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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 스님이 이름을 짓은, 해월정사
 성철 큰 스님이 이름을 짓은, 해월정사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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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과 같이 모셔라. 늘 하심(下心)하라.
- 성철스님

살아계실 때 대중으로부터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신 성철 스님(1912-1993)이 입적하신 지는 올해로 십팔년이 된다. 그리고 태어나신 지 올해로 99년이고 내년이면 100년이 된다.

그러나 국내외는 일본 참사로 인한 깊은 슬픔으로 출렁이고 있다. 나 역시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고 일본 참사로 돌아가신 안타까운 분들을 위한 예배를 하기 위해 지난 13일 해월정사를 찾았다.

해월정사 일주문의 현판이 이색적이다. 통상 한문으로 현판이 걸린 다른 절의 일주문과 사뭇 다르다. 해월정사 역시 성철스님이 머무셨던 백련암처럼 단청을 쓰지 않아 단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계종 전 종정 성철 대종사 탄신(3. 23) 경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불탑 앞에서 잠시 고개 숙여 일본 참사에 대한 묵념을 했다.
 
자신과 제자에게 엄격하셨으나 천심의 동자들에게 자상하셨던 성철 큰 스님
 자신과 제자에게 엄격하셨으나 천심의 동자들에게 자상하셨던 성철 큰 스님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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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일체에 속지 말고
용맹심으로 참답게 정진하라
-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다.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향곡, 청담, 우봉, 자운스님 등과 봉암사 결사(불교를 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깝도록 하자는 결의)의 기치 아래 모여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정하고 실천 수행한 일과 1956년 파계사 성전암에서 8년동안 동구불출(가시철책을 두르고 은산철벽의 수행)한 일화 등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공주규약이란 다름 아닌,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이외의 사견은 절대 배척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자급자족하며, 소작인이 내는 사용료와 신도들의 특별한 보시에 의한 생활은 단연히 청산하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은 열두시를 지나지 않으며 아침은 죽으로 하며, 방에서는 늘 면벽좌선하고 잡담을 절대금지한다는, 결사에 참여한 대중들이 이를 목숨걸고 실천하자는 결의사항이다.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고심당의 백목련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고심당의 백목련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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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평기광남녀군(生平欺狂男女群)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미천죄업과수미(彌天罪業過須彌)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활암아비한만단(活陷阿鼻恨萬端)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일륜토홍괘벽산(一輪吐紅掛碧山)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성철스님의 열반송

풍경소리 마음의 소리
 풍경소리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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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시주물, 누더기 장삼만으로 50년

"모든 것은 시주물이다"고 누더기 장삼과 절약·근검으로 용맹정진 수행하셨던 성철 스님. 해월정사 안, 옛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읽히는 고심당(성철 스님이 주석했던 곳) 뜨락 앞에는 타는 듯 붉은 동백꽃과 순백의 상징 하얀 백목련이 쌍탑처럼 마주보고 함초롬하게 피어 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 선하게 가슴 깊이 다가왔다.

해월정사의 절 이름은 성철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온다. 이 절이름을 풀이하면 해와 달을 품은 절. 이 해와 달을 품은 절 한채는 해운대 와우산 자락에 존재하고, 이 와우산 숲 속에는 삼포길(미포- 청사포-구덕포)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산책길이기도 하다. 삼포길은 해월정사 산문 앞을 지나 구덕포까지 어어진다.

해월정사에서 '삼포길'까지
 해월정사에서 '삼포길'까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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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정사를 달과 해처럼 품고 있는 와우산에는 아주 먼 옛날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아가씨가 하루는 나물을 캐다가 산모롱이에서 한 마리 소를 만났는데 나중에 보니 그 소가 멋진 총각의 모습으로 변하여 달이 아주 밝은 밤에 만나 사랑을 약속하고 다음해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나 백년해로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봉훈관
 봉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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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나무는 목수의 톱날을 비껴가지 못하고
잘 생긴 돌은 석수의 연장을 피해가지 못한다.
-성철스님

성철스님 친필
 성철스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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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정사, 스님이 머문 자리를 기리기 위한 성철스님기념관(봉훈관)에는 비로전, 시월전 등이 있다. 해월전에는 성철스님의 유품(메모와 글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절의 회주는 성철 스님의 제자이기도 했던, 천제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법규위원장). 스님은 15세에 통영 천제굴에서 성철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수행자의 삶의 지표가 된 가르침으로 이땅에 오신 부처, 혹 가야산 호랑이로 대중에게 통했던 성철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던 천제스님은 "성철스님은 진정 가야산 호랑이셨습니다.
자신에게 엄했기 때문에 냉정한 분으로 평가하지만, 특히 자신과의 약속에 철저했습니다. 그리고 늘 모든 사람들을 대하기를 부처님같이 대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성철 스님 추모특집 방송을 통해 회상한 바 있기도 하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성철 스님 말씀 중>

마음의 절 한 채
 마음의 절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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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이 주석했던 고심당 앞에 쌍탑처럼 마주보고 피어있는 동백나무와 목련나무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고심당 앞에 쌍탑처럼 마주보고 피어있는 동백나무와 목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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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 성철스님이 대중에게 남긴 말씀은 너무 많다. 그 중 하나로 스위스 워너비터 교수가 "스님, 경전을 연구하는 것이 종교의 첫단계 아닙니까 ?"라고 질의하였는데 성철스님은 "진리는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자 하면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50년 동안 오직 누더기 가사를 입고 한 번도 수행자의 길에서 내려서지 않으셨던 성철스님. 그 큰 스님이 주석했던 해월정사의 봉훈관(비로전) 4층에 올라오니 푸른 수평선 너머 희미한 대마도가 보인다.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섬기라는 큰 스님의 말씀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데,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본참사의 엄청난 인명 피해 앞에 불안과 공포로 덮힌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들리는 법당 안에서는 일배 이배 삼배... 100배 200배 300배... 마치  일본 대참사로 인해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바다 건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용기와 힘을 불어넣듯, 이마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1000배 3000배 하는 노보살들이 문득 내 눈에는 관음보살처럼 환하게 다가왔다.

바다를 품은 해월정사
 바다를 품은 해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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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월정사, #달을 가리는 키는 손가락, #성철 스님, #고심당, #화두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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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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