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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은 경칩이었다. 우리의 속신에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이 찾아와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경칩은 한문으로 놀랠 경(驚)자와 겨울 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다.
 
그러니까 옛사람들은 봄이 올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던 것. 개구리가 놀라 땅속에서 뛰어나오는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 어깨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희망찬 계절이다. 
 
꽃망울이 다투어 꽃을 터뜨릴 것 같은 봄의 기운이 완연한 봄의 금정산, 늘 찾아오지만 올 때마다 한번도 온 것 같지 않은 산이다. 나는 부산의 만덕역에서 내려 금정산 상계봉 쪽을 향해 다박다박 걷기 시작했다. 하산은 금강공원으로 할 계획을 세웠다.
 
워낙 금정산이 넓어 그 산행로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그래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면 어느새 산의 정상에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금정산은 부산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산. 금정산의 상계봉(632. 2m)은 부산 산악인들에게 최초의 기술적인 암반 등반을 시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깎아지른 듯한 암봉마다 마치 개미만한 모습의 울긋불긋한 차림의 산악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왔다.
 
상계봉은 금정산성 제 1망루에서 보는 산봉우리가 화강암류로 노출되어 바위의 생김새가 닭 머리의 벼슬처럼 닮아 위상 상(上)자를 하고 있어 닭 계(鷄)자를 붙여 '상계봉'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달리 전해 오는 얘기로는 금정산 봉우리 중 가장 높아 새벽의 햇살이 빨리 닿는다 하여 닭'계(鷄)'자를 붙여 상계봉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상계봉은 금정산의 주봉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이 제 2망루에서 서쪽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제 1 망루 남쪽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온 숲길로 접어들자 눈에 띄는 현수막이 있었다. 그것은 최근 부산 시내까지 내려와 어슬렁 거렸다는 야생 멧돼지가 나온다는 울창한 숲의 길목. 나는 괜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요주의를 요청하는 현수막을 읽다보니, 멧돼지가 깊은 산에서 등산로 주변으로 내려오는 것은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음식을 먹기 위해서임을 알겠다. 등산와서 먹고 남긴 음식물은 반드시 가지고 가야겠다.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이 울려 받고 보니 산벗 형님이시다. 혼자 금정산에 왔다니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나무라신다. 경칩의 산행길에 들려오는 따뜻한 봄바람 소리가  금정산 계곡을 울렸다. 얼었던 계곡물이 시나브로 실타래처럼 풀리는 소리에 복잡했던 마음이 밝아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큰 암봉에 올라 있는 등산객들의 메아리 소리도 기분 좋게 들려왔다. 상계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갖가지 모양의 천년 바위들이 태곳적 신비의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하게 생긴 기암을 자랑하는 금정산 바위 이름은 숱하게 많다.
 
견바위, 고양이바위, 나비바위, 북바위, 사자바위, 알바위, 용머리 바위, 거북바위, 흔들바위 등 그 기묘한 모습들이 태곳적 신비를 느끼기 하기 충분했다. 다투어 꽃들이 피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향긋한 봄향기가 바람에 둥실둥실 실려오는 듯했다.
 

산을 내려올 때는 계획한 대로 울창한 수림을 자랑하는 금강공원으로 하산했다. 휴일을 즐기기 위해 정겨운 표정의 연인들과 환한 미소의 아이들과 젊은 부부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한참 구경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 아주 어렸을 때 그렇게 놀러가자고 졸라도 직장일에 쫓겨 제대로 금강공원 놀이기구도 태워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30대일 때는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이 직장일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서 토요일도 일요일도 꼬박꼬박 노는 직장에 다니는데, 그만 아이들이 몰라보게 장성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것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3월의 경칩날 오후 봄빛은 무슨 금싸라기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태그:#상계봉, #금정산, #태고, #신비,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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