길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신 간사는 "국세청 공직자는 회계 법인으로 이동해 '세금을 피하는 법, 감찰을 피하는 방법' 등을 제공할 수 있다"며 "퇴직 후 바로 취업할 경우, 세금 정책이 바뀌는 것 등에 대해 자신의 인맥을 통해 정보를 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와 완전히 밀접하지 않더라도 로비 가능성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원·금융감독원, 금융권 재취업한 고위 관료에게 솜방망이 처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감사원(전체)과 금융감독원(2급 이상), 금융위원회(4급 이상)의 취업제한대상자 관료들 중 120명이 재취업을 했다. 이 중 금융계로 이동한 이가 87명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한다.

금융계로 이동한 이 가운데 '공직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된 공직자 윤리법을 피하기 위해 경력 세탁을 한 경우도 13건이나 발견된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최종경력으로 업무 연관성을 파악해 취업제한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총무국이나 인력개발실로 자리를 옮긴 후 퇴직하는 편법을 쓰는 것이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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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로 이동한 87명 중 감사직으로 자리를 옮긴이는 61명이다. 조현명 감사원 사무차장은 우리은행 감사위원으로, 문태곤 감사원 사무차장도 삼성생명보험 상근감사위원으로 재취업했다.

금융감독원에서 업무 전반에 관한 기획과 조정을 맡는 기획조정국의 1급 공무원 2명은 각각 부산은행과 현대캐피탈 감사로 이직했다.

은행·비은행·증권 등의 서비스와 관련된 피해 구제 사건을 처리하는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센터 분쟁조정실 증권분쟁조정팀장은 동양종합금융증권 상근감사위원으로 취업했다.

결국 금융계를 감시하고 감독했던 이들이 은행·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감사직을 수행하게 된 꼴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전관예우' 차원에서 금융권의 비리를 눈감아주거나 솜방망이 처벌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2008년 국민은행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를 축소 보고한 정아무개 상근감사위원에 대해 금융감독원 내에서도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국 경징계 조치가 내려졌다. 금감원 고위 간부를 지낸 전력이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가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음은 물론이다.

지난 달 17일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 부산본점에 예금자 300여 명이 몰려와 영업정지 사실을 알리는 공고문을 읽고 있다.
▲ 예금자 몰린 부산저축은행 지난 달 17일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 부산본점에 예금자 300여 명이 몰려와 영업정지 사실을 알리는 공고문을 읽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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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달아 발생한 저축은행 부실 사태도 '금감원 출신 감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삼화저축은행의 감사위원장이 금감원 출신이고, 영업정지를 당한 다른 3곳의 감사도 금감원 출신이다. 

이에 김종창 금감원장이 공개적으로 "금감원 출신 인사가 저축은행 감사로 나오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내부통제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할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금융권의 감사직의 연봉은 시중은행의 경우 4~5억원, 지방은행이나 증권사의 경우 2~3억원으로 매우 높다. 금감원 출신으로 '금융권 감사직'이 매우 매력적인 재취업처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매력'은 결국 금융 당국의 관리 일 때에도 자신의 '이직'을 고려해 봐주기를 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2010년 발표한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은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소속 부서를 넘어서는 인적연관성에 의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크다"며 "소속부서의 업무관련성만을 근거로 취업을 제한하는 현행 공직자 윤리법은 실효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금융감독원의 경우 업무를 통해 해당 업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금융감독원 퇴직관료의 금융관련업체의 취업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춘석 의원은 "고위공직자들의 퇴직 후 재취업 행태가 매우 심각하다"며 "고위공직자들은 국민의 세금을 받으며 고위 업무 노하우를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에 그 공직경험을 이용해 사기업체에서 영리를 취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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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위 관료 , #국세청,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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