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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대에 성(城)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물론 성이란 것은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구조물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뜻으로만 성곽을 생각한다면, 성곽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할 듯하다. 성이란 단순히 적으로부터 보호를 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이루어졌을테니, 한 나라나 도읍을 영위하는데 있어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으로서의 총체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단순히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목적으로만 쌓은 성이 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산 1에 자리하고 있는 '백령성(栢嶺城)'이다. 이 고개를 인근 사람들은 '잣고개'라고 한다. 고개 너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작은고개'라고 하는데, 옛 성을 쌓은 곳에는 '자'를 붙인 지명이 많다는 것이다.

 

 

총길이 207m의 작은 성

 

이 백령성은 진산에서 남이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개 위에는 육백고지 전투를 기념하는 탑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 돌아가면 폐허가 된 백령성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성벽을 축조했던 돌들이 비탈진 성벽 밑으로 쏟아져 내려,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한다. 어째서 이런 작은 성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3월 6일(일), 오후에 전주에서 대둔산을 넘어 금산으로 향했다. 금산에 있는 고찰 '보석사'에 들르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보석사를 가는 길에 백령성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성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성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백령성은 산꼭대기에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촐 길이가 겨우 207m에 달하는 작은 성이다.

 

백제말기에 쌓은 전초 성

 

이 고개를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백자령(栢子嶺)'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탄현(炭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야봉의 동쪽에 있으며,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 옥천 등으로 통하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길목이다.

 

이곳에 백제말기에 이렇게 작은 성을 쌓았다는 것은, 신라와 접경지대에 있는 이 지역을 방어하거나 진출을 하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은 돌을 쌓은 석성으로 당시는 매우 견고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성의 주변은 경사가 급하다. 만일 이곳에서 적과 교전을 했다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쉽게 성으로 기어오를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백령성, 이곳에 이런 작은 성을 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백령성은 금산군의 외곽성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져 있는데,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정도이다. 가파른 비탈 위에 이렇게 높은 성벽을 쌓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성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성의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산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어 진악산의 관앙불봉의 봉수와 서로 교신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견훤이 완산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복원해야 할 백령성

 

백령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여기저기 발굴을 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발굴 후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오히려 볼썽사납다. 발굴지를 덮었던 푸른 천막들이 흙이 가득한 채로 방치가 되어있다. 남문지는 백제의 산성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다락문식' 구조라고 한다. 남문지에서 밖으로 나가보니, 남문지 밖은 계단식으로 축조를 하였다. 아마도 이런 성곽의 축조방식이 다락문식인가 보다.

 

성을 한 바퀴 돌아보니, 이곳은 봉수대였다는 것이 더 믿음이 간다. 성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테뫼식 산성을 쌓는다고 해도 이렇게 좁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펴 신호를 하기 위한 성이 아니었을까? 후백제의 견훤이 다시 고쳐 쌓았다는 백령성. 이곳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렇게 폐허로 변해버릴 만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그 내막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성을 한 바퀴 돌아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성을 쌓은 벽 아래로는 무너진 돌들이 가득 흩어져있다. 저 돌들을 이용한다면 백령성의 복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성을 복원시키기만 한다면, 좋은 문화상품이 될 것만 같다. 무너져버린 백령성을 뒤로하고 떠나면서,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태그:#백년성, #금산, #남이면, #충남기념물, #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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